미국 국영 라디오 <npr>은 며칠 전 ‘왜 이렇게 많은 딥페이크 포르노가 한국 여성을 표적으로 삼을까?’라는 기사를 보도했다. 세계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진보된 국가 중 하나로 꼽히는 대한민국이 어쩌다 딥페이크 포르노 범죄율이 가장 가파르게 치솟는 나라가 되었냐는 것이다.
미국에 본사를 둔 국제 사이버 보안 기업 ‘시큐리티 히어로’가 최근 ‘2023년 딥페이크 제작 현황’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지난해 7~8월 딥페이크 포르노 상위 10개 웹사이트와 85개 유튜브 채널을 분석한 이 보고서에는 전 세계 딥페이크 포르노 컨텐츠에 등장하는 인물 중 절반 이상인 53%가 한국인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보고서에는 불법 딥페이크 컨텐츠의 주체가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직업은 가수와 배우라며, 전 세계 딥페이크 포르노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인물 중 상위 10명 중 8명이 한국 가수인 점도 지적했다.
보고서는 딥페이크가 사용된 성인 컨텐츠가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2022년 3,725건에서 2023년 21,019건으로 1년 만에 464% 급증했다고 밝혔다. 또한 딥페이크 성인 동영상의 99%에 여성이 등장한다.
영국 <BBC>는 며칠 전 보도에서 한국이 딥페이크 포르노 비상사태에 직면했다고 밝혔다. 2019년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주빈과 N번방 사건, 그리고 이들의 범죄의 온상이 된 텔레그램을 언급하며 현재 한국을 뒤덮은 디지털 성범죄 재앙은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되었는데도 그동안 정부는 무엇을 했느냐고 지적한다.
한국 경찰에 따르면 온라인 딥페이크 성범죄 신고 건수는 작년에 전체 180건이었으나 올해는 7개월 동안에만 벌써 총 297건에 달한다. 지난 3년간 이 범죄의 70% 이상을 10대 청소년들이 저지른 것으로도 나타났다. 한편, 한국 교원단체총연합회는 최근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200개 이상의 학교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몇 년 간 교사를 대상으로 한 딥페이크가 급증했다고 한다.
며칠 사이 텔레그램을 통한 딥페이크 포르노 피해 폭로가 터지면서 전국의 추가 피해자와 사례를 신고받아 데이터화한 것은 정부도 경찰이 아닌 ‘Queen Archive’라는 계정의 민간인과 그녀를 도운 11명의 자원봉사자였다.
부랴부랴 윤석열 대통령이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은 ‘건강한 미디어 문화’를 만들기 위해 젊은이들에게 더 나은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하며, 관계부서에 비상대책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BBC>와 <AFP 통신> 등 수많은 외신들은 한국 정부가 과연 딥페이크 성범죄에 대해 심각한 경각심을 가지고 있는지, 원인 진단과 파악이 되었는지, 해결할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여성 인권 운동가이자 전 정의당 의원인 배복주의 인터뷰를 빌어 “대한민국의 구조적인 성차별을 단순한 ‘개인 간의 분쟁’으로 치부하는 현 정부가 이러한 문제를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해결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라고 보도했다.
또한, 윤대통령이 취임 전 “한국 여성들이 구조적인 성차별로 고통받지 않는다”라고 했던 선언을 환기하며 선진국 반열에 든 대한민국의 상장 기업 임원직 중 여성은 5.8%에 불과하며 한국 남성보다 평균 3분의 1 정도의 적은 임금을 받고 있다는 통계를 인용하며 한국은 여전히 OECD 국가 중 최악의 성별 임금 격차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은 여성이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탈의실에서 옷을 벗을 때 이를 초소형 몰래카메라, 즉 ‘스파이캠’으로 촬영하는 범죄 또한 높다며 한국에 만연한 성희롱 문화와 성평등에 대한 미성숙한 사회 인식,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안일한 대응과 낮은 처벌 수위 등이 디지털 성범죄율을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대한민국의 딥페이크 포르노를 제작하고 공유하는 텔레그램방의 일부는 사용자가 서로 지인을 쉽게 식별하고 공유할 가짜 포르노를 생성하기 위해 피해자의 학교 이름이나 지역을 사용해 만들어졌다고 보도하며, 한국 법은 성적으로 노골적인 딥페이크를 유포할 목적으로 제작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를 시청하거나 공유하는 범죄자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npr>은 보도를 통해 한국에서 디지털 성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실제로 거의 없다고 했다. 대부분은 벌금형이나 집행유예로 풀려난다고 했다. 이는 대한민국의 많은 판사들이 직접적인 신체적 접촉을 수반하는 성폭력만큼 피해가 심각하지 않다고 안일하고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한국의 일부 남성들은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하는 여성에게 복수하기 위해 딥페이크 포르노를 만들거나 퍼뜨린다며, 컨텐츠를 소비하고 공유하는 대부분의 남성의 목표는 여성을 폄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것은 한국 사회의 젠더 갈등과 극심한 성차별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npr> 역시 “한국 사회에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라고 말한 윤대통령의 지난 발언을 조명하며 이번 사태에서도 여성에 대한 한국 사회의 구조적 차별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겨레> 영자신문은 ‘여성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헤드라인으로 디지털 성범죄 폭로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운데 “한국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와 폭력이 처벌도 예방도 되지 않는 현실을 규탄”하는 한국여성민우회의 목소리를 보도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여성의 사진을 보내고 요금을 지불하기만 하면 5초 만에 그 여성의 노골적인 성적 이미지를 얻을 수 있는 텔레그램 채널에 약 22만 7천 명의 회원이 있다”라고 말하며 “이것은 불법 콘텐츠를 만들고 소비하기 위해 채널에 가입한 특정 개인보다 더 큰 사회적인 문제”라며 사회 전체의 경각심을 강조했다.
또한 “한국 여성들은 자신들을 겨냥한 범죄와 폭력이 예방되지도, 처벌되지도 않는 사회에서 매일 공포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라고 덧붙이며 “매일 많은 구성원의 안전이 위협받고, 동료 시민을 모욕하고 폄하하는 집단적 행위를 용인하고 장려하는 사회가 계속 존재할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그리고 “이 사회가 만들어 내는 평균적인 한국 여성에 대한 기준”을 언급하며 “대한민국 평균 여성들은 남성 동료와 후배, 상사, 심지어 가장 가까운 지인들에게 외모와 성별에 따라 평가받을 대상으로, 성적으로 모욕당하고 파괴될 대상으로 대상화된다”라며 “여성 지인을 욕망의 대상으로 대상화하는 것이 재미있는 게임이 되어 남성이 여성을 폄하하고 수치심을 느끼는 데 이용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보도에서 단체는 이렇게 성명을 마무리했다. “모든 시민은 커뮤니티의 일원으로서 이 끔찍하게 정상화된 성폭력 문화에 공모하고 있다. 우리는 성별에 관계없이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다른 사람을 존중하도록 단호하게 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