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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하나 Aug 25. 2024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 아닌 사람의 마음이다

가해자 마인드에 점령당한 한국 사회.

*바로 잡습니다!!!


'강제징용' ---> '강제노역'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에, 국가의 권력으로 국민을 강제적으로 일정한 업무에 종사시키는 일을 '징용'이라 합니다. 따라서 나쁜 의미가 없습니다. 따라서 일제가 우리나라 사람을 강제로 동원한 행위는 '강제노역'으로 써야 합니다.


출처: 부산대 한국어 맞춤법/문법 검사기





집단적으로 ‘스톡홀름 증후군’에 걸린 병자들이 좀비처럼 한국 사회를 활보하고 있다. 스톡홀름 증후군은 인질이 인질범에 동화되면서 범죄를 잡으려는 경찰을 오히려 적대시하는 심리 현상으로 아주 극한 상황에서 강자의 논리에 의해 약자가 동화되는 현상을 이른다.      


자신이 대한민국 대다수의 집단 지성이라 믿는 이들은 이 좀비 떼를 ‘극단의 소수’라 애써 안심하고 좀비가 활보하는 거리에서 몸을 숨기며 때를 기다리지만, 스티븐 래비츠키가 쓴 <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를 보면 극단적 사상을 가진 소수가 상식적 다수를 지배하게 되는 현대 민주주의 체제의 한계는 여지없이 대한민국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신(新) 이완용이 대한민국 행정 수뇌부 침투에 성공했다.
역시 K-드라마 강국다운 전개다.





현재 대한민국의 (무려!) 국방부 장관이자 국가안보실장인 신원식“이완용은 비록 매국노였지만 한편으론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라고 말하고, “대한제국이 존속했다고 해서 일제보다 행복했다고 할 수 있겠냐?”라고 묻는다.      


“아둔하고 게으른 조선인을 개화시킨 게 바로 대일본제국이라”라는 일본 극우 사상을 스펀지처럼 흡수한, 소위 말하는 ‘뉴라이트’의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편에서 이득을 취했던 수많은 매국 조선인들과 그의 후손이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억지로 끼워 맞혀 우기는 이론이다. 이들에겐 ‘뉴라이트’라는, 괜히 뭔가 있어 보이는 이름조차도 아깝다. 그저 일본이 던져주는 먹이에 꼬리를 흔들고 침을 질질 흘리며 사냥감을 물어다 나른 개일뿐이다.      





황석영 선생의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명쾌한 해석.
식민지 근대는 도둑놈 일본이 두고 간 사다리다.




얼마 전 손석희의 <질문들>에 출연한 황석영 선생이 식민지 근대화론에 맞선 명쾌한 설명을 내놨다.


우리 집(한반도)에 침입한 도둑(일본)이 더욱 용이한 수탈을 위해 사다리(공장, 철도 등의 근대화)를 설치하고, 패망 후 사다리를 두고 갔다. 식민지 근대는 결국 도둑놈이 두고 간 것이다. 또한, 그 사다리는 한반도 조선인을 강제로 끌고 가 비인간적인 착취로 만들어졌다.      


“그래도 일본 덕에 한국이 이만큼 발전했다”라고 말하는 자들아, 들어라. 잘 먹고 잘사는 강대국 중 하나가 못 먹고 못 사는 어느 나라의 자국민을 강제로 데려다 노동을 착취하고 그 나라의 어린 소녀들을 데려다 성 노리개로 삼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인도적 경제 발전 합의라 말하지 않는다. 선진국이라는 한국이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돕는답시고 철도와 원자력 사업을 하는 데 그 나라 국민의 노동력을 착취한다면, 그것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하게 존재하는 엄연한 범죄이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마인드로 살게 되면 벌어지는 일.
그리고 스스로 정당화하기 위해 사회를 잠식하는 독버섯 같은 궤변.






대한민국 사회에서 기생하던 야만적인 가해자의 마인드와 시각이 대한민국 정부를 뒤덮었다. 가해자인 일본의 편에 서서 그들의 밑을 닦아주며 자신들은 약하고 멍청한 피해자가 아니라고 스스로 자위하며 권세를 누린 세력과 그 후손들이다.      


한 나라의 주권을 훔친 가해자인 일본의 본질, 즉 범죄를 옹호하기 시작하면 일제강점기의 피해자인 조선인의 피와 고통은 갈 곳을 잃는다.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강제로 끌려가 동물 이하의 비인간적인 취급을 받으며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조선인에, 그리고 여자라는 이유로 공장에서 돈 벌게 해 주겠다는 거짓 꾐에 넘어가거나 그마저도 안 되면 납치되어 위안부에서 하루에 수십 명을 상대로 성 착취를 당했던, 피해자는 목소리와 얼굴을 잃는다. 해방 후 너덜너덜해져 고향에 돌아온 위안부 피해자에게 ‘더러운 년’이라 손가락질하며 침 뱉고 눈을 흘겼던 수많은 한국인은 자신을 스스로 가해자라 여긴 걸까. 한국 사회는 되풀이되는 폭력의 역사에서  피해자가 되는 건, 또 피해자의 편에 서는 건 억울하고 서럽고 치욕스럽다는 걸 본능적으로 체득해 왔기에 차라리, 기어코 가해자의 편에 서는 게 낫다고 생각하게 된 것일까?       


훌쩍 시간이 흘러 일본의 사과 한 번 받고 죽겠다는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하나둘 세상을 떠나 8명만이 남은 현재, 노동자, 성소수자, 장애인, 저소득층 등 한국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들은 여전히 가해자 마인드의 가면을 쓴 이들에게 “네가 가난하고 힘없고 별나서 당한 게 뭐 그리 대수냐”라는 ‘피해자다움’만을 요구당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위안부의 존재를 부정하는 시민단체 ‘위안부법폐지국민행동’의 소녀상 철거 챌린지


 

세월호 참사에서 자신의 딸이 어떻게 죽었는지 알고 싶다고 진상을 밝혀달라며 단식하는 아버지 앞에서 피자와 치킨을 시켜 먹고, 위안부 소녀상에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씌우고 ‘자발적 매춘부’라 조롱하며 ‘철거’라는 푯말을 소녀 무릎에 올려 두고 사진을 찍으며 챌린지를 벌이는 사람들, 성범죄 피해자에게 “네가 행실을 잘못해 당했다”라고 손가락질하고, 군에서 희생당한 이에게 “왜 더 좋은 부모 만나 더 좋은 보직으로 빠지거나 아예 면제를 받질 못했느냐”라고 비웃고, 한국의 허술하고 탐욕스러운 기업의 잘못으로 목숨을 뺏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온갖 혐오의 말을 쏟아붓는 사람들, 사회적 참사의 희생양이 되는 건 그저 “네가 못 배우고, 권력을 가지지 못했으며, 자본주의의 달콤한 열매를 따기 위해 욕망의 사다리를 오를 때 밑에서 올라오는 남의 머리를 차버리지 못하고 보다 가열하지 못해 낙오되었기에 당한 일”이라고 말하는 현대 사회의 한국인들은 일제강점기의 가해자 마인드로 매국했던 사냥개들과 과연 무엇이 다른가.     

   

자신을 스스로 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니라 믿는 사람들이 가해자의 마인드로 기울어지다 보면 결국 가장 끔찍한 상황이 다가온다. 자신이 명백한 피해자인데도 가해자 마인드를 선망하고 추앙하고 두둔하고 옹호하는 상황, 스스로 삶의 의지와 독립성을 잃고 항복해 기득권 가해자 편에 기대어 먹고살겠다는, 일제강점기 이완용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더 많아지게 되는 것 말이다.           





그래도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일본의 보수지 산케이는 얼마 전 8.15 광복절 연설에서 ‘일본’을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은 윤석열 대통령을 칭찬하며,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은 815 광복절 징검다리 연휴를 이용해 일본 여행을 온다”라고 한국을 조롱했다. “한국의 젊은 세대에 반일 감정을 강요하지 말자”라는 뉴라이트의 수많은 인물이 일본을 찬양하고 한국을 조롱하는 쓰레기 칼럼을 수도 없이 기고하는 신문이다.      


하지만 나는 한국의 젊은 세대가 일본의 사악한 역사 왜곡과 전범으로 저지른 끔찍한 만행을 지우려는 행태를 용인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경제를 다 말아먹은 일본의 엔화 가치가 폭락하고 우리와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철저한 효율성 때문이라 생각한다. 1990년대와 2000년대를 지나 2024년 지금, 과연 한국을 여행하는 일본인이 더 많은가, 일본을 여행하는 한국인이 더 많은가. 세계적으로 어필하는 IT 제품부터 문화 컨텐츠까지 일본 제품이 더 많은가, 한국 제품이 더 많은가. 전범 국가로서의 만행을 고통스럽게 되돌아보고 뼈저리게 반성하며 매년 유대인 학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고 총리가 무릎 꿇고 사과하는 독일과 비교했을 때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 일본의 품격과 국력은 어떠한가.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인가. 그렇게 모질고 아픈 역사를 가졌으면서도 다른 나라에 힘자랑 하지 않고 해코지하지 않으며 도움 받은 나라에 감사와 예를 표하고 도움이 필요한 나라에 힘을 보태는 나라 아닌가. 우리 스스로가 피해자였던 적이 더 많고, 그래서 늘 피해자 편에 서 온 나라 아닌가. 사회 곳곳에 학폭과 갑질, 불공정과 비상식이 여전히 넘치지만, 그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도,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들끓는 나라 아닌가. 일본에 대한 자격지심과 피해의식과 분노와 상처를 모두 끌어다 지금 이만큼의 대한민국을 만든 사람들 아닌가. ‘나에게 언젠가 힘이 생긴다면 그때 그 잘못에 대한 책임, 꼭 물어야지’ 하며 참아온 나라가 아닌가.


대한민국은 <글로리> <기생충> <오징어게임>으로 전 세계에 한국 사회의 어두운 민낯을 양지로 드러내고 함께 이야기하는 나라가 아닌가. 나라를 강탈 당해 싸우고, 나라가 반쪽으로 나뉘면서까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독재와 싸우고, 또다시 민주화를 위해 싸우고, 나라의 대표자의 실정을 꾸짖기 위해 촛불을 들었던 나라가 아닌가. 적어도 문제 자체를 은폐하고 쉬쉬하며 문제의식을 갖는 것조차 금기시하며 당연히 해결을 위한 시도조차 않는 일본 사회보단 낫지 않는가. 또한, 여전히 소수지만 태산 같은 용기를 내어 권력 조직의 비리를 폭로하고 대담한 한 발짝을 내딛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작고 약한 나라를 강탈당하고 대부분이 가해자의 편이 되어 그들의 개로 전락되기로 선택했을 때 자유와 독립을 외치며 춥고 고단한 길에 들어선 독립운동가들이 있었던 것처럼.

      

“대한민국의 국력이 높아진 만큼 이제 우리도 자신감을 가지고 일본에 자존심만 내세우지 말자”라는 뉴라이트의 주장은 지극히 가해자 중심의 논리다. 그들은 일본의 라인 사태, 조선인 강제노역, 위안부 문제, 독도 분쟁에 현재 윤석열 정부가 침묵하는 이유는 모두 우리가 자신감 넘치는 나라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해괴한 궤변을 늘어놓지만, 반대로 대한민국이 쌓은 국력만큼 가해자이자 전쟁범죄자인 일본에, 과거사 반성은커녕 일본 헌법을 수정해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나라로 바꾸고 욱일기를 내걸며 매해 광복절이면 우리 보란 듯 전쟁 전범들이 묻힌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일본에 정정당당히 책임을 묻고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게 맞다. 그게 바로 성숙한 민주사회의 상식이고, 정의이고, 스톡홀름 증후군에 걸리지 않은 보통의 피해자의 정당한 권리이다. 피해자인 건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 아닌, 가해자의 마음이 아닌 피해자의 마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바로 사람의 마음이다.




현 대한민국 정부의 국자안보실 제1차장이나 윤석열 정부의 최고 실제라 꼽히는 김태효가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라고 했다. 미국, 일본, 북한, 중국, 러시아 등 현재 대한민국을 둘러싼 모든 국가와의 외교 참사가 모두 이 양반 작품이다. 이 양반은 현재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스톡홀름 증후군 중증 환자로 윤석열과 김건희가 청와대에 못 들어가겠다고 떼를 써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옮긴 허술한 틈을 타 미국이 윤석열 정부를 도청했다는 게 만천하에 드러났을 때도 “미국의 마음을 이해한다”라고 말했고, 일본이 과거사를 부정하고 독도 소유권을 우기고 법원 판단까지 끝난 강제노역 피해보상을 못 하겠다고 버티고 위안부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고 말할 때에도 “일본의 마음을 이해한다”라고 말했다. 철저한 가해자 편의 마음이다.


중요한 건 일본의 마음이 아닌, 가해자의 마음이 아닌 피해자의 마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바로 사람의 마음이다. “일본 정부는 이미 한국에 여러 차례 사과했다”라고 말하는 윤석열 대통령과 뉴라이트의 주장과는 다르게 2013년 이후, 일본은 역사 문제에 대해 단 한 차례도 사과하거나 과거사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 대신 일본은 독도 분쟁을 일으켜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 가 자신들에 이익이 되도록 국제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지금도 밀정을 교육하고 키워내 국내외 활동을 지원하고 있으며, 과거사를 지우기 위해 전 세계 위안부 소녀상 철거 진행에 막대한 로비와 정치력을 집중하고 있다. 그들이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 교과서를 보라! 조선인 강제노역의 역사를 지운 군함도와 사도 광산은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와 윤석열의 열렬한 협조 아래 세계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영구 지정됐다.

    

이 모든 건 역사에 기록된, 그리고 기록될 사실이다. 아니, 사실을 뛰어넘은 진실이다. 가해자의 마인드로 가릴 수 있는 진실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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