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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Oct 08. 2024

인정하기 싫은 마음 인정하기.

내일은 쉬는 날. 

오늘도 하루종일 나 자신의 감정과 내 모습을 인정하기에 바빴다. 슬픈 모습, 기쁜모습.. 이라고 하면 굉장히 진부하고 사실, 굴욕적인 모습이 한 가득이었다. '모습'보다는 굴욕적인 '마음'. 


굴욕적이라는 건, 정말 나만 느끼는 감정일까. 이토록 굴욕적인 감정은 정말 매일 느끼는 기분이라 쉽게 털어낼 수도 없다. '아, 내가 지금껏 열심히 살지 않아서 이렇게 살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그 굴욕적인 모습도 마음도 다 내 마음이었고, 내가 일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워 하는 심리에 숨고 싶은 마음도 다 내 모습이었다. 이렇게 힘든 마음을 안고 사는 게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나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발전할 기회와 계기와 원동력을 제공해 줄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실은 '아, 나도 저 사람처럼 진짜 일 잘하고 싶다.' 라는 마음이 정말 절실해서 일 것이다. 나는 계속 적성에도 안맞는 일을 해나갈 것이기 때문에 이 기분은 그 곳에서는 항상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발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방통대도 다니고 있고 무엇보다, 되게 성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버틴다고 다 장사일까? 


나는 꿈이 많다. 베이킹도 에세이스트도 지금 하는 '적성에 맞지도 않는 일'도 잘 이루어 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 이 세가지 꿈들은 진정 나로부터 나온 꿈들이다. 누군가가 심어준 꿈도,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꿈도 아니다. 지금 하는 일은 사알짝쿵 남에게 잘 보여주기 위한 꿈일지도 모르겠다. 맞다, 그거. 


언젠가 내가 만든 빵이나 디저트를 교회 사람들과 함께 따뜻하게 나누어 먹는 꿈을 꿨었는데, 이제는 한발 자국 멀어진 것 같고. 블로그에 만든 사진이라도 올려볼까 싶다. '나 이렇게 잘 만들었어요' 라고.  


내가 쓰려던 것이 이게 아닌데 의식의 흐름에 따라 쓰다보니 또 삼천포로 빠졌다, 제길. 그니까, 인정이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었는데, 동생과의 깊은 대화 이후로 나는 나 자신이 패배자라는 것을 인지했다. 그러고는 동생에 대한 경쟁심이 사라졌다. 그게 가장 큰 나의 자격지심의 핵심이었는데, 그게 사라지니 다른 사람들에 대한 자격지심이나 경쟁심으로 인한 찡그려지는 얼굴 표정도 많이 좋아졌고 무엇보다 많이 불안한 마음이 조금은 사그라 들었달까. 동생과 쨉도 안되는, 게임도 안되는 것이었다. 6살 어린 동생은 6년차 직장인인데 자신이 하는 일에 도가 텄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정말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을 최근 깊은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나도 많이 물어보고 내 얘기도 들려줬는데, 정말 이 자식, 어른스러워졌달까. 


언제 그렇게 컸는지, 정말 자랑스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30대 중반이 되도록 부모님 집에서 있으면서 (물론 생활비는 내지만) 월 세후 200조금 넘게 버는 내가 한심스러웠다. '그래, 내가 열심히 살지 않아서 그런거겠지.' 


하지만, 나도 안해본 일은 없다. 라멘집에서 하루에 600그릇 설거지해서 3개월동안 700만원 가까이 벌어보고 베이커리 주방에서도 많이 일해보고 사무직도 해보고 콜센터에서도 일해보고 중구난방이긴 하지만 일은 계속 해왔는데.. 그사이에 여러가지 안좋은 일로 쉬는 기간이 많았다. 핑계일 수도 있는데 정말 그랬다. 


난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자식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도 조금은, 아주 조금은 이 꿈쟁이가 마음에 품고 있는 것들을 조금은 펼쳐볼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는 바람이다. 그러려면 내가 너무 자세하게 부모님께 이야기 하지 말아야 하는데, .  


여하튼 오늘 한 아이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주다가 다른 반의 화기애애한 웃음소리에 굴욕적인 마음과 창피한 마음을 가졌었는데 그것조차 나는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잘했죠? 이것도 나 자신이기에. 


나 자신을 인정함으로써 좋은 점은 정말 내면의 바닥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거기서 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점. 그 점은 인정하기 싫으면서도 좋은 점 같다. 


나름 치열하다고 생각했는데, 나 잘 살고 있는 거겠지? 

키보드를 치며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감사하기도 하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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