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그녀에게
오랜만에, 자폐스펙트럼에관련된 영화가 나왔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특별한 것은 실제 이야기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사양합니다. 동네바보형이라는 말> 원작을 바탕으로, 기자이자 엄마였던 저자가 장애 아이를 낳으면서
겪게되는 이야기들을 담아내었다.
나도 몇년전 이 책을 꺼이꺼이 울면서 읽었는데, 이렇게 실사화 되는걸 보면서 놀라움과 동시에
과연 내가 이 영화를 볼수 있을까 하는 일종의 망설이는 마음이 들었다.
2d의 책을 읽으면서도 울다 웃다....그리고 외면하고 싶던 불편한(?) 현실을 마구 마주했는데
이걸 또 영화로 보며 그 롤러코스터를 겪으려니, 이놈의 회피성향이 마구 튀어나오느것이다.
재미있는건, 주변의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들엑 추천했을때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이거...우리 현실 그대로 또 볼거 같은데....ㅋㅋㅋ . 보면 수도꼭지 콸콸콸...일텐데"
돈내고 영화관까지 가서, 나의 현실의 리플레이를 보러가야하나.....못난마음도 든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곧 이런 영화들이 많이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보고, 다시 한번 장애에 대해
몇분이라도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면. 너무나 의미있는 일이지 않을까!!
그럴러면 개봉초기 많은 이들이 봐야한다!! 그리고 이런 작은영화들은 분명 큰 영화들에 밀려
상영관 조차 잡기 어려울테니.....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얼른 예매를 했다 . 그리고 내가 활동하는 센터 엄마들, 자폐 모임들
등에 부지런히 공유하기 시작했다.
나홀로 영화를 보러갔다. 오랜만이다. 영화관에 온지도.
괜히 다른때와 다르게 긴장이 되더라. 흉하게 대성통곡 하는건 아닐까.
휴지도 없네.....어떡하지....
영화는 시작이 되고,
처음은 주인공이 남편과 장미빛 미래를 그리는 장면이었다.
40대에 정치부장 50대에 국장. 강남에 집을 사고 블라블라....
주인공은 야심찬 정치부 기자였다. 최선을 다해 일을 하고, 목소리를 높인다.
시작부터 공감 100프로다.
나도 엄마이기 전에 열혈 예능피디였다.
주인공처럼 장미빛 미래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연히 내 이름을 건 프로그램을 만들고
나도 나영석, 김태호 처럼 스타피디가 되어야지!! ㅋㅋ
(왜 당연했던가.ㅋㅋㅋ)
첫째 아이를 낳고 나서라도, 하루라도 빨리 복직하고 싶었고 바로 둘째가 생기는 바람에
복직이 늦어지자 불임이었던 사실도 잊고, 둘째가 생긴것이 힘들었다(...ㅠㅠ)
회사의 배려로 첫째 육아휴직과 둘째 출산휴가를 붙여서 썼고.
나는 둘째가 80일경 바로 복직을 했다.
내 커리어에 조금이라도 흠이 가는것이 견딜수 없었다.
그때의 나는 여유도, 생각도 없이 오로지 일이 최우선이었다.
영화 초반 주인공의 모습도 그러했다. 만삭이 될때까지 취재를 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도 곧 복직할 준비를 한다.
하지만. 아이는 말을 하지 않고....
애써 회피하던 그녀는 결국 병원에서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을 듣고 만다.
장애판정을 받은 부부는 아무말이 없다.
그러다가 밤이 되고 참고 참던 남편은 뛰쳐나가 오열한다.
그날부터 부부의 삶은 달라진다.
하루의 스케줄은 아이의 치료로 꽉꽉 채워지고
이사실을 하나둘 알게 되면서 주변 사람들은 어쩔줄 몰라하며
위로한다. 그런 위로를 받으며
주인공은 ' 나 우리애 서울대 보낼꺼야...' 라는
근거없는 호기로운 말을 내뱉으며 그 상황을 어색하게 만든다.
이미 엄마의눈은 흐리멍텅하고 촛점이 없다.
퍼석한 머리와 흐린눈, 내 입에 뭐가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모든게 다 어지럽고 흐트려져있다.
일상이 무너져있다.
나 역시 우리 아이의 '장애'선고(?)의 날을 기억한다.
세브란스 병원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나오면서 그 한걸음 한걸음이
이전보다 더 무거워진듯했다. 하늘조차 나를 가차없이 찍어눌러대서
온몸이 무거움에 움직이지 못할거 같은 기분.
막막하다는 말의 뜻이 이런거구나......막막한데 슬프구나....
정말.........................너무하다!!!!!!!!!!!!!!!!!!!!!!!!!!!!!!!!!!!!!!!!!!!!!!!!
정말..........................너무해!!!!
영화에서 처럼 남편과도 아무말이 없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서야
'우리..어떻게 해야하지..."
적막한 공기를 뚫고나가는듯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때의 순간을 떠올리는것만해도, 가슴 한쪽이 서늘해진다.
다시 생각하고 싶지도,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솔직하게, 내가 여기 글을 자주 쓰지 않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다.
어느 순간, 이렇게 아이의 이야기를 쓰고, 내마음을 마주하는게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말로는 그럴듯하게,
아이의 현실과 장애를 마주한다고 지껄여놓고는
실상, 마주할때마다 쓰라리고, 곪아터진듯하고 .
에라이....니가 그렇지 ....하며 또 외면하고 싶었다.
여전히 나는 , 부딪히는 중이다.
비탄의 세계에서 내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시간이 참으로 많이 걸린다.
영화의 한씬한씬은 마치 누가 내 일상을 엿봤나 싶을 정도로, 비슷하여
눈물이 나기보다 허허허 헛웃음이 나왔다.
거기서 비장애의 아이가 온가족이 장애 아이만 신경쓰다 보니
엄마아빠에게 '나도 장애인으로 태어날걸 그랬어"라는 비수같은 말은
토씨하나 틀리지 않게 우리 첫째애가 나에게 했던 말이라..
쓰라렸다.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과정을 가감없이 그려낸 이 영화.
내 아이는 오래사랑을 받을 사람 '장애인(長愛人)'입니다라는 표현에서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은게 바로 이거구나...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다.
누구나 '그녀'가 될수 있다.
길게 오래 사랑받을 우리 아이를 위해,
오늘도 굽은 어깨를 쫘악 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