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방광암인 남자와 결혼했다.
건널목 앞에서 신호가 파란불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추운 날씨가 며칠 동안 계속 이어졌지만, 오늘은 유난히 더 춥다.
‘파란불아, 빨리 바뀌어라!!’
속으로 중얼중얼 외치는 동안 바람은 빨갛게 얼은 내 볼을 사정없이 스쳐 지나갔다. 장갑을 낀 손을 재킷 주머니 속에 넣었는데도 손은 시리고, 다리는 가만히 있다간 그대로 마비가 될 것 같아 발이라도 동동 굴려야만 했다. 날카로운 칼날이 연속으로 내 볼을 강타하자 심한 통증이 느껴지면서 눈물이 났다.
‘빨리 바뀌어라 빨리!!!.’
오로지 내 머릿속은 이 주문으로 가득했다.
그때 어디선가 포근하고 따뜻한 공기가 나를 감싸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이 장시간 추위에 노출되면 이렇게 감각이 무뎌지는구나!’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렸는데 하얀색이 눈에 들어온다.
‘이 하얀색은 뭐지? 눈이 오나?’ 하며 고개를 살짝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다.
어두운 밤하늘 사이로 얼굴이 비친다.
그 남자다.
나를 사랑해주는 남자.
그는 자신의 하얀 롱패딩을 펼쳐 말없이 뒤에서 나를 감싸 안고 있었다. 하얀 롱패딩 속 그 남자의 품 안이 너무 포근하고 따뜻해 나도 그냥 그렇게 말없이 신호가 바뀔 때까지 서 있었다.
그날 나는 하얀 롱패딩 속 그의 품에서 신호가 천천히 바뀌길 기다리며 ‘이 남자와 결혼하자.’라고 생각했다.
그 후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화장실을 못 참겠다고? 약을 먹었는데도 괜찮아지지 않아?”
그 남자는 여러 병원에 다니고 검사를 하고 약을 먹었는데도 소변을 점점 참을 수 없어 했다.
소변에서는 피가 함께 나오고 있었고, 소변을 볼 때마다 통증을 느꼈으며, 아랫배의 통증까지 호소했다.
어떤 병원에서는 전립선의 문제인 것 같다고 전립선 약을 처방해주었고, 어떤 병원은 요로의 문제인 것 같다며 요로 약을 처방해주었다.
약을 먹으면 잠시 통증이 사라지는 듯하다 다시 똑같은 증상이 발생했고, 그럼 다른 병원을 찾았다.
병원을 옮길 때마다 전에 받았던 진단명과 복용한 약에 대해 설명했고, 그럼 새로운 진단명과 함께 새로운 약이 처방되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증세는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심해졌다.
우리는 또다시 새로운 병원을 찾았고 집 근처에서 작은 병원을 발견했다. 나이가 지극한 할아버지 의사 선생님이셨는데 다른 병원에서처럼 증상을 이야기하고 주사와 약을 처방 받아 집으로 돌아왔다.
처방받은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었는데도 증세는 더욱 심해져 급기야 외출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사람은 보통 소변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화장실이 있는 곳까지 참고 갈 수 있다.
하지만 이 남자는 소변을 누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바로 소변이 나왔다.
이대로 외출한다면 다 큰 청년이 멀쩡하게 걸어가다 옷에 오줌을 싸는 황당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알 수가 없었다.
병원을 바꿔도, 검사를 해봐도, 약을 먹어도 전혀 나아지질 않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증상이 이렇게까지 심해지자 우리는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아무리 약을 먹어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다며 선생님께 매달려 방법을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의사 선생님은 이런 우리를 보고 젊은 사람은 방광 초음파까지는 하지 않는데, 약을 먹어도 좋아지지 않으니 초음파를 한번 해보자고 하셨다.
초음파 검사를 마치고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자 곧 우리의 이름이 불렸다.
“여기 뭔가 하나 보이긴 하는데…. 초음파라 확실한 건 아니고….”
“젊은 사람한테는 이런 경우가 거의 없어서…. 나이 많은 노인들에게 주로 생기는 병이라….”
의사 선생님은 ‘젊어서 괜찮을 것 같긴 한데.’라는 말을 혼잣말하듯이 내뱉다 또 추임새처럼 반복해서 쓰며 말씀을 이어 나갔다.
“젊어서 괜찮을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여기 이런 게 보이는 건 좀 이상하긴 한데….”
“젊은 사람이 이런 병에 걸리기는 드문 일이라….”
우리가 옆에 있다는 걸 잊으신 듯 선생님은 똑같은 말만 반복하시며 말없이 초음파 사진만 들여다보셨다.
기다리다 못해 내가 “선생님~” 하고 부르자 유체이탈했던 영혼이 돌아온 듯 선생님은 눈을 크게 한번 힘주어 뜨시더니 소견서를 써 줄테니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말씀하셨다.
뭔가 더 하실말씀이 있는 것 같은데, 젊어서 큰 문제는 없을 거라며 그래도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큰 병원에서 검사는 받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말로 진료는 끝이 났다.
우리는 큰 병원의 이름과 주소, 소견서를 챙겨 나오며 선생님이 숨기시는 말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바로 큰 병원으로 갔다.
큰 병원에 도착하여 소견서를 제출하고 담당선생님을 만났다.
그리고 바로 방광 내시경을 통해 방광경 검사를 했다.
그 남자가 방광 내시경을 하는 동안 나는 갑자기 왜 이 남자와 결혼이 하고 싶어졌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는 이 남자를 아주 오랫동안 만났다.
우린 오랜 시간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했다. 그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연인으로, 친구로, 더 이상 보고싶지 않은 미운 사람으로, 기대어 울고 싶은 유일한 사람으로, 여러 모습으로 그 자리에 있었다.
그런 그와 달리 나는 언제 어디로 튕겨 나갈지 모르는 스프링처럼 불안하게 날뛰었다.
병원에서 그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이 남자와 결혼을 결심한 이유를 알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이후에도 오랫동안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그냥 항상 내 곁에 있는 사람이라 그런 마음이 들었나보다 생각하게 되었다.
그를 만난 시간만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문득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내가 내린 모든 선택에 ‘그냥’이란 없더라.
한결같이 나를 반겨주는 아빠같은 남자, 이것이 내가 이 남자를 선택한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