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방광암인 남자와 결혼했다.
그 남자는 어려서부터 고생하시는 어머님을 위해 일을 했었다.
어느 날, 함께 일하는 형과 함께 타로점을 잘 본다는 카페에 갔었다. 그 남자는 태어나서 한 번도 점을 본 적이 없었다. 점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오직 자신이 믿는 것에만 근면과 성실로 임하는 남자였다.
형의 성화로 그 남자는 그날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로점을 봤다.
그 남자의 타로 점괘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이번에 놓치면 더 이상 기회는 없어. 다시는 만나지 못할 거야.”였다.
그 남자는 결심했다.
이번에는 부모님을 위해서가 아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기로. 이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기로.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정리했다.
일을 그만두고, 차를 팔고, 적금도 깨고 모든 것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일본행 비행기에 탔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각오로.
이 남자는 일본에서 건축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꿈꾸는 미래에 나도 함께 있었다.
그렇다, 이 남자는 한국에서의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나와 함께하기 위해 나에게 온 남자다.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타로점에 인생을 걸어본 것이다.
설령 내가 그를 원하지 않더라도 마지막을 잡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그의 미래에 함께하지 못한다면 그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건축 공부를 하며 일본에서 지낼 계획이었다.
그런 남자에게 방광경 검사를 마친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암입니다. 방광암.”
그때 그 남자 나이 28세였다.
“네? 암이요…?”
입가에 옅게 퍼지는 이 미소는 뭐지? 사람은 너무 황당한 경험을 하게 되면 표정이 오작동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에~~~ 혼또데스까? 마지데? (진짜요? 진짜예요?)”
그는 너무나 건장한 20대 청년이었다. 조금 전 방광암이라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오진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우리의 의심 어린 눈초리를 눈치채셨는지 의사 선생님은 방광 내시경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을 시작하셨다.
주로 70~80대 노인들에게 발병하는 암이 20대의 젊고 건장한 남자에게 발병하였고, 이런 경우는 흔하지 않아 다른 의사들이 알아차리지 못했을 거라고 한다.
병의 진단이 늦어져 그동안 암이 많이 커진 상태며 건강한 사람일수록 암의 진행 속도가 빨라서 당장 수술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방광암 수술은 요로를 통해서 방광 내시경을 삽입 후 방광 내부 표면에 생긴 종양을 확인 후 모두 제거하면 끝이 나는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란다. 내시경을 통한 수술이어서 끝나고 며칠 쉬면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의사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젊으니까 회복이 더 빠를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20대의 우리에게 암이란 너무도 생소한 단어다.
그것도 자기 몸 안에 암이 있다는 말은 믿기 힘든 말이다. 흔하지 않은 그 병이 그것도 암이 왜 이 남자에게 발병한 것인지, 실감이 나질 않았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겉모습은 너무 멀쩡했기에 오진일 거라는 생각만 자꾸 들었다.
하지만 방광 속에 떡하니 자리를 잡은 종양 초음파 사진이 우리 모든 생각을 말끔하게 날려버렸다.
그 남자는 한국에 계신 그의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말씀드렸다. 부모님은 당장 한국으로 돌아와 수술받으라고 하셨지만, 그 남자는 한국에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그에게 수술하는 장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일본에서의 수술을 선택한 이유는 아무것도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병 때문의 한국에 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였다.
다만, 일본에서 수술하기로 한 이상 일본에 들어온 기간이 짧아 아직 건강보험증이 나오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그 남자는 의사에게 자기 의사를 밝히고 건강보험증이 나올 때까지 약을 먹으며 버티기로 했다.
건강보험증은 몇 주 뒤에 발급되었다.
수술실에는 나도 함께 들어갔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던 그 남자를 대신해 내가 통역을 해 줘야 했기 때문이다.
수술할 때 통역할 말이 뭐가 있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수면 내시경으로 위내시경을 할 때를 생각해 보라.
“옆으로 누우세요. 등을 침대 끝에 붙이세요. 입을 벌리세요. 튜브를 살짝 물어주세요. 무릎을 더 당기세요. 수면마취 합니다.” 등등 얼마나 해야 하는 동작들이 많은가.
방광암 수술은 하반신 마취여서 취해야 하는 자세들이 있었다.
그리고 일본은 화면을 통해 수술하는 장면을 환자도 함께 보며 설명했다. 종양은 어느 위치정도에 있고 크기는 크다 작다 같은 말과 지금 그것을 제거했다는 것들을 알려주면, 나는 그 말을 통역했다.
간단한 수술이라고 했는데, 하반신 마취가 잘되지 않아 척추에 긴 바늘을 20번 넘게 찔러 겨우 마취에 성공했고, 건강보험증 발급을 기다리는 동안 암세포가 많이 퍼져 수술이 예상 시간보다 훨씬 길어졌다.
그는 많이 지쳐있었지만,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다른 병도 아니고 암인데 몇 주씩이나 기다려 굳이 일본에서 수술받을 필요가 있었냐고, 그러다가 잘못되면 어떡하냐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그때 우리에겐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꿈이었다.
우리에게는 젊음이 있었고, 암이란 병은 잘은 모르지만, 열정과 패기로 모든 걸 이겨 낼 수 있다는 믿음과 자신감이 있었다.
수술만 끝나면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여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굳게 믿었다.
삶을 살다 보면 이런 때가 꼭 있다.
다른 무엇보다 나의 꿈이 맨 앞줄에 있는 시기.
그때는 그 무엇도 우리를 막을 수 없다. 이때 우리는 가장 강하며 가장 빛이 난다.
그의 나이 28세.
방광암 수술을 한 그때, 그는 가장 큰 보폭으로 씩씩하게 꿈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