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아장아장 걷는 아가 였을때 나는 비 오는 날이 좋았다.
날이 궂으니 굳이 밖에 나가 산책하지 않아도 되니까 하는 이기적인 마음에서다.
밖에 나가지 않으면 초라하고 비루한 내 모습을 사람들이 볼 수 없기도 하니까.
그러다 아이가 좀 더 크고 나니 날이 화창하던 비가 오건 말건 무조건 밖에 나가자는
아이의 성화에 못 이겨 무조건 외출을 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에도 장화를 신고 공룡그림이 이쁘게 그려진 우산을
쓰고 나도 같이 룰루 랄라 하며 나가 주었다.
참방참방 빗물이 고인 집 앞 산책길을 한참을 걷고 나서야 집에 들어갔다.
언제는 첫째 아이가 5살쯤 되었을 때, 우리는 캠핑을 시작했고 그중에서도
비가 오는 날에 텐트를 치고 우중 캠핑을 즐겼다.
왜 굳이 비가 오는데 밖에서 텐트를 고생스럽게 치고 비가 오는데 거기서 라면을 끓이고
커피를 마시고 하는지 경험해 보기 전에는 그저 미친 짓이라 생각했다.
텐트 천장에 비가 또로록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따듯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있노라면
그간의 상심했던 일이나 고심이 잠시 빗물과 함께 흘려보낼 수 있으니 그 정서도 나에게는 좋았다.
그런데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니 비 오는 날이 되려 걱정이 되었다.
무거운 책가방을 메고 우산까지 들고 걸어갈 생각을 하니 횡단보도는 잘 건널까, 미끄러져 넘어지진 않을까
괜스레 노심초사다.
이렇게 걱정과 불안이 감돌고 마음이 한껏 외로워진다고 생각이 되면 따듯한 커피 한잔을 타서 창문 너머 비 오는 것을 구경한다. 비 오는 날은 다양한 감정이 섞여서 싱숭생숭 한가보다.
비 오는 날 장화 신고 신나게 참방 거리는 아이의 모습, 텐트에 앉아 빗방울 보는 우리, 가방 메고 우산을 쓰고 조심조심 등굣길을 걸어가는 아이의 모습, 모두가 다시는 못 볼 것 같은 풍경이라 생각을 하면 매 순간순간이 소중하다.
지금 이 순간이 그때의 감정이 뭐였던지 간에 습습한 비 오는 공기의 냄새와 쌀쌀한 추운 기운이 한데 어우러져 묘한 이 순간이 취향을 넘어선 일상의 위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결국 나는 비 오는 날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