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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u Sep 15. 2019

동물을 좋아하세요?

              

지방자치단체에서 동물보호 업무를 맡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여러 마리의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있다는

한 시민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그의 목소리에는 억울함이 잔뜩 묻어있었다.



"유독 그 사람만 밥을 못 주게 한다니까요? 그거 동물학대 아니에요? 밥을 안 주면 고양이들이 다 죽는다구요."



자세히 말을 들어보니 그는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동 1층 화단에서 오고가는 길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주는 중이라고 했다.


왜 하필 이웃집 베란다 밑에서 밥을 주시냐고 이유를 물었더니


그곳이 다른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고

고양이들이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이라는 설명을 더해 주었다.


내가 그에게 되물었다.


  

"이웃 분께 허락을 구하신 적은 있나요?"



나의 질문에 그는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것이

불법은 아니지 않냐며 화를 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현행법상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행위 자체는 법의 영역에서 정해놓은 바가 없기에 불법도 합법도 아니지만, 대부분의 지자체에서는 고양이 개체수를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TNR(중성화 후 방사)길고양이 급식소 사업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관리 방향을 설정해 놓았다.


그렇기 때문에 행정기관의 로고가 부착된 급식소가

여러 곳에서 운영되고 있는 것을 보고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은 '합법'으로

밥을 못 주게 하는 것은 '불법'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



"고양이가 싸우거나 우는 소리에 불편함을 느끼시는 분들이 많아요. 싫어한다는 이유로 동물을 해코지하는 것은 동물학대지만 본인의 집 앞에서 밥을 못 주게 민원을 넣는 것 만으로 동물학대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정해진 법과 규정에 대해 설명하며 다른 이웃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행동할 것을 권고하자 그는 만족스럽지 않다는 듯 몇 마디를 덧붙이며 이렇게 물었다.  



"근데 거기서 일하시는 분들은 동물을 좋아하는 분들이 맞아요?"



나의 말투 어딘가에서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은 모양이었다.



‘선생님, 저도 동물 좋아하거든요? 집에도 두 마리나 있거든요?



아주 잠깐, 입가에 맴도는 바보 같은 말을 던져볼까 했지만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내 자리에서 '잘해야 본전'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15년 여름.


광화문 광장에 나가 처음으로 피켓을 손에 들었다.

당시 일했던 동물보호단체에서 기획한 거리 캠페인에서였다.




동물보호단체의 거리캠페인



신입 활동가들은 동물보호와 관련한 팸플릿을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선임 활동가는 마이크를 손에 쥐고 우리의 활동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일부 활동가들은 시민 봉사자들과 함께 취재를 나온 기자들 앞에서 준비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거나 정부 기관에 전달할 서명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가 준비한 캠페인이 한참 무르익을 무렵

지나가는 한 시민이 나와 내 동료들을 향해 물었다.

         


“당신들이 동물을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왜 다른 사람들한테 그걸 강요하는 겁니까?”          



순간 우리가 서 있던 곳의 분위기가 냉랭해졌다.     

 

상대 팀 선수가 하프라인에서 찬 공이

손 쓸 새도 없이 골대로 직진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를 포함하여 현장에 있던 대부분의 신입 활동가들은 단체를 대표하는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기에 우리는 난감한 표정으로 선임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선임은 침착하게 캠페인과 관련한 단체의 입장을 설명했지만 질문을 던진 시민은 대답 같은 건 애초에 들을 생각이 없었다는 듯 자리를 떠났다.


동물보호단체에서 일하며 참여했던 수많은 캠페인 중 유독 이 날의 에피소드가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이름 모를 시민이 길에 내던지듯 버리고 간 질문이 이후로도 오랫동안 나와 함께 했기 때문이다.




공존하는 사람들




사회운동(Social movement)의 정의는 학자들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기존의 규범, 가치,  제도, 체제 등을 변화시킬 것을 목적으로 다수의 개인들이 조직적으로 행동하는 집합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우리 사회에서 불합리하거나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법과 제도 그리고 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목소리를 내고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동물보호(권)운동(Animal rights movement)’은 ‘인간이 동물을 잔인하게 이용하고 무분별하게 착취하는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이 동물의 권익을 대변하고, 동물들이 보다 나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는 행위라고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동물과 관련한 이슈는 사람들의 실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여겨지는 문제들이 다수이며 동물을 위한 행동은 도덕적·제도적 타당함이 아닌 감정의 영역에서 보다 쉽게 이해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광화문 광장에서 캠페인을 하는 동물보호활동가들에게 질문을 던진 한 시민의 경우가 그렇다.


동물을 잔인하게 착취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목소리는

오직 동물을 불쌍히 여기며, 좋아하는 사람들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로 받아들여진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고 외치는 환경보호 활동가들에게 '당신만 지구를 소중히 아끼면 됐지, 왜 그걸 다른 사람들에까지 강요하냐?'라고 묻는 사람은 없는데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언젠가부터 나는 동물을 위한 나의 작은 실천과 행동들을 '동물을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대답에서 가능한 멀리 떨어뜨려 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인간과 비인간 동물이 함께 공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결국에 왜 옳은지에 대해 정확한 대답을 할 수 있으려면, 동물에게 필요한 우리 사회의 변화가 동물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한 감정의 영역에서 이야기되는 것을 가능한 배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노력은 무엇일까?

 



나는 나의 일터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분노 가득한 민원인들과 이야기를 한다.

 


동물보호법은 왜 그 모양이냐고

유기동물을 위한 지원은 왜 그것밖에 안 되냐고

학대받는 동물이 불쌍하지도 않냐고

가여운 길고양이를 저렇게 내버려 둬야 하는 거냐고

도대체 당신이 거기에 앉아서 하는 일이 뭐가 있냐고

 


물론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유명무실한 동물보호법과 정책에 대한 불만사항을 전달하기 위해 나를 찾는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따금씩  사람의 실무자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 않음을 느끼고 하염없이 무력해지기도 하지만


언제나 이것만은 단호하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에 대한 일말의 관심도 없이.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충분한 고민도 없이


누군가에게 분노를 쏟아내는 것 만으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말이다.


좋아하는 것을 그저 좋아하는 일은 쉽다.

좋아하는 것을 지켜내는 일이 항상 어렵다.


어떠한 것을 좋아만 하는 일에는

아무런 노력이 필요하지 않지만


좋아하는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선

가장 효과적이고 정확한 방법을 고민하고 행동하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임희섭, 1999. 『집합행동과 사회운동의 이론』 고려대학교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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