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소식을 알리는목소리는 때마침 찾아온행운의 시그널 같았다. 대학원 선배를 만나 미궁 속에 빠져버린논문 주제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던 중에 받은 연락이었기 때문이다.
며칠 뒤 나는 부푼 기대를 안고 단체의 사무국으로 찾아갔다.
면접은대표님과 단둘이 진행됐다. 대표님은 긴장한 나를 위해 따뜻한 차 한잔을 준비해 주셨다. 일요일 아침에 방영하는 동물 프로그램에서 자주 보던 분이었다.
“하루씨는 왜, 동물보호단체에서 일하고 싶어요?”
입사 동기를묻는 질문 정도는버튼을 누르면 망설임 없는답이 쏟아져 나올 만큼준비되어 있었다.
반려동물의비윤리적인 산업 실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접하며문제의식을 느꼈고, 앉아서 읽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의문들을 현장에서 직접 부딪혀 가며 배우고 싶다고 말이다.
“좋아요, 하루씨.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볼게요.”
순조롭게 흘러간 면접의 마지막 질문이었다.
무거운 긴장감 같은 건 진즉에내려놓은나는가벼운 마음으로마지막 질문에 귀를 기울였다.
“이곳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은 모두 채식을 하고 있어요.”
마지막 질문의 첫 문장은 질문이 아니었다.
훈훈한 면접장에 찬기운이올라왔다.
“완전 채식까진 아니더라도 페스코 정도는 실천해 줘야 해요.할 수 있겠어요?"
입사에 대한 간절함이경솔한내 입을 저만치 끌고 나갔다.
“아, 그럼요! 물론이죠! 할 수 있죠!”
면접은 근거없는 호언장담으로 끝이 났고 나는한결 무거워진 마음을 안고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그 순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과 온갖 잡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꼬리잡기 놀이를 하기 시작했다.
문제였다.
내가 개와 고양이 말고 다른 동물에는 관심이 없던 사람이어서 문제였고, 고기반찬 없이는 한 끼도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는 인간이라는 게 문제였고, 그리하여 동물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고 자신 있게 말했던 내가 한 번도 ‘채식’에 대해서는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이제부터 나는 고기를 끊어야 한다는 걸까?
고기반찬없는 밥상은 세상 의미 없는 것 아니었나?
회사에서는안 먹고 집에 가서 먹으면 되는 거 아닐까?
그냥 안 먹은 척하면 되는 거 아닐까?
정말 채식을 실천해야 하는 걸까?
페스코라는 건정확히 뭘까?
연어를 먹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걸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조건'이 '채식'이 되어버린 순간부터고기반찬을 좋아하는 나를 밀착 감시할 것만 같은 눈들을의식하게되었다.
나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단체 입사 후 주간 회의 시간에 몰래 고기를 먹은 사람으로 걸려 망신을 당하는 전개까지 펼쳐지고 있었다.
면접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달라졌다. 이럴거면 차라리 불합격 소식을 듣는 게 낫지 않을까. 스스로 책임 지지도 못 할 일들을 하려는 게 아닐까 두려움이 앞섰다.
그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는 처음으로 ‘채식’이라는 행위에 대해 진지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동물보호뿐 아니라 건강, 종교적 신념 등의 다양한 이유로 채식을 실천하고 있었다.
동물과 동물에게서 나온 모든 음식을 먹지 않는 가장 엄격한 단계의 채식을 ‘비건(Vegan)’, 채식을 하며 유제품을 먹는 단계는 ‘락토(Lacto-Vegetarian)’, 채식을 하면서 달걀이나, 우유, 꿀처럼 동물에게서 나온 음식까지는 먹는 단계는 ‘락토 오보(Lacto-ovo-Vegetarian)’, 어패류까지 먹는 단계는 ‘페스코’, 닭과 같은 조류의 고기를 먹는 단계는 ‘폴로(Pollo Vegetarian).’라고 했다. 섭취할 수 있는 음식에 따라 더 세분화되어 있지만 대충은 이렇게 정해져 있었다.
내가 입사를 지원했던 동물보호단체는 ‘페스코’, 즉 해산물을 섭취하는 것 까지는 허용하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