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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ru Nov 30. 2019

길고양이는 죄가 없어요.

같이 좀 살죠, 우리.

고등학교 때였다.     


같은 반 친구와 함께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친구가 발걸음을 멈춰 섰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려 보았더니,

그 아이의 시선은 한 마리의 고양이를 향해 있었다.     


어딘가를 바쁘게 가던 고양이도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친구를 쳐다봤다. 아주 잠깐 둘 사이에 무언의 대화가 오고 가는 것만 같았다.          



“왜 그래? 고양이 때문에?”          



나의 물음에 친구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당시에 나는 길고양이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굳이 말하자면, ‘고양이가 길에서 사는구나.’ 정도.     


나에게 길고양이는 걷다가 흔히 보이는 비둘기, 까치, 참새 같은 조류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보이는 게 자연스러운 나머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존재. 호불호뿐 아니라 개인적인 감정이나 생각이 요만큼도 없었다는 말이다.          



"고양이 싫어?"         



당시 수의대 진학을 꿈꾸던 친구였는데

고양이를 싫어하는 것 같아 의아했다.


우리를 번갈아 보던 고양이는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제야 친구는 다시 길을 걸으며 말했다.               



“고양이가 싫은 게 아니라 길에서 사는 고양이들이 싫어. 무슨 병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길고양이에 대해 별 생각이 없던 나였지만

그 말은 어쩐지 조금 불편했다.               



"뭔 소리야? 쟤는 길에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겠냐."



나의 무성의한 대답에 친구는


이따금 씩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는 고양이를

마주할 때마다 소름이 끼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어느 날인가 혼자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튀어나온 고양이 때문에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반려동물 인구가 1000만이 넘었다는 뉴스가

때마다 언론에 등장하고

우리 사회의 동물보호 인식이 점점 더  성장하고 있다는 공신력 있는 기관의 발표가 새삼스럽지 않은 요즘에도

나는 그 친구가 했던 차별 가득한 말을 심심치 않게 듣고 있다.          



길고양이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



공무원들 사이에서 동물보호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는

기피 대상 1호다.           


얼마 전 참여했던 지자체 회의에서는

동물 업무만 맡으면 담당자들이 연이어 휴직을 한다는

차마 울지 못할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담당자들의 정신건강을 위해

특별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제안도 있었고

인력 충원이 절실하다는 호소도 있었다.


담당자들끼리의 소통을 위해 마련된 회의는

어느새 성토의 장이 되었다.

     

외부에서는 그들에게 비판의 목소리를 더하던 나도

고개를 절로 끄덕이고 있었다.


나 역시 직접 들어가 보기 전까지는

이 정도로 힘든 일인 줄 몰랐으니까.      


어찌 보면 나는 일반 공무원들과는 달리

동물보호단체의 활동가로 일을 한 경험이 있고


사실상의 업무 강도가 그보다 센

국회의원 보좌진을 거친 후에 지방자치단체의 업무를 맡았는데도

동물보호 업무가 힘들고 어렵다는 그들의 말에

십분 동의할 수 있었다.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슈는 합의점을 찾기가 어렵고

새로운 정책을 시행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 하나 잘못될 경우

담당 공무원 하나 조지면 해결된다는 식의 분위기가

만연한 현실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부분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길고양이’와 관련한 이슈라고 말할 수 있다.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동물보호업무는 한 사람이 담당한다




누군가는 길고양이를 본인의 집에서 키우는

반려동물과 같은 의미로 생각하고


누군가는 길고양이를 사람들에게(적어도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혐오스러운 동물로 생각한다.


여기에서 문제는


길고양이를 반려동물처럼 생각하는 사람들과

치워버려야 할 유해동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공교롭게도 같은 도로를 공유하고 마주하며 살아가는

‘이웃’ 일 때 발생한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그 공교로움이

대한민국 전역에서 자주 마주할 수 있는 흔한 풍경이라는 것이다.           


길고양이를 둘러싼 다양한 이슈 중에 가장 흔한 민원은 ‘밥’이다.          


서로의 안부 인사를 '밥 먹었는지'로 묻고

언제 한 번 만나자는 약속을 '밥 먹자' 말로 대신하며

 '밥'을 많이 주는 것을 '인심이 후하다'라고 말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밥'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무엇이다.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자

인연을 이어주는 매개이자

한 사람의 인성을 판단하는 곳에 '밥'이 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떻게든 길고양이들의 '밥'을 사수하는 사람들과


제발 길고양이에게 '밥'을 못 주게 해달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단 몇 분간의 차이로 언성을 높일 때면


‘아니, 도대체 길고양이가 무엇이길래 저렇게 다들 자기 말만 옳다고 성화일까.’ 싶기도 하다.


분명한 건,


어떤 이들에게 길고양이는

입에 밥이 들어가는 걸 보지 않으면

애달픈 존재들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최소한의 밥 조차 줘서는 안 되는

정의 대상이 아니라는 거다.


길고양이의 밥을 사수하는 사람들은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면 그들이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아 오히려 위생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살아있는 생명이 길에서 굶지 않도록 밥을 주는 것은 모든 것을 떠나 ‘선하고 옳은 행동’이라고 생각하며 언제나 사람과 동물이 ‘함께 사는  세상’을 강조한다.      


반면 길고양이의 밥을 주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길고양이한테 밥을 주면 계속해서 개체 수가 늘어나고, 개체 수가 늘어나면 울음소리와 같은 소음도 심해지며 배설물이 아무 곳에나 방치되어 오히려 더 주변 환경이 불결해진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동물보다 사람이 먼저 살고 봐야 할 아니냐며 마치 자신의 복지가 동물들의 복지보다 우선 순위에서 밀린 것처럼 억울해한다.



문제는 정말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일까?



전자의 경우 얼핏 옳은 말처럼 보이지만 큰 맹점이 있다.


이웃들을 위해 주변 환경까지  깨끗하게 관리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손에 꼽는다는 점이다.


물론,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자리를 깨끗하게 치우는 것 부터 이웃들의 민원까지 살뜰하게 살피는 캣맘들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실상


자신이 돌보는 고양이가 끼니를 굶고 앉아있는

모습에는 큰일이 난 것처럼 화를 내도


길고양이로 인해 불편을 겪고 있는 이웃들의 표정에는 무관심한 경우가 조금 더 많다.


나라님도 못 하는 일을 나 같은 개인이

사비를 내면서까지 하고 있으니

되려 표창장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큰 소리를 치는 사람들도 있고


동물과 사람이 함께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피를 토하듯 말하는 사람들이


사실 사람과 사람이 함께 서로 배려하며 살아가는 일에는

그리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이야기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생존율이야 당연히 높아지겠지만


실제로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며 관리하는 사람들이 없으면

그로 인한 불편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길고양이의 개체 수 조절은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중성화 사업(TNR)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길고양이 개체 수 조절이 실효성 있는 성과를 거두려면 현재 통상적으로 투입하고 있는 예산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집 앞에 있는 길고양이들을

어딘가로 치워달라며 민원을 넣는 사람들은


길고양이 개체수 조절을 위한 사업에

최소한의 최소한도 아닌,

시장의 상식 이하의 돈이 쓰이고 있다는 것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겠지만

언제나 내가 느끼는 불편을 누군가가 짠! 하고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데 과연 그들이 좋아할까?

본인의 세금이 ‘길고양이’에게 쓰이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지금으로선 대부분 민원이 들어오면

현장에 나가 눈에 보이는 고양이 몇 마리를 포획하여

수술하고 방사하는 것에 그치고 있고


부족한 예산과 인력은 캣맘들의 ‘자발적인 봉사’를 통해 메우고 있다.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캣맘들이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행위가

오로지 자신들의 불편을 가중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그들의 행위가

어느 정도의 순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고양이는 잘못이 없다.


실상 길고양이 자체가 일으키는 문제보다 길고양이를 둘러싸고 서로 다른 마음의 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상대방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들이 더 많다.   

     




진짜 문제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그들에게 있다



 


다급한 목소리로 내게 전화를 걸어

집 앞에 있는 길고양이를 치워달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언제나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선생님, 거. 같이 좀 살죠. 우리"



오직 길고양이만을 위하며

다른 사람들의 마음은 살피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선생님, 거. 같이 좀 살죠. 우리."



아무리 생각해도 길고양이 밥을 둘러싼 이슈는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것이 옳은가, 아닌가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어느 누군가는 나의 존재를

무던히 참고 배려해주며 살아가고 있다는 걸


그들은 알고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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