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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Aug 06. 2020

낡은 집과 인간관계의 공통점

손길이 닿지 않으면 허물어진다

이 동네엔 빈집이 많다. 오후 산책길에 만나는 낯선 집들 중 두 집 건너 한 집은 사람이 살지 않는 듯하다. 어린 시절 동생들과 염소 할머니 집이라 부르던 산등성이의 집도, 겉보기엔 제법 번듯해 보이는 옆 마을 입구께 집도 이제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집들은 허물어진 지 오래다. 벽만 남아 집이었음을 짐작하는 터를 지나다 보면 그곳에 살았을 누군가의 사연이 궁금해진다. 비바람에 서서히 풍화되었을 빈집의 세월을 희미하게 상상한다.


은행나무집 역시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년째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다. 이 곳에 내려온 엄마는 아픈 몸을 하고도 수시로 은행나무집을 가꾼다. 마당의 풀을 뽑고, 아궁이에 쌓인 오래된 재들을 퍼올렸다. 또 외양간에 수북하게 쌓인 나뭇잎들을 쓸어내 퇴비 간으로 옮겼다. 이제는 창고가 된 사랑방의 물건을 한쪽으로 가지런히 정리하기도 했다. 은행나무집을 쓸고 닦으며 나온 쓰레기들은 분리수거장이 있는 마을회관으로 몇 차례나 낑낑대며 운반했다.


나는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집 정리를 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직 수술한 곳이 회복되지 않은 탓에 집안일을 많이 한 날이면 후유증이 꽤나 컸다. 풀은 뽑아봤자 내일 비 오면 또 날 테고, 쓰지도 않는 외양간 청소는 대체 왜 하는지. 왜 환자인 엄마가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 엄마 곁에서 몇 번이고 투덜댔다. 그때마다 엄마는 말했다. "손길이 닿지 않은 집은 금방 허물어져."라고. 작은 풀들이 틈새를 비집고 자라면서 스러져버린 화단처럼, 만져주지 않으면 집은 천천히 망가져 버린다고.



엄마의 말은 틀리지 않은 것 같다. 동네 곳곳의 무너진 빈집과 은행나무집의 차이가 있다면 이따금 누가 들여다본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가까이 사는 이모가 가장 고생을 해주셨고, 엄마의 다른 형제들도 일 년에 몇 차례는 은행나무집을 찾는다. 매일 쓸고 닦을 순 없지만 이렇게라도 오가며 청소도 하고, 필요한 부분을 손 본다. 다들 차로 몇 시간이나 달려 이 곳에 모이는 것은 형제자매들에게 소중한 장소가 지켜지기를 바라는 마음일 테다.


얼마 전 연중행사로 은행나무집에 모인 대가족을 보며, 나는 낡은 집이 인간관계와도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좋은 관계일지라도 각자 사는 게 바빠 서로를 매일 들여다보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어진 끈이 지속되길 원한다면 작게나마 꾸준한 관심을 쏟아야 한다. 그 공백이 너무 길어지면 어느 순간 복구하기 어려울 만큼 허물어져 있을지도 모른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빈집을 쓸고 닦는 엄마의 마음은 언제든 이 곳에 돌아올 가족들을 향한 애정이었을 수도 있겠다.


어느덧 수 천 개나 쌓여있는 휴대폰 연락처를 본다. 나의 모든 고민을 공유했지만 졸업 후 단 한 번도 연락하지 못한 친구, 첫 직장에서 힘든 마음을 위로해줬던 직장상사, 기자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큰 도움이 됐던 취재원. 내 인생의 변곡점을 함께했던 소중한 이들이지만 이제는 이름 석자와 11개의 숫자로만 남아있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함께 쌓았던 관계는 얼마나 남아있을까. 벽만 남은 빈집이 아니라면, 아직 매만질 수 있는 여지가 있다면 다시 온기를 돌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마음이 닿지 않는 관계는 금방 허물어지는 것을. 괜한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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