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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Aug 11. 2020

삶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사람들

시골 장례문화와 공동체

시골살이가 제법 길어지면서 이웃들과 점점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그중 가장 빈번하게 들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에 대한 사연이다. 경조사에 가던 차에 큰 사고가 있었다는 이야기, 산책 때마다 눈 여겨본 멋진 집의 주인이 세상을 떠난 이야기, 엄마처럼 아팠던 이웃의 병이 재발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 농촌에 늘어난 빈집 수만큼이나 많은 이웃들이 떠나갔다.


이곳에서 이웃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것은 스스럼없이 꽃나무를 나누는 일보다 자연스럽다. 대부분 동네 사람들이 장례절차에 함께 참여하기 때문이다. 기억을 더듬어보자면 코끝이 매섭던 2015년 겨울 치렀던 할머니의 장례도, 3년 전 있었던 할아버지의 장례도 그랬다.


장례식장에서 3일장을 치르고 조문객을 받는 형태는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그 모든 절차에는 마을 사람들이 있었다. 함께 조문객을 맞았으며 장지로 가는 마지막 길에 꽃 상여를 매거나 그 뒤를 따랐다. 장지에서 따뜻한 음식을 건네는 손길까지 이웃들의 몫이었다. 그러니 잊어버릴 수 없을 것이다. 곁에 있었던 한 사람의 삶과 죽음을.  



지난해 젊은 장례지도사를 인터뷰하면서 할머니의 장례가 있었던 겨울을 다시금 떠올렸다. 20대인 그의 첫 직장은 원룸이나 고시텔에서 고독사하는 노인들의 장례를 주로 치르는 곳이었다. 힘들여 조회해보지 않으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이들의 죽음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 머물지 않고 너무도 쉽게 흩어졌다.


공동체의 붕괴와 그로 인한 단절, 불신에 대해 나름 고민해 왔지만 가장 안타까운 단절은 그로부터 전해 들은 죽음이었다. 이웃의 마지막을 함께하고, 또 추억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곳에 오니 더 아쉬움이 든다. 은행나무집 뒷 산 장지에서 이웃들과 나눠 먹던 국밥 한 그릇의 온기를 그들과도 나눌 수 있었다면.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하는 아쉬움은 비단 가는 길이 외롭다던가 하는 이유만은 아니다. 죽음의 뒤에는 남겨진 사람들이 또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따르기 때문이다. 도시에 나가 살던 아들이 돌아가신 어머니 집에 주말마다 내려온다던가, 젊은 귀농인에게 세를 줬다던가 하는. 앞선 이들을 기억하는 이들은 새로 맞은 이웃들에게 다시 손을 내밀어 공동체를 이어간다.


이모는 시골에서도 이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장례절차를 온전히 상조회사에 맡기면서 이웃들의 도움이 필요 없어진 것이다. 번갈아 장례식장을 지키거나 장지까지 따라가는 일도 드문 일이 됐다. 최근 건너 마을에 누가 죽었다는데 왜 인지는 모른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연스러웠던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을 괜스레 쉬쉬하는 분위기도 생겼단다. 새로운 세상의 공동체는 어디로 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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