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엄마가 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직후 인터넷 사이트와 책을 뒤지기 시작했다. 책에서도, 온라인상에서도 많은 사람들은 암환자에게 생활습관을 바꾸기를 권유했다.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먹지 말아야 할 음식, 하지 말아야 할 행동도 제법 많았다. 암 환자를 돌본 경험이 있는 지인들은 걱정과 함께 '이제 다른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며 조언해주기도 했다.
미리 공부한 내용은 엄마와 생활하면서 약간의 도움이 됐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참고할 정도의 수준이었지 그대로 따른 것은 별로 없다. 권고대로 운동을 했고, 잡곡 위주로 식단을 바꾸긴 했어도 설탕을 끊거나 치료에 좋다는 음식을 따로 챙겨 먹지는 않았다. 때마다 먹고 싶은 것을 먹고, 하고 싶은걸 하면서 스트레스를 줄이는 게 치유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평생을 '00해야 한다'는 말에 쫓겨 큰 병을 얻은 엄마에게 다시 그 말을 하는 것이 죄스러운 까닭도 있다.
이렇게 살다 보니 가끔은 누가 나이롱환자와 엉터리 보호자라고 할까 걱정도 된다. 그래도 이게 엄마와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엄마는 내가 엄마를 닮아 완벽주의라고 말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엔 영 아니다. 완벽해야 하고 꼼꼼해야 한다는 강박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기보다는 그냥 모든 상황과 감정에 예민한 쪽에 가깝다. 12년 만에 엄마와 살아보니 그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런 성격은 차라리 좀 헐겁게 사는 게 행복하다는 배움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되는대로 느슨하게 지내고 있다. 시골에 왔으니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일들을 하지만, 그것도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싶은 대로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뭘 해도 좀 어설프다. 마당에 풀을 뽑다가 보기 드문 잔대를 잡초로 알고 뽑아버린다던가, 도라지 씨 뿌려 놓은 곳을 밟고 다니다 뒤늦게 '아차'하는 순간들이 있다. 약이라고 선물 받은 건강보조식품을 놓고 먹으면 될까 안될까 한참 토론 끝에 먹기로 해놓고는, 결국 맛이 없어 포기해버리는 웃픈 날도 있었다.
우리의 엉성함은 하루 한 번 산책에서 최고조가 된다. 시골살이 한 지 며칠 됐다고 농작물 이름이나 나무, 새 이름 따위를 자신 있게 외칠 때다. 엄마는 강낭콩 모종을 보고 녹두라고 우겼고, 또 살구나무와 매실나무를 잘 구분하지 못한다. 나는 가지 모종을 구분해 내는데 꽤나 시간이 걸렸다. 근거 없는 자신감에 엉뚱한 이름을 외치고 나면 그 뒤에는 어김없이 이모의 사실관계 정정이 따라온다. 시골이 처음인 나는 그렇다 치자. 이곳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엄마는 무늬만 촌 출신이라는 놀림을 받으며 또 한바탕 배를 잡고 웃는다.
오늘도 등산복에 선캡에 누가 봐도 외지인 같은 복장을 하고서는 마을을 걷는다. "농번기에 이렇게 놀러 다니면 눈치가 보이지 않아?"라고 서로 걱정하면서도 그 걱정도 금세 날려버린다. 우리는 환자답지 않은 모습으로, 또 보호자답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간다. 마음속에 똬리 틀은 두려움을 웃을 때나마 잊을 수 있다면. 엉터리 환자에 보호자. 엉터리 시골사람. 완벽하지 않은 모습과, 그렇지 않은 날들도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