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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Jul 16. 2020

엄마의 일기에 침묵한 이유

나는 왜 위로할 수 없었을까

은행나무집에 오고 첫 외래에서 수술 경과가 좋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 정원에 앉아 오후 진료를 기다리고 있던 때였을까. 엄마가 내 쪽으로 휴대폰을 슬쩍 내밀었다. 내 손에 건네진 휴대폰 메모장에는 어느 하루의 기록이 빼곡했다. 세 달 전쯤 암 의심 소견을 재차 확인한 날의 일기였다.


엄마는 그 날을 아프게 기억했다. 의심부위를 찔러 조직을 떼어내는 고통은 쉬이 참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조직검사를 했던 곳까지 재차 검사를 반복하면서 몸은 지칠 대로 지쳤다. 여기다 혹시 재발일까, 더 큰 이상이 있을까 노심초사하는 걱정까지 무겁게 더해져 일기 속의 엄마는 무너지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그 날의 엄마를 알지 못했다. 가족들이 바쁘다는 이유로 함께 병원에 가지 못한 날이 엄마에게는 태어나 가장 외롭고 괴로운 날이었을 줄이야. 병원에서 나와 홀로 국밥을 시켜놓고 엉엉 울었다는 처량한 기억에 나는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 순간 엄마와 함께 있지 못한 것이 후회됐다.


그리고 지금까지 엄마의 일기를 본 날을 또다시 후회하고 있다. 그때의 나는 엄마가 힘들게 꺼내 보인 감정에 조그만 위로도 건네지 못했다. "힘들었지", "옆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해"라는 말들이 턱 끝까지 올라왔지만 정작 내뱉을 수는 없었다. 내 입에서는 "그러니까 아빠가 갈 수 있는 날에 같이 가지 왜 혼자 갔어"라는 책망뿐이었다. 그렇게 엄마의 손 한 번을 잡아주지 못했다.


친구들의 고민상담을 자처하는 내가, 약한 사람들의 호소를 듣겠다며 직업까지 선택한 내가 왜 엄마는 위로할 수 없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엄마의 감정에 내 몫이 있음을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엄마가 혼자 아파했다는 사실을 내심 인정하기가 싫었던 까닭인 것 같기도 하다. 그 감정에 공감하는 순간 그동안 엄마에게 소홀했던 나의 잘못과 그 사이 약해져 버린 엄마의 모습을 받아들여야 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그랬듯 강하고 긍정적인 엄마의 모습만을 바랐던 내 이기심이 위로가 필요한 엄마를 눈 감은 것이다.


다시 시골로 돌아온 엄마가 밤잠을 설친 어느 새벽이었다. 수술 후유증으로 남은 기침은 엄마가 편히 잠들 수 없도록 긴 시간을 괴롭혔다. 나는 힘들어하는 엄마 곁으로 가 말없이 등을 쓸었다. 한 번, 또 한 번 내 손바닥의 온기가 오롯이 엄마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천천히 슥슥. 한참 뒤 호흡이 안정된 엄마는 "네가 등을 쓸어주니 참 좋다"라고 말했다. 일기를 보여준 그 날에도 엄마에게 필요한 위로는 이 정도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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