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록은 짧은 귀향생활의 아픈 손가락이다. 쓰기까지 많은 망설임이 있었지만 그래도 쓴다. 사랑을 쏟았던 작은 존재에 대해.
은행나무집에 내려온 날, 엄마 손에 이끌려간 뒤뜰에는 작고 하얀 고양이가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5년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부터 뒤뜰에서 밥을 얻어먹곤 했던 녀석이었다.
고양이의 왼쪽 귀는 곪을 대로 곪아있었고 오른쪽 귀 역시 성치 않은 상태였다. 피를 많이 흘려서인지 '야옹'하고 울 기력도 남지 않은 녀석은 이 더운 날에도 한기가 드는지 작은 몸을 떨었다. 이모는 아마도 길고양이끼리 영역싸움을 하다 다친 상처가 덧난 것 같다고 했다.
고양이를 구조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지만 막막함이 밀려왔다. 아픈 길고양이를 포획해 본 경험도, 필요한 도구도 전혀 없었다. 그때 떠오른 것이 동물보호단체였다. 인터넷을 뒤져 지역 단체를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감사하게도 포획과 격리에 필요한 도구들을 빌릴수 있었다.
병원에서 확인한 고양이의 상태는 더 심각했다. 종양일가능성이 높은 상처를 제거하는 과정에 귀 한쪽을 절단할 수밖에 없었다. 수술 후 힘이 없는 녀석에게 엄마는 '사랑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나는 회복하는 동안 은행나무집 사랑채에 머물게 된 고양이를 사랑방 손님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엄마와 나는 사랑이를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엄마의 수술 후 요양을 위해 내려온 시골에서 아픈 고양이를 만났다는 것이 우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돌아가진 조부모님께 밥을 얻어먹던 고양이라는 점도 아이를 외면할 수 없는 이유였다.
하지만 우리 마음과달리 사랑이의 상처는 쉽게 낫지 않았다. 매일 영양가 있는 음식을 주고 약도 발라줬지만 계속 덧나기만 했다. 밤 사이 온 케이지가 피투성이인 날도 있었고,차로 20분 거리의 동물병원으로 급히 달려간 날도 며칠이 됐다.
나중에는 내 정성이 부족한 것인지 자책이 되기 시작했다.무엇보다 떠날 날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 마음의 짐이 됐다. 회복기간과 방사 시점까지 고려해 구조를 한 것인데 모든 게 어긋났다.
아이의 임시보호처를 찾기 위해 지역 단체에서 홍보를 해줬지만 몸이 온전치 못한 성묘를 받아들여줄 곳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사이 동물병원에서도 절망적인 이야기가 나왔다. 재수술을 해도 치료될 가능성이 낮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