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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Sep 04. 2020

사랑방 손님 사랑이(2)

길고양이 구조 일기

'큰 수술을 한 엄마와 그런 엄마를 지켜야 하는 나. 우리는 근심 걱정 없는 평범한 일상을 살 수 있을까. 항상 가슴을 졸이며 살아야 할 텐데.  경제적인 부담은 어찌하지. 회사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처음부터 많은 걱정과 이유로 방사를 염두한 구조였다.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은행나무집를 떠나지 않은 아이 었기에 다른 걱정은 없었다. 우리가 떠난 뒤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이 곳에서 지내길 바랐을 뿐이다. 다만 치료가 불가한 상황을 계산하지 못한 건 큰 잘못이다. 짧은 생을 아픈 몸으로 살아가야 할 아이에게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답이 없는 고민으로 며칠이고 밤잠을 설친 끝에 사랑이를 돌려보내기로 했다.


사랑방 손님이 가는 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투명했다. 온 집안에 햇볕이 내리쬈고, 처마 밑 새들은 먹이를 물어 나르기에 분주했다. 돌봐주는 내내 케이지를 답답해했던 사랑이는 그 속으로  조심스레 발을 내밀었다. 금방 줄행랑을 칠 것이라는 내 예상은 빗나갔다. 사랑이는 그의 터전이었던 은행나무집 마당에서 따스한 햇살을 맞으며 한참을 머물렀다.


우리는 남은 며칠 동안 사랑이를 살피며 헤어질 준비를 했다. 사랑이가 먹을 사료와 캔을 준비해 두고, 이모에게 챙겨달라는 부탁을 몇 번이고 했다. 조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사랑이를 챙겨 온 것도 이모라 한시름 놓았다. 사랑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뒤뜰 매실나무 아래서 망중한을 즐겼고, 볕에 달궈진 장독 뚜껑에 올라가 낮잠을 잤다. 우리가 떠나는 날까지도.



사랑이는 변함없이 은행나무집을 지켰다. 집이 빈 뒤에는 종종 옆집 할머니네에서 보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사랑이를 안부 확인하러 간 친척 언니는 살이 부쩍 오른 사랑이를 보고 임신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귀를 치료하면서 중성화를 해줬기에 그럴 가능성은 없다) 식구들 모임차 다시 시골은 찾은 엄마도 사랑이가 살이 올라 많이 예뻐졌다며 기뻐했다.


그리고 복직을 하루 앞둔 날 다시 만난 사랑이는 정말 건강해 보였다. 짧은 눈인사에 줄행랑을 치는 모습이 서운하기보다는 반가웠다. 처음 사랑이를 처음 만난 그날 힘 없이 비틀거리던 걸음과 겹쳐져서다. 상처가 났던 귀는 여전히 마음 아팠지만,  얼마 살지 못할 거란 이야기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내가 없는 은행나무집에서 사랑이는 오늘을 살아간다.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했다.'

'끝까지 책임지지 못했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엄마가 아프지 않았을 때, 내가 조금 더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사랑이를 만났다면 더 많은 것을 해줄 수 있었을까. 괜한 짓을 한 것은 아닌지 자책감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사랑이를 만난 것을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그와 함께한 시간이 너무 소중했기에. 씩씩하게 뛰어가는 사랑이의 뒷모습을 봤기에. 사랑이가 행복하기만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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