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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Sep 27. 2020

어느 날 배우자가 사라진다면

나라는 존재의 책무

"어느 날 아파트 창문에서 출근하는 네 아빠를 배웅하는데 말이야. 가방을 야무지게 메고 신나게 앞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는데 그런 생각이 들더라. 아, 이제 내가 없어도 이 사람은 잘 살아가겠구나."


평소 "네 아빠 없인 못 살아"라는 말을 심심찮게 했던 엄마였다. 은행나무집에 오면서도 아빠 없이 잘 지낼 수 있을까 걱정했다. 아빠 없인 잠도 잘 안 온다는 엄마였기 때문이다. 그런 엄마가 없는 아빠를 가정하다니.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엄마가 생각하는 병은 내 생각보다 더 깊었다.


자신의 부재를 이야기하며 엄마는 희미하게 웃었지만 그 웃음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것을 안다. 결혼한 지 30년도 지나도록 두 분은 서로가 가장 우선인 사람들이다. 가끔은 자식이 먼저여도 될 텐데 하는 왠지 모를  질투심이 들 정도다. 그래도 그 모습이 좋았다. 가정을 꾸린다면 나도 그렇게만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없다면 어떨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정해보지 않은 상황에서 문득 외조부모님이 떠올랐다. 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셨을 때, 엄마와 가족들은 제일 먼저 홀로 남게 된 할아버지를 걱정했다. 70년 넘는 세월을 함께한 반려를 떠나보내던 날, 말없이 눈물을 훔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



결혼 전 나는 지금의 배우자에게 "너무 오래 살고 싶지 않다."라고 말하곤 했다. 삶이 너무 버거울 때면 차라리 정해진 기간을 불태우고 떠나고 싶은 생각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노라면 그는 할 수 있는 나름의 무서운 표정으로 내 입을 막았다. 그 모습이 재밌기도 해서 몇 차례 같은 말을 꺼내봤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하지 않게 됐다.


그런 내가 엄마를 통해 이제야 존재의 책무를 느낀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하자는 식상한 서약 없이도 이미 하나의 끈으로 묶인 사람 곁을 지킬 책임을. 그가 비록 삶에 치이고 넘어지고 엉망일지라도 곁에 있기를 바라는 것처럼, 나도 반려의 의무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어떤 모습이든 그의 곁에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살아간다고들 한다. 엄마의 말대로 아빠도 씩씩하게 남은 삶을 살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생 마음 한편에 남을 상실감은 감히 헤아릴 수가 없다. 배우자가 없는 나와, 내가 없는 배우자를 생각하는 그 마음이 어떨지를. 자신의 부재를 이야기하는 엄마 앞에서 나의 부재를 쉽게 생각했던 지난날을 반성한다.


그래서 헤어짐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게 나와 내 가족은 아니었으면 하는 이기심을 부려본다. 언젠간 있을 일이라면 가장 먼 훗날이길. 엄마와 아빠의 다정한 모습을 오래도록 볼 수 있길 바란다.  괜스레 옆 자리 반려의 손을 꼬옥 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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