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인천 부평구 오래된 아파트 뒤에는 작은 공원이 있다. 낮이면 놀이시설을 이용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저녁에는 개를 산책시키거나 간단한 운동을 하는 주민들이 이곳을 찾는다.
그 중에서도 가장 공원을 즐겨 이용하는 이가 있다면 바로 노인들이다.
공원 한편에는 벤치와 어디에서 왔는지 알 도리가 없는 의자들로 마치 ‘기원(棋院)’을 연상케 하는 공간이 차려졌다. 대여섯 개의 바둑판을 둘러싸고 서너 명의 노인들이 앉거나 선다. 번외 경기인 듯 공원 옆 벤치에서도 심각한 표정으로 수를 두는 노인들이 보인다.
3년 반을 관찰한 결과, 이들은 출퇴근시간이 정해진 듯 오전 9시께면 집에서 나와 해 질 녘이면 돌아갔다. 주말이면 판이 더 커진다.
무리에서 한 발 물러난 노인들은 바둑판 대신 막걸리를 놓고 시간을 보냈다.
노인들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에도 모였는데, 어느 날 공원엔 ‘코로나19로 인한 모임 금지’ 펼침막이 나붙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매일 공원으로 나왔다.
일과처럼 바둑을 뒀고, 빈도가 줄긴 했지만 막걸리도 마셨다. 모이고, 또 모이는 사이 어느새 펼침막은 사라졌다. 비슷한 시기였다. 지난 봄 ‘공원 기원’의 맞은편에는 100석이 넘는 대형 카페가 들어섰다.
나는 카페가 동네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다. 온통 노인들밖에 없는 동네에 대형 카페라니. "아무도 찾지 않는 탓에 카페가 망하진 않을까?"하는 주제넘은 걱정마저 들었다. 지금 이 대형 카페는 주말이면 자리가 없을 정도로 젊은이들로 붐빈다. 대체 이 많은 청년들이 어디서 쏟아져 나왔는지 신기할 정도다.
이전에 단골 미용실에서 "최근 서울의 집값에 밀려 유입된 신혼부부들이 꽤 된다"는 이야길 듣긴 했다. 청년들은 노인들과 달리 모이지 않았을 뿐 이 동네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간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막걸리를 마시는 노인과 커피를 마시는 청년을 보며 결국 모두에게 모일 공간이 필요했다는 생각이 든다. 단절된 삶 속에서 잠시 쉬어 가기도 하고, 누군가를 만나 교류할 공간 말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막걸리가 놓이든 커피가 놓이든 그건 상관없는 일이다.
필요를 파악한 일부 지자체는 노인이나 청년을 위한 공간을 만들기도 한다. 어떤 모양새라도 모일 공간이 많아지는 것은 반갑다. 욕심을 부린다면 부디 많은 이웃에게 사랑받는 공간이 되기를.
노인이든 청년이든 우리 이웃들이 ‘갈 곳 없다’는 푸념을 하지 않도록 좋은 공간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