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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Dec 29. 2023

미슐랭 ★★★

마주이야기

  엄마, 친구들이 우리 집 보리차는
미슐랭 쓰리 스타래


저녁 식사 중, 아이가 보리차를 마시며 신이 나서 말을 한다.

"학교에서 엄청 인기가 많아. 어머니가 공수해 온 보리차 맛 좀 보게 해 달라고"

"그런데, 엄마. 학교에 가져가는 건 끓인 지 좀 지난 거잖아. 그게 쓰리스타면... 갓 끓인 보리차 먹으면 친구들 기절하겠어"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의아하고 신기했다.

자극적인 입맛에 길들여진 중1 남자아이들이, 보리차 맛을 안다고!?


우리 집은 정수기가 없다.

처음엔 보리차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바쁜 시기에는 매우 번거롭고, 귀찮은 일 중 하나이다.

매일 큰 주전자를 닦아서, 물을 어느 정도 끓인 후에 보리차를 넣어 10분 더 끓인다.

불을 끈 뒤 딱 10분만 보리를 불린 뒤 꺼내줘야 고소함과 적당한 색상이 나오기 때문이다.

(불을 끄고 10분이 넘어가면 물이 혼탁해지고 맛도 변한다)


이런 과정이 번거로워 정수기를 설치하고 싶다고 하니, 남편과 아이가 결사반대!

나는 '권태기(보리차 끓이기)'였다.



'우리 집이 미슐랭 맛 집이라고?!

왠지, 으쓱해지며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날 밤.

너무나도 거창하게 '보리차' 단상에 빠지기까지.....!



[아이의 보리차]

아이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껏 보리차를 마셨다.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에서도 매일 끓인 보리차를 내어 주던 곳이다.

평생 보리차만 마시던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후 어쩌다 학교 물을 마시게 되었다.

"엄마, 학교 물 맛이 이상해. 내일부턴 꼭 물병 챙겨가야겠어."


그렇게, 아이는 중1이 된 지금까지도 물병을 챙긴다.

(그런데, 워낙 물을 잘 안 마시는 아이라.... 거의 남겨온다;;)


[나의 보리차]

내가 국민학생이었던, 무더웠던 여름날.

여의도 광장에서 큰 얼음을 가운데 빙하처럼 넣어 놓고, 보리차를 가득 담아 파는 아저씨를 만났다.

그때 당시 한 컵에 50원.

돈이 많지 않았기에 엄청 망설이다 한 잔을 샀다.

머리가 "띵"할 정도로 차갑고, 너무너무 맛있었다.

지금도 '보리차'하면 떠오르는 생생한 장면이다.



요즘 정수기는 온수, 냉수는 물론 얼음까지 나온다.

더욱이, 모양도 예쁘고. 관리도 해준다 하니, 여전히 혹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이에게 '보리차'는 단순한 식수를 넘어, '엄마의 물'로 추억이 될 수 있겠다 생각하니.

보리차 끓이기를 멈출 수가 없다.


더욱이 보리차 맛을 알고, 예쁘게 표현할 수 있는 팬들도 생겼다.

체육 시간이 끝나고, 줄 서서 먹던 '보리차 맛 집'의 추억까지 줄 수 있게 되었으니, 오늘 저녁은 기쁜 마음으로 더 정성껏 보리차를 끓인다.



"디지털, AI"

빠르게 변하고 있는 요즘 시대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는 이를 능가하는 또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싶다. 

 

너무나 빨리 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은 매우 편리해졌다. 

태어나면서부터 핸드폰이 있고, 정수기를 보고 자란 아이들에게는 이 편리함이 '당연함'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간혹 이 편리함이 무섭게 느껴진다.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느낌...!


아이러니한 것은 AI 시대에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정서지능, 공감 능력'이라고 한다.

정서지능, 공감 능력은 AI가 대체될 수 없기 때문일까?

정서지능과 공감능력은 무엇보다 다양한 관계 경험이 필요하다.  

친밀하고, 안전한 관계 안에서 아이들은 따뜻한 경험을 통해 긍정적 정서를 차곡차곡 쌓아야 정서지능과 공감 능력이 발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디지털 시대에 태어나 AI 시대를 살아갈 우리 아이들이 따뜻한 관계 경험을 많이 했으면 좋겠다. 

언제든 원하는 대로 찬 물, 따뜻한 물을 즉각적으로 마시며 갈증을 해소하기보단.

적당한 온도와 시간에 맞춰 구수하게 끓여낸 보리차의 구수한 맛을 기억하고. 그 맛을 추억하며 웃을 수 있는 그런 따뜻한 경험!

이러한 이유로 아이들의 보리차 예찬이 더욱 반갑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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