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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아 Apr 28. 2016

나는 여기서 어디쯤 서 있는걸까

문득 스치는 내 안의 작은 울림

am3:11 잠에서 깼다. 휴대폰 창을 열어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떴다. 또 눈을 감았다. 곧바로 잠이 들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마음이란 녀석이 자꾸 내게 말을 건다. 생각이란 녀석이 자꾸 질문을 한다.

'넌 지금 여기서 어디쯤 서 있는거니?' 

뜬금없이 이게 뭐람..고요가 짙게 깔린 이 깊은 밤중의 새벽에 이 무슨 무거운 질문이람. 마음의 울림을 애써 외면하고 다시 눈을 감았다. 글이 쓰고싶다.

'넌 그림쟁이가 그림은 안그리고 글만 쓰고싶어하니?' 

또 내 마음에서 대화 좀 하자고 쿵쿵거린다. 에잇..안되겠다. 일어나자. 그래. 집중해보자.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무슨 생각이 날 사로잡고 있는지..

이 새벽의 비몽중인 내게 던진 질문은 충격이다. 무방비로 한대 얻어 맞은 듯 휘청인다. 나는 지금 어디쯤 서 있는건지. 이 질문은 아마 잠깐 스치듯 읽었던 누군가의 일상을 적은 짧은 글에서 느낀 여운이 아직 남아서일지도 모른다.

나는 글도, 책도, 그림도, 사람도 편식한다. 언제부턴가 내가 좋아하는 것만 내 안에 담으려 하는 편식증이 생겼다. 혼자이길 두려워 하는 내게 혼자의 시간이 주어졌을때, 내 안에 담겨진 좋은 기억들을 꺼내어 낯선 풍경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고픈 자기 보호본능에서 오는 하나의 버릇일지도.. 하지만 깨닫는다. 홀로 남겨짐은 누군가 나를 홀로 두는 게 아닌 내 스스로 자처하는 두려움이란 것을..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무언가 끄적이는 시간을 좋아한다. 누군가는 혼자서도 여행을 잘 다닌다. 저기 먼 다른 나라까지 날아가 지도를 보며 스스로 낯선 풍경을 맞닥뜨리고 그 곳에서 오는 인연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내가 해 보고싶은 모습이지만, 감히 난 엄두가 안나고 용기도 없다. 그 낯설음을 극복할 처음을 이겨 낼 용기가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하고싶다. 해 보고싶다. 그들의 용기를 내게 조금 끌어다 쓰고싶다.

고3때가 기억난다.

수도권의 명문고라는 타이틀로 자정이 다 되는 시간까지 학교에 묶어 두어 공부를 시키고, 새벽같이 등교를 시켜 잠자는 몇시간을 제외하고는 학교 밖의 생활을 허용하지 않았던, 또 그 생활을 당연히 여겼던 나의 고3. 일년 중 방학은 딱 3일이었다. 토요일에도 일요일에도 늘 학교를 가야했고 방학은 당연히 이름 뿐이었던 그 때, 우리에게 주어졌던 3일의 쉼은 황금과 같았던 그 때, 넓은 바다가 보고싶어서 포항에 있는 친척집엘 갔다. 여름이었다. 나름 무언가 자유를 얻고 싶어서 사촌동생과 함께 송도해수욕장에서 밤을 새기로했다. 동생은 열여덟, 나는 열아홉의 여고생..앳된 소녀 둘이 밤새 바닷가에서 이야기를 나누고픈 마음 하나로 용기를 냈지만, 막상 밤이 되니 낯선 사람들이 말이라도 걸까봐 무서워 그래도 안전한  해양 경찰대 초소의 천막 바로 앞에 앉아 밤새 여고생 둘이서 이야기 꽃을 피웠던 기억이 난다. 자유를 갈망하는 작은 씨앗의 허기를 달래주었던 처음 용기였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난 안전한 곳만 골라서 다니고 아는 사람이 있는 곳만 골라 다닌다. 여행을 좋아해서 이 곳 저 곳을 다니는 것 같지만 결국엔 연고지가 있는 곳의 안전한 주변만 골라 다니는 내 모습이다. 그래서 홀로 여행을 떠나는 그들의 대담성이 놀랍다. 그것도 여자 혼자..

그런데 지금 이 새벽에 내게 던져진 질문 하나가 왜 여행으로 이어진걸까?낯설음으로부터 자유롭고자 하는 열망이 내 안에 가득하단 걸 내가 깨달음과 동시에, 가장 용기가 필요한 낯선 곳으로의 여행이 내게 숙제로 다가와서 일런지도 모른다. 내가 서 있는 여기 쯤에서 이젠 편식하고 싶지가 않다. 사람도..만남도..글도..그림도..

am 4:40 윽. 졸립다. 내 안의 나와 더 많은 대화를 이어가고 싶은데..졸립다

마음아..생각아..너희들의 두드림이 나를 돌아보게 한다. 목적과 계획없이 자유로운 시간들을 보낸 요즘에 브레이크를 걸어주어 틈을 준 너희들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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