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확률을 극복하고 국외연수를 가다

by 하루에

어느 날 회사 내부 게시판에서 교육 신청 안내글을 보았다. 인사혁신처 주관으로 한 대학원에서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하여 총 7주간 진행되는 아카데미 과정을 처음으로 개설한다는 내용이었다. 신청대상은 5~7급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 등 60명이었으며 강의시간은 저녁 7시에서 9시까지였다.


과정 안내문에서 가장 나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교육성적 우수자에게 국외연수의 기회를 부여한다는 내용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없었지만 그 문구를 보자마자 교육에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 때부터 해외여행을 가고 싶었지만 경제적 사정으로 가지 못했고 회사 생활을 10년 넘게 하면서도 한 번도 국외연수나 국외 출장을 가지 못했는데 이번 교육을 열심히 받으면 혹시 나에게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었다.


몇 주 후 큰 열정을 품고 첫 강의에 참석했다. 첫 순서로 입학식을 진행하였는데 전체 인원수를 보니 60명이 아니라 100명이었다.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교육신청을 해서 당초 계획보다 40명이 늘어난 것이었다. 입학식 행사가 끝나고 내가 기다리던 국외연수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었다.


'국외연수는 전체 인원 100명 중에 2명만 가게 됩니다. 선정 조건은 성적우수자인데 우선 출석률 100%를 달성해야 하고 주말에 이루어지는 특강과 실습에 반드시 참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과정 종료 전 이루어지는 연구 프로젝트 발표 및 평가에서 우수한 점수를 획득해야 합니다.'


결국 최종 순위에서 100명 중 2명 안에 들어야 하니 2%의 확률을 극복해야 국외연수의 티켓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었다. 나는 주어진 조건들에 대해 하나씩 분석을 해보았다. 일단 출석률 100%는 한 번도 빠지지 않으면 무조건 달성할 수 있을 것이고 주말 특강과 실습도 참여가 가능하다.


그럼 마지막으로 연구 프로젝트 발표 및 평가가 문제인데 당연히 발표자에게 좋은 점수가 주어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말하는 것을 가장 어려워하는 내가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주제를 가지고 발표를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도 일단 출석과 주말 수업 참여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제외될 거라는 생각으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2주간의 교육이 완료되고 주말 특강과 실습을 하는 날이 되었다. 내가 예상한 대로 100명 중 50여 명만이 오전 특강 수업에 참여했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오후 실습시간이 되니 거기서 또 절반가량이 귀가하고 남은 인원은 27명이었다. 27명의 인원이 4개 조로 편성되었고 내가 속한 조에는 총 8명의 조원이 모였다. 일단 조별로 '미래전략'에 대한 발표주제를 정하고 간략히 어떤 내용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인지 발표하는 미션이 주어졌다.


원래 나는 팀작업을 할 경우 내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성향이라서 특별히 하고 싶은 주제나 내용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토론을 주도하던 2~3명의 사람들이 의견을 종합하고 주제와 개략적인 내용을 정해 그중 한 명이 앞에 나가 발표를 하였다. 교수님께서 이 날은 개념 구상을 위한 사전 미팅이고 점수는 최종 프로젝트 발표 후 이루어진다고 설명을 해주셨다.


이후 4주간의 교육이 진행되고 최종 프로젝트 발표일이 다가오고 있었으나 단체 채팅방에서는 내용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만 이루어질 뿐 직접 발표자료를 만들거나 발표를 하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일단 국외연수를 가려면 평가점수를 잘 받아야 하기 때문에 내가 자료를 만들어보겠다고 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날짜가 며칠밖에 남지 않아서 주말 내내 자료를 수집하고 파워포인트로 발표자료를 정리했다. 그리고 이 교육과정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 대학동창이 나와 같은 조 였는데 그 친구가 발표자로 선정이 되어서 서로 자료에 대한 보완점을 이야기하고 최종 자료를 완성했다. 나는 혹시 내가 국외연수를 가지 못하면 다른 사람보다는 차라리 같이 고생한 친구가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최종 평가일이 되어 강의를 진행하셨던 교수님들이 평가를 위해 모두 강의장에 모였다. 우리는 4조였고 발표는 1조부터 시작했다. 한조씩 발표가 진행될 때마다 '너무 잘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이 생겼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 조의 차례가 되었다. 친구가 나가서 차분히 발표를 진행하였고 시간 초과 없이 성공적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완료하였다. 주관적이지만 내 생각에는 자료의 내용이나 발표자의 능력으로 볼 때 우리가 최소한 2등 안에는 들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평가 결과가 취합되었고 우리는 4개 조 중에 2등을 차지했다. 그리고 국외연수자는 1 등조에서 1명, 2 등조에서 1명을 선정하면 되는데 각 조의 조원들의 의견을 들어 결정하겠다는 설명을 들었다. 나는 조원들에게 의견을 물어 결정하면 당연히 발표자인 내 친구가 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


그런데 일주일 후 교육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조원들이 발표자인 내 친구를 국외연수자로 추천하였으나 그 친구는 자료를 만든 나를 추천했다는 것이었다. 친구에게 연락해서 거절한 이유를 물어보니 일하고 있는 공공기관에도 국외 출장이나 연수의 기회가 많은데 다녀오면 결과보고서도 써야 하고 번거로워서 잘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주말에도 쉬지 않고 자료를 잘 만들어서 우수한 점수를 받았으니 충분히 갈 자격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결국 1 등조의 발표자와 내가 국외연수를 가게 되었다.


국외연수를 어느 나라로 가는지는 프로젝트 발표평가일까지도 얘기가 없어서 나는 혹시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는 건 아닐까 하는 기대를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가게 된 나라는 일본이었다. 일본에도 한국의 인사혁신처와 같이 공무원 인사정책업무를 하는 '인사원'이라는 기관이 있는데 거기서 일주일간 연수를 받게 된다고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사실 프랑스로 갈 수도 있었는데 일정과 예산 등의 문제로 뒤늦게 일본으로 결정되었다고 한다.


약간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나는 각 부처의 인사업무 우수자 20여 명과 함께 일주일간 인사원 교육과정에 참석했다. 아침에 인사원으로 출근해서 오후까지 교육을 받고 저녁에는 자유시간을 가진 후 숙소로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다들 다른 기관에서 왔기 때문에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함께 교육을 받고 저녁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급격히 가까워져서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특히 일본의 중앙부처 공무원들과의 만남의 시간이 있었는데 조직문화와 업무처리방식이 우리나라와 너무 유사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또한 매일 사무실에 앉아서 같은 일만 반복적으로 처리하다가 다른 나라에 와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니 모든 것이 신기해 보였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 앞으로 이러한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목표를 정하고 전략을 세우면 비록 확률이 매우 낮더라도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경험을 또 한 번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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