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로 3년 연속 국외출장 기록을 세우다

by 하루에

사실 처음부터 3년 연속으로 국외 출장을 가려고 한 건 아니었다. 나는 약 13년 동안 한 기관에서만 근무를 했다. 동기들처럼 다양한 기관에서 근무를 했다면 국외 출장을 갈 수 있는 기회도 있었겠지만 내가 근무했던 기관은 국외출장비가 편성되어 있지 않아서 약 10년 동안은 국외 출장을 갈 수 없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국외출장비가 편성되었고 부서별로 한 명씩 선발되는 국외 출장에 내가 운 좋게 선정이 되었다. 그해에 힘든 업무를 맡아 고생했다는 이유로 과장님이 나를 강력히 추천해 주신 덕분이었다.


일본(오사카, 고베)

국외 출장의 단장인 과장님과 팀장님, 그리고 직원들까지 5명이 정해지고 출장지는 일본으로 확정되었다. 당시 국내 지진으로 인해 현안이 많이 발생하여 내진설계 및 지진대응시스템이 발달해 있는 일본에 벤치마킹을 가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나의 역할이 없었지만 전체적인 스케줄과 기관 섭외를 진행하던 팀장님이 개인 사정으로 출장자에서 빠지게 되면서 내가 모든 준비 업무를 맡게 되었다. 국외 출장은 개인의 돈이 아닌 국가의 예산으로 가다 보니 사전 승인절차도 까다롭고 다녀와서도 결과보고서 작성에 많은 정성이 필요하다.


일본의 오사카와 고베를 3박 4일로 다녀오는 일정은 정해졌기 때문에 나는 영사관을 통한 방문기관 섭외, 통역 섭외, 항공권 예약, 숙소 예약 등의 업무를 수행해야 했다. 우선 오사카와 고베의 영사관에 전화를 해서 시청 방문을 위한 섭외를 부탁했다. 그리고 일본으로 국외 출장을 다녀왔던 다른 기관의 직원을 통해서 현지 통역원을 추천받고 섭외를 완료했다. 마지막으로 항공권을 예약하고 숙소는 시내의 교통 좋은 곳에 위치한 호텔로 예약을 진행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듯했으나 기관 섭외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시기가 연말이고 국내에 지진 이슈가 갑자기 발생하다 보니 국회를 포함한 대한민국의 여러 기관에서 방문 섭외를 요청해서 오사카시와 고베시에서 거절을 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의 사정을 수차례 설명하고 관련 자료를 보내서 겨우 해당 기관의 방문 승낙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부 승인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오사카 시청과 고베 시청을 방문해서 건물의 내진기준에 대한 자료를 받고 지진체험관을 방문하였다. 화면에는 6,400여 명이 사망한 1995년 대지진 당시의 영상이 나오고 바닥이 흔들리며 비명소리가 들리는 지진체험을 하고 나니 당장 지진이 일어날 것만 같아서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당시 지진은 새벽에 일어나 일가족이 한꺼번에 사망한 가족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고베시청도 지진으로 건물 일부가 허물어져서 모든 업무가 마비되었고 실제 지진이 발생하면 국가나 지자체에서 구해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바로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도와야 하기 때문에 평상시 주민들의 지진대피훈련 그리고 구호훈련이 중요하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일본은 공공기관을 방문하거나 시내에 가보면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다들 바쁘고 열심히 사는 것이 느껴지고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의 표정도 무표정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하루하루 힘들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올 때는 일본에서 가장 크다는 토이저러스 매장에서 첫째 딸은 어린이용 메이크업 박스, 둘째는 물이 묻으면 머리카락 색이 변하는 아기 인형을 사다 주었다. 일본에서만 살 수 있는 장난감이다 보니 선물을 받은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것이 보였다.



뉴질랜드(웰링턴)

해가 바뀌고 연초에 주무부서에서 연락이 왔다. 국외 출장 계획을 수립해야 하는데 제출하는 부서가 없어서 내가 있는 부서에서 제출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국외 출장을 가려면 과장님을 모시고 가야 하고 가기 전에 준비할 것이 많으며 다녀와서도 결과보고서 쓰는 것이 부담이 되다 보니 어느 부서에서도 신청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우선 주제를 먼저 정하고 방문국가를 선택하기로 했다. 그때까지도 지진에 대한 여러 가지 이슈들이 존재하던 때라 건물의 내진보강에 대한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국가를 구글로 검색해보았다. 그러다 일본과 같은 섬나라인 뉴질랜드가 지진이 자주 발생해서 내진보강에 대한 정책이 잘 수립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뉴질랜드도 2011년에 큰 지진이 발생하여 200여 명이 사망했고 그래서 더욱 내진보강에 대한 정책이 잘 수립되어 있었다.


방문국가는 뉴질랜드로 하고 다음은 전체 일정을 짜기 시작했다. 우선 행정기관은 내진설계 규정을 관리하는 혁신 고용부, 지진 관련 피해상황 조사 및 보험 제공을 하는 지진위원회를 방문하기로 했고 마지막으로 건물의 내진보강 구조물을 직접 볼 수 있는 국회의사당을 방문하기로 했다. 기관 섭외는 뉴질랜드 대사관에 부탁하고 나는 통역원을 섭외하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한국과 뉴질랜드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작은 유학원 사이트였다. 일단 한국 번호로 연락을 해서 상황을 설명하니 몇 시간 후에 뉴질랜드 현지에 있는 원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중에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니 한국에서 대기업에 다니다가 너무 힘들고 지쳐서 그만두고 가족들과 함께 뉴질랜드로 이민을 왔다고 했다. 그때 통역으로 만난 인연이 되어 지금도 원장님이 한국에 들어오면 같이 만나서 뉴질랜드에 대한 많은 얘기들을 나누고 있다. 우리 아이들도 뉴질랜드로 유학을 보내면 잘 챙겨주시겠다며 도움을 주고 싶어 하신다.


숙소는 시내에 있는 비즈니스호텔로 정하고 마지막으로 항공편 예약을 했다. 우리가 방문하는 웰링턴은 한국에서 한 번에 가는 비행 편이 없어서 우선 오클랜드 공항에 내려서 현지 항공편을 이용해야 했다. 나는 10시간이 넘는 비행을 처음 경험해보았는데 자리는 비좁고 밥을 먹으면 소화도 안되고 온몸이 아파서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장시간 비행을 해보니 왜 비즈니스와 퍼스트 클래스가 비싼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현지에 도착해서는 기관 방문을 시작했다. 뉴질랜드는 모든 건물을 내진등급에 따라 구분하고 그 건물의 앞에 색깔별로 구분된 스티커를 부착한다. 예를 들어 노란색 스티커는 접근 제한, 빨간 스티커가 붙은 민간건물들은 내진보강이 되지 않으면 출입을 금지하고 벌금을 부과한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지진에 있어 안전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하루빨리 그러한 정책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다.


지진위원회는 뉴질랜드 국민들이 지진 발생 후 피해보상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재해보험을 운영하고 있다. 전문적으로 피해조사를 하는 기술자들을 채용하고 교육해서 언제든지 비상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하고 있었다.


국회의사당은 지하층에 내려가 보니 원래의 기초에서 기초 격리 기술을 사용하여 417개의 스프링과 같은 고무 베어링에 건축물을 배치하였다. 그 목적은 기초에서 발생한 지진 운동이 위쪽 건물로 전달되는 것을 줄임으로써 건물 전체에 걸친 강화된 콘크리트 전단벽의 충격을 현저하게 줄이는 것이다. 한국에는 도입되지 않은 뉴질랜드만의 내진 공법이었다.


뉴질랜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 '반지의 제왕'의 촬영지이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뉴질랜드에 한번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비록 촬영지는 남섬이고 나는 북섬으로 출장을 갔지만 영화에서 보았던 것처럼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클랜드와 웰링턴 공항 내부에도 영화의 등장인물과 드래곤 등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돌아올 때는 첫째는 공주 다이어리, 둘째는 뉴질랜드 아기 인형을 사다 주었다. 아이들에게는 아빠가 출장 갔다가 사 오는 선물이 또 하나의 기쁨이 되어 있었다.



네덜란드(로테르담)

국외 출장 예산이 수립되고 3년째가 되자 연초부터 부서별로 국외 출장 계획서를 수립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주무부서에서도 이번에는 과별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투표로 출장 계획 안을 선정하기로 했다. 그해에는 미세먼지가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되던 때였다. 그래서 나는 미세먼지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하고 대안을 마련한 국가를 찾다가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있는 한 건축가가 미세먼지를 정화할 수 있는 타워를 만들어 중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에 설치하였다는 기사를 읽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네덜란드를 출장지로 정하고 방문기관 선정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스모그 프리 타워를 제작하여 설치한 로세하르데 스튜디오, 주거와 업무공간의 복합건물을 증축하여 사용 중인 로테르담 시청, 그리고 로테르담에 있는 마르크트할을 포함하여 전 세계에 유명 건축물을 설계한 MVRDV 스튜디오를 선정했다.


당시 우리나라에 미세먼지가 워낙 심각한 이슈이다 보니 심사결과 우리 부서에서 수립한 국외 출장 계획이 선정됐다. 나는 네덜란드 대사관에 기관 섭외를 요청하고 바로 통역 검색을 시작했다. 전문으로 통역을 해주는 기관 몇 곳을 찾아 비교견적을 하다가 현지 유학생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곳과 계약을 하였다. 항공권은 암스테르담행으로 예약을 했다. 로테르담에 가려면 암스테르담에서 내려 차로 이동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숙소는 로테르담 시청 근처 호텔로 예약했는데 유럽이라서 그런지 새로 지은 건물이 드물었다. 그래도 그중 가장 시설이 깨끗하다는 곳으로 예약을 했다.


사실 나는 건축공학과에 다니던 대학 때부터 유럽여행을 가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사정으로 가지 못하다가 드디어 국외 출장으로 그 소원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암스테르담에 도착하니 첫날부터 비가 오기 시작했다. 네덜란드도 영국과 같이 아주 맑고 쾌청한 날보다는 흐리고 비가 오는 날이 많다고 했다.


로테르담은 많은 선박들이 오가는 항구도시로 그간 이산화탄소가 많이 배출되었으나 친환경적인 도시를 만들기 위해 '지속 가능한 도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었다. 사용하지 않는 공장이나 창고들을 친환경 건물로 재탄생시키고 그곳에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로테르담의 중심부는 1940년 독일의 공습으로 대부분의 건물들이 잿더미가 되어 전쟁 후 그 자리에 개성 넘치고 실험적인 건축물들이 들어서면서 네덜란드 건축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기존에 사용하던 시청 건물에도 곳곳에 총탄의 흔적이 있었으며 시내에 부족한 주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동주택과 시청 업무공간이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티메르 하위스' 건물로 증축을 진행하였다. 디자인은 우리나라의 리움미술관 건축가 램 콜하스의 OMA가 맡았다.


네덜란드 건축가 '로세하르데'는 전 세계적으로 심해지는 미세먼지의 위험성을 알릴 목적으로 2015년부터 미세먼지를 정화하기 위한 약 7m 높이의 대형 공기청정기 '스모그 프리 타워'를 네덜란드, 중국, 폴란드 등에 설치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인 탄소를 다이아몬드 생성기술로 압축해 육면체 모양의 '스모그 프리 반지'로 판매 중이었다. 그 판매금은 다시 스모그 프리 타워를 설치하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최근에는 연인들 사이에 프러포즈용으로 많이 판매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네덜란드의 MVRDV는 1993년 처음 설립되었으며 로테르담에 설계한 '마르크트할'은 재래시장, 음식점, 공동주택이 복합적으로 구성된 건물이었다. 친환경인증인 영국 브리암 인증을 받았으며 주변 건물에까지 에너지를 제공하는 난방 및 축열 시스템이 적용되어 있었다.


유럽에 가서 우리나라와 가장 큰 차이점을 느낀 것은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 여유롭고 밝다는 것이었다. 바쁘게 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데 국민소득은 우리나라보다 더 높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항상 친절한 것은 대부분이 관광도시이고 늘 다른 나라의 사람들이 방문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문화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돌아올 때는 아이들을 위해 네덜란드에서만 살 수 있는 문구세트와 토끼 인형을 사서 선물해주었다. 3년째 국외 출장으로 선물을 사주다 보니 아이들의 기대치가 점점 높아져서 선물을 고르는데만 며칠이 걸렸다.


국외 출장은 상사를 모시고 가야 하니 처음에는 대다수의 직원들이 가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시아 국가로만 출장을 가다가 처음으로 내가 뉴질랜드로 출장을 다녀오자 점점 인기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마지막으로 다녀왔던 해에는 8개가 넘는 부서가 신청하여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나도 내가 원하는 나라에 꼭 가겠다는 목표를 세우지 않고 계획안을 만들었다면 3년 연속으로 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최초 계획 수립, 기관 방문 및 통역 섭외, 항공 및 숙박 예약까지 모두 직접 진행하고 출장을 다녀와서 결과보고서를 쓰는 경험을 해보니 출장을 가서도 어떤 자료를 확보해야 하는지 알게 되고 모든 것에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항상 그 당시에 이슈가 되는 주제를 선정해서 출장 계획을 수립하니 심사과정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주어진 적은 예산으로 뉴질랜드와 네덜란드에 간다는 것에 대해 내가 계획을 수립하기 전까지는 모두 안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영어울렁증이 있던 내가 뉴질랜드에서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네덜란드 출장 때부터는 경험이 쌓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영어로 대화를 하게 된 것이 정말 신기했다. 모든 도전은 처음이 어렵지만 한두 번 하다 보면 노하우가 생기고 점점 더 발전하게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3년간의 국외 출장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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