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는 결혼 후 아이에 대한 소망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 나는 외아들로 혼자 외롭게 자라서 어렸을 때부터 형이나 누나, 동생이 있는 친구들이 늘 부러웠다. 그리고 원만한 성격을 형성하는 데에도 형제가 있는 것이 좋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최소한 두 명의 아이를 낳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아내는 보수적인 경상도 집안에서 태어난 여자 아이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했다. 딸만 둘을 낳은 장모님이 시댁에 갈 때마다 항상 마음의 짐이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이다. 아내의 눈에는 사촌오빠나 사촌 남동생들에 비해 아내와 여동생이 항상 차별을 당한다고 느꼈다.
한 번은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아들만 둘 있는 큰아버지의 둘째 아들을 호적에 넣으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래야 유산을 줄 수 있다. 손녀만 있으면 집안의 재산이 다른 곳으로 나간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물론 장인어른이 크게 화를 내며 거절하셨지만 장모님과 아내는 손자와 아들을 원할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들로 자라면서 스스로 부모님에게 얼마나 무심했는지 알고 있었고 집집마다 딸들이 부모님 특히 엄마에게 얼마나 다정하게 잘하는지 지켜봤기 때문에 아이를 두 명 낳는다면 한 명은 꼭 딸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첫째를 임신하고 아내가 가장 잘 먹던 음식은 돼지갈비였다. 주위 어른들은 고기를 잘 먹으면 아들이라는 말씀을 주셨고 아내도 큰 기대를 하게 되었다.
심한 입덧 시기가 지나고 배가 많이 나오면서 나와 아내는 태교를 위해 늘 좋은 말만 하고 좋은 것만 보기 위해 노력했다. 밤마다 자기 전에 아이에게 성경말씀을 읽어주고 첫 아이인만큼 우리는 정성을 기울였다. 그런데 그때 큰 난관이 찾아왔다. 기형아 검사를 하고 며칠 후 결과가 나왔는데 수치가 높은 항목이 있어서 양수검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혹시 아이가 정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듣고 검사를 하러 가는 날부터 검사 결과가 나온 다음날까지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계속 울기만 했다. 나도 자꾸만 안 좋은 생각을 하게 되어서 아내와 손을 잡고 기도를 하며 제발 아이가 건강하게만 태어나길 바랐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이 되어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다행히도 모든 것이 정상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부터 아내와 나는 성별이 뭐가 중요한가. 그저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나기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출산이 임박했을 때쯤 두 번째 난관이 찾아왔다. 산부인과에 검진을 갈 때마다 아이가 크다는 말은 들었었는데 만삭쯤 되어서는 아이의 머리둘레와 어깨 폭을 측정해서 나오는 몸무게가 4kg이 넘어서 자연분만을 하려면 아이가 더 크기 전에 유도분만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처음이라 그때는 다른 병원에 가보자는 생각은 하지 못했고 출산예정일로부터 일주일 전에 병원에 입원해서 유도분만 주사를 맞았다. 그 주사를 맞으면 아이가 있는 공간이 작아지기 때문에 만약 바로 출산을 하지 못하면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이는 유도분만 주사를 맞고도 바로 나오지 않았고 결국 우리는 수술을 하기로 결정했다. 아내는 진통 한번 느끼지 못하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내가 느끼기에 길고 긴 시간이 지나고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간호사 선생님이 아기를 내게 데리고 와서 직접 탯줄을 잘랐다. 아이를 보자마자 내 얼굴을 닮았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아이를 처음 보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 아빠들도 많던데 나는 그저 신기하고 귀엽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아이의 몸무게는 다른 아이들과 비슷한 2.25kg이었다. 그냥 자연분만을 해도 되는 크기인데 결국은 병원에서 몸무게를 잘못 추정해서 유도분만과 제왕절개를 하게 된 것이다. 나는 담당의사에게 항의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어쨌든 아내와 아이가 모두 건강한 상태였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아내는 수술 후 마취가 풀리면서부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자연분만을 한 다른 엄마들은 바로 일어나서 잘 걸어 다니는데 수술을 한 아내는 3일 이상 지나고 나서야 겨우 걸어 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산부인과에서 퇴원 후 산후조리원에서 아이와 2주간의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내가 계획했던 아이 두 명 이상 낳기는 첫째가 어느 정도 자라고 나서 아내의 결심으로 이루어졌다. 아내가 힘들어서 둘째를 낳지 않는다고 말할 때마다 나는 '아파트 청약 중 신혼부부 특공의 가점을 위해서 둘째를 낳아야 한다'. 그리고 '아들을 낳기 위한 시도를 다시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말로 설득을 했다. 아내도 아들을 낳지 못한 아쉬움이 있어 둘째까지는 낳기로 결심한 것이다.
아내가 둘째를 임신한 동안에는 첫째를 키우느라 제대로 된 태교를 하지 못했다. 나도 집에 오면 첫째랑 놀아주느라 정신이 없어서 뱃속에 있는 둘째에게 성경말씀을 읽어주지 못했다. 둘째를 임신하고 나서는 아내의 배 모양을 보고 주위의 어른들이 아들이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 그래서 아내도 아들일 거라는 기대를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산부인과에 가서 성별에 대한 힌트를 듣고 아내는 실망했다.
'첫째 아이 물건을 그대로 물려받으면 되겠네요'라는 말을 듣고 아내가 눈물을 흘리자 의사 선생님은 당황해서 '아들을 꼭 낳으셔야 하는 상황이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그런 상황은 없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아내를 위로해주었다. 성별에 관한 결과를 듣고 실망한 것은 아내뿐만이 아니었다. 장모님도 그 소식을 듣고 크게 실망하셨다는 얘기를 아내를 통해 듣게 되었다.
둘째 아이는 빨리 나오고 싶었는지 수술 예정일 전일에 갑자기 진통이 와서 새벽에 급하게 수술을 하게 되었다. 아이의 얼굴을 보니 첫째와 분명히 다른데 그 얼굴 안에 나의 모습이 그대로 있었다. 첫째가 태어났을 때도 장인어른이 병원에 오셔서 아이의 얼굴을 보시고 '우리 집안 얼굴은 아니네'라고 말씀하셨는데 둘째도 나와 닮은 얼굴로 태어나서 아내도 서운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그런데 장모님은 오히려 아들을 낳지 못해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가 서운하실 수도 있는데 얼굴이라도 사위를 닮아서 다행이라고 말씀하셨다.
결과적으로는 내가 계획했던 아이 두 명 이상 낳기는 이루 졌지만 아내의 아들 낳기 계획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때 셋째의 출산을 아내와 상의하기도 했지만 아들이라는 보장을 누구도 할 수 없기에 지금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아내는 아들을 낳으면 너무 유난스럽게 키울까 봐 아마도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신 것 같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
아이들의 육아를 시작하면서 나는 책을 가까이하기 위해 늘 노력해왔다.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낮이나 밤이나 매일 책을 읽어주었고 주말이면 무조건 도서관 또는 서점에 가서 시간을 보냈다. TV는 거의 보여주지 않고 유튜브도 자극적이지 않은 내용의 영상만 보여주었다. 그러다 보니 첫째가 9살, 둘째가 7살인 지금도 심심할 때면 각자 방에서 책을 읽곤 한다.
나도 어렸을 때는 책을 가까이했지만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사춘기가 지나면서 입시공부에 지쳐서 책을 멀리하게 됐다. 그리고 다시 책을 읽게 된 것은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다. 간혹 어려울 결정을 해야 할 때 그리고 무언가를 새로 시작해야 할 때 그것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게 되는 경험을 했었다. 그래서 내 아이들도 자라는 동안 늘 책을 가까이할 수 있도록 그것 한 가지만은 내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