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입사했던 2006년만 해도 대한민국 부자의 기준은 10억 원이었다. 지금은 서울시의 아파트 평균 가격이 10억 원 정도 하기 때문에 30~50억 원 정도는 있어야 대한민국의 부자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퇴직 전까지 10억 원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박봉의 공무원 월급을 모아서 10억 원을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입사하자마자 월급의 대부분을 주식과 펀드에 투자했다. 점심시간마다 명동에 있는 증권회사에 가서 새로 계좌를 만들고 인기가 좋은 펀드상품의 설명을 들었다. 운이 좋아서인지 내가 투자를 시작한 1~2년 동안은 종합주가지수가 계속 오르고 마침내 2,000포인트를 넘게 되었다. 하루하루 금액이 늘어나는 것이 보이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더욱 돈을 아껴서 주식과 펀드에 모두 넣게 되었다.
그런데 오래가지 않아서 문제가 하나씩 발생하였다. 주식시장은 불안정하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종목이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업무시간에도 주가가 어떻게 변하는지만 계속 쳐다보게 되었다. 점점 더 업무에 집중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결국 내가 직접 투자하던 주식 종목은 모두 매도하고 오로지 펀드 투자에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계속해서 오를 것만 같았던 종합주가지수는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폭락하였다. 내가 주로 투자하였던 국내 펀드와 브릭스, 차이나, 베트남 등 해외펀드도 마찬가지로 폭락하면서 그동안 얻었던 수익이 급속하게 줄어들었다. 한때 마이너스 수익률까지도 내려갔지만 많이 올랐을 때의 수익금액을 생각하니 도저히 환매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계속 펀드를 유지하다 보니 하락기가 지나고 다시 상승시기가 돌아왔고 2011년 초 결혼자금 마련을 위해 어느 정도 수익을 얻고 모든 펀드를 환매하였다. 이후 종합주가지수가 다시 2,000을 넘어 상승하는 걸 지켜보면서 안타까웠던 기억이 난다.
결혼을 하면서 신혼집은 강남에 위치한 공무원 임대아파트에 마련했다. 최대 4년을 살 수 있었기에 그 기간 동안 내 집 마련을 하기로 했다. 마침 정부에서 수도권에 대규모 보금자리주택을 공급하고 있었기에 매일 청약 공부를 하고 아파트 입주자 모집공고가 나올 때마다 내 집 마련에 도전하였다.
그런데 내가 노리던 신혼부부 특공에 당첨되기 위해서는 결혼한 지 3년 이내에 아이가 두 명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에는 아내가 첫째 아이 육아에 많이 지쳐있어 둘째 아이를 갖자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러다 강남과 서초에 보금자리 주택공급이 막바지가 되면서 마침내 아내에게 말을 꺼냈다. 나는 외아들로 자랐기 때문에 혼자 크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육아에 절반을 맡을 테니 둘째 아이를 낳자고 아내를 설득했다. 그리고 어차피 아이를 가질 거면 주택청약이 가능한 지금 갖자고 말했다. 아내도 고민 끝에 동의했고 그때부터 아이를 갖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청약조건에 따르면 임신만 해도 두 명의 아이가 있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나는 강남과 서초의 공공분양아파트 분양시기가 끝나기 전에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바로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서 결국 분양은 모두 끝나고 서울시의 장기전세 아파트인 시프트로 강남구 아파트에 당첨되었다. 20년간 전세로 살 수 있지만 우리가 소유한 아파트는 아니기 때문에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조금만 더 빨리 둘째 아이를 갖기 위한 시도를 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에 상심이 컸다.
그러던 어느 날 동료직원이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를 던졌다. 친구가 한국 토지주택공사에 있는데 하남시에 분양한 공공분양아파트에 청약 취소자와 부적격자가 다수 발생하여 현장에서 바로 추가 당첨자를 선정한다는 것이었다. 요즘 언론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줍줍으로 남은 아파트를 분양하는 것이었다. 사실 내가 서울시 보금자리주택에 청약을 할 때 하남도 동시에 분양을 했지만 서울과 비교하여 너무 멀다는 생각이 들어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래서 내 옆에 근무하던 다른 동료직원과 하루 동안 고민을 하다 하루 연가를 내고 가기로 했다.
하남에 있는 토지주택공사 사옥에 오전 7시 도착하니 벌써 수십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혹시 선착순으로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일찍 도착했지만 9시 정도가 되어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모이니 그때 신청서 종이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거기에 개인정보를 써서 제출하면 번호를 부여하고 컴퓨터를 이용해 무작위로 당첨자를 선정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만약 당첨되면 그날 바로 계약까지 완료하여야 하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나는 번호표를 받자마자 다시 회사에 있는 은행에 가서 계약금을 내기 위한 신용대출을 신청했다. 당일 오후에 급하게 필요하다는 부탁을 하고 다시 하남으로 이동했다.
현장에서 몇 시간을 더 기다렸지만 결과 발표는 계속 지연되었다. 그러다 점심시간쯤 되어서 드디어 당첨자 발표가 진행되었다. 직원들이 벽면에 당첨자 명단을 붙였고 당첨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잠시 후 나와 내 동료는 당첨자 명단에 이름이 들어있는 것을 확인했다. 350세대를 추가 모집하는데 그날 약 7,0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으니 경쟁률은 20:1이었던 것이다.
오후에는 1번부터 나와서 동호수를 지정하는데 나의 번호는 230번대였고 내 동료는 340번대로 거의 마지막이었다. 우리는 점심을 먹으며 고민을 계속했다. 당시에는 하남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고 그린벨트가 많은 지역이라 시골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아파트값이 오를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가득했다. 그래서 여기저기 부동산에 지식이 있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해서 조언을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족들과 상의했다. 아내는 내가 내리는 판단을 믿고 지지해 주기로 했고 건설업과 부동산 관련 일을 하셨던 아버지께서 내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명쾌한 답변을 주셨다. 하남은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고 서울과 한강도 가까우니 분양을 받으면 장기적으로 집값이 오를 수 있다는 조언을 해주셨다.
결국 나는 종합적인 의견을 고려해서 계약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이후 태어나서 처음으로 주택담보대출을 2억 원이 넘게 받으면서 편히 잠을 잘 수 없었다. 입주를 하고 매월 원리금을 상환하면서 경제적 부담은 더 가중되었고 극심한 스트레스가 심해질 때쯤 내가 일하던 기관의 세종시 이전이 갑작스럽게 결정되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세종시로 이사를 하면 수도권에 비해 훨씬 적은 전세보증금으로 거주할 수 있기에 자연스럽게 모든 고민이 해결된 것이다. 반면에 그때 같이 현장에 가서 당첨되었던 내 동료는 하남시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을 하고 계약을 포기했다. 아마도 지금은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아직 순자산 10억 원을 달성하지 못했고 올해 여름부터 다시 주식투자를 시작했다. 10년 전과 달라진 것은 내 손안에 있는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해외주식의 직접투자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 또한 투자로 나의 자산을 늘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된다. 내가 열심히 펀드 공부를 하고 투자했지만 예상치 못했던 금융위기로 인해 실패했다가 다시 반등했던 경험, 서울시 보금자리주택의 청약 당첨을 위해 공부하고 노력했지만 결국 내 집 마련은 생각지 않았던 줍줍으로 장만했던 경험 등을 생각해보면 모든 일이 계획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일단 목표를 세우고 공부하고 늘 관심을 가지면 어떤 식으로든 결과물이 나온다는 사실을 그간의 투자경험을 통해 깨닫게 되었다. 요즘은 장기간의 주식투자를 통해 배당수익만으로 노후생활을 할 수 있는 경제적 자유를 목표로 세우고 팟캐스트와 책을 통해 공부를 하고 있다. 언젠가 그 목표까지 이루어지면 내가 원했던 순자산 10억 원을 넘어 수십억 원의 더 많은 자산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아이들에게는 내가 어릴 때 경험했던 가난의 고통을 물려주고 싶지 않기 때문에 나는 잠시도 투자를 멈추지 않고 있고 최근에는 아이들을 위한 경제교육도 하나 둘 시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