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계적인 건축가가 되겠다는 꿈을 가지고 건축공학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대학교 3학년이 끝날 때쯤 그 꿈을 포기했다. 우리나라의 좋은 설계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선배들의 부탁으로 방학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내가 생각했던 멋진 건축가의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리나라 대학을 나와서 입사한 대부분의 직원들은 창의적인 디자이너로서의 업무보다는 오토캐드를 이용한 엔지니어로서의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만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상상하는 멋진 건축가의 역할은 해외의 유명한 대학을 나온 유학파가 낙하산으로 날아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한 현실을 직접 보고 들으니 더 이상 그 길을 가고 싶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고 친구들이 희망하는 대기업 건설회사를 들어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현장에서 일용직 인부들과 부대끼며 일 년 365일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니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벌써 사표를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바로 공무원이 되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길 바라셨다.
사업을 하시면서 계속 소득이 불규칙하다 보니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정신적으로도 힘드셨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내가 중학교 때 아버지가 하시던 사업이 망해서 채권자들을 피해 단칸방에서 살았던 기억이 나에게도 남아서 더욱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대학교 4학년이 되면서부터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공무원 시험은 크게 행정고시와 7급, 9급 공채시험으로 나눌 수 있다. 행정고시는 1차는 PSAT이라는 객관식 시험, 2차는 주관식 서술형 시험, 3차는 면접시험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합격할 경우 5급으로 임용된다. 7급과 9급 시험은 1차 객관식 시험, 2차 면접시험으로 치러진다.
나는 대학에 다니면서 내가 주관식 서술형 시험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똑같이 강의를 듣고 공부해서 시험을 봐도 항상 객관식 시험 과목보다 주관식 시험 과목의 학점이 낮게 나왔다. 객관식 시험은 출제자의 의도를 생각하고 오답을 하나씩 지워나가며 풀 경우 정답을 맞힐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지만 주관식 시험은 출제자가 원하는 방향이 아닐 경우 아무리 많은 내용을 써도 점수가 잘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합격 확률이 높은 7급 시험을 먼저 합격해서 안정적인 직업을 얻고 퇴근 이후 시간과 주말 시간을 활용해서 행정고시를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어머니가 겨우 겨우 마련하신 돈으로 학원을 등록해주셔서 절실한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아무리 늦어도 2년 안에 합격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리고 합격을 위한 전략을 마련했다. 일단 공부는 학원이 끝나면 학원 자습실에서 하기로 했다. 일반적으로 시험은 일정 점수만 넘으면 모두 합격하는 절대평가 시험이 있고 서로 경쟁을 해서 소수의 정해진 인원만 합격하는 상대평가 시험이 있다.
공무원 시험은 200:1이 경쟁률까지 나오는 대표적인 상대평가 시험이다. 그래서 학원에서 함께 수업을 듣는 모든 사람이 다 나의 경쟁자였다. 때문에 학원 자습실에서도 어떻게든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공부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루 중 이동시간 1시간, 식사시간 2시간, 취침시간 7시간 정도를 빼면 매일 평균 14시간을 공부했다.
그리고 가점을 받기 위해 두 개의 기사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하나는 건축기사 다른 하나는 정보처리기사였다. 건축기사는 전공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공부가 쉬웠지만 정보처리기사는 도무지 공부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동영상 강의 하나를 알게 되었는데 그 강사가 알려주는 코드만 외워서 입력하면 무조건 합격할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때부터 이유도 모른 채 강의에 나오는 코드를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험날 대부분의 수험생들이 30분 만에 컴퓨터로 코드를 입력하고 시험을 마쳤다. 나도 누구보다 쉽게 시험을 마치고 합격했다. 이후 정보처리기사는 너무 쉬워서 시험제도가 많이 바뀌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그해 처음으로 두 번의 공무원 시험을 경험했다. 서울시 7급 시험과 국가직 7급 시험이다. 물론 결과는 모두 불합격이었다. 일단 충격적이었던 것은 시험문제수에 비해서 주어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결국 관건은 시간관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실제 시험처럼 제한시간을 정해놓고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로 문제를 푸는 시간도 실제 시험이 시작되는 오전 10시쯤에 맞춰서 시작했다.
그렇게 힘들고 지루한 일상을 매일 반복했다. 공부하는 동안 집안 형편이 점점 더 나빠져서 점심과 저녁은 매일 김밥 한 줄로 해결했다. 그리고 가끔 한 번씩 돈이 조금 생기면 고생한 나에게 주는 선물로 햄버거를 사 먹었다. 그때 당시 학원이 인사동 앞에 있어서 점심을 먹고 나면 10분 정도 인사동에서 산책을 했는데 행복하게 웃으며 데이트를 하고 있는 연인들을 보면 정말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도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할 때까지는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어학연수를 하러 미국에 간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지만 헤어지자고 말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려면 정말 절실하게 공부해야 하는데 여자 친구가 미국에 가면 시차 때문에 연락하기도 힘들고 서로 이루려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미래를 위해서 이별을 선택한 것이다. 그때는 공부하느라 힘든데도 위로받을 사람이 없어서 그 선택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옳은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친구들은 대부분 대기업 건설회사에 입사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공무원을 준비하는 수험생이었다. 스스로 패배감이 들기도 하고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많아졌다. 그래서 더욱더 절실하게 공부를 했다. 그리고 일 년 전과 마찬가지로 서울시 7급 시험과 국가직 7급 시험을 보았다. 필기시험 결과는 서울시 7급 시험은 간발의 차이로 불합격, 국가직 7급 시험은 합격이었다. 국가직 7급 필기시험 결과 발표 당일에 모니터로 합격자 명단을 보는데 내 이름이 없을까 봐 얼마나 긴장을 했었는지 그리고 내 이름을 확인하고 얼마나 기뻐었는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면접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일단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서 면접과 관련된 정보를 모았다. 그때는 면접시험이 강화되어서 주어진 주제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미션도 있었다. 면접시험은 3일간 시행되었는데 첫날과 둘째 날 먼저 면접시험을 치른 수험생들이 후기를 카페에 남겨주었다.
나도 비슷한 주제가 나올 거라는 생각에 몇 가지 시나리오를 준비하고 프레젠테이션 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면접시험날 예상한 대로 내가 준비했던 주제와 유사한 내용의 과제가 주어졌다. 주된 내용은 '공무원에 합격하면 어느 기관의 어느 부서에서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였는데 나는 어려운 가정형편을 얘기하며 '만약 내가 국토부 공무원이 되면 어려운 사람들에게 임대주택을 제공해주는 부서의 업무를 하고 싶다'는 내용의 포부를 설명했다. 이후에도 침착하게 면접관의 질문에 답변하며 큰 실수 없이 면접을 마쳤다. 일단 면접시험에서는 소수의 인원만 탈락하기 때문에 큰 실수 없이 중간 이상만 하면 된다는 것이 나의 전략이었다.
그렇게 나는 최종적으로 7급 공무원에 합격하였고 지금은 어느덧 14년 차 공무원이 되었다. 처음 입사해서 행정고시 시험을 준비할까 생각해봤지만 매일매일 사무실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응하다 보니 퇴근 후에는 힘이 다 빠져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주말에는 그동안 하지 못한 여유시간을 즐기느라 하루하루가 부족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나처럼 기술직으로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들어온 국장 이상 간부들이 요즘 50대 초중반에 퇴직하는 경우를 간혹 볼 수 있다. 공무원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연령이 60세에서 65세로 늦춰진 만큼 약 10년여의 시간을 연금 없이 스스로 먹고살아야 하는 어려움을 생각하면 60세를 꽉 채우고 퇴직할 수 있는 내가 7급 공무원으로 들어온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