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학입시 선택지에 재수는 없었다. 내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라는 유행어가 있었지만 나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서 무조건 한 번에 대학을 합격하고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대학을 한 번에 합격하기 위한 전략이 필요했다.
나는 학군이 좋기로 유명한 지역 중 하나인 서울시 송파구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 분위기도 좋고 친구들도 잘 만나서 즐거운 기억이 많았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학교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남자중학교라서 그런지 하루 걸러 한 번씩 복도에서 싸우고 교실에서 싸우고 조용할 날이 없었다. 내성적인 성격인 데다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나에게 남자학교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다른 동으로 이사를 갔고 친구가 한 명도 없는 남녀공학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등교 첫날 담임선생님께서 출석을 불렀는데 내가 가장 마지막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반에서 내가 성적으로 꼴찌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정말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지역에서 꽤 유명한 대형 학원을 등록했고 그때부터 제대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학원 수업을 열심히 듣고 매일 주어진 숙제를 성실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 2학년까지 내 성적은 늘 반에서 5~10등 사이였다. 더 올라가지도 않고 내려가지도 않는 비슷한 수준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부터는 다급한 마음에 집 근처 독서실에서 매일 새벽 2시까지 공부를 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학교에 가면 너무 피곤해서 수업시간 내내 자게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3학년까지 같은 반이었던 한 친구가 우리 학교 전교 1등이었는데 새벽까지 열심히 공부하고 매일 학교에 와서 자는 모습을 보고 나도 그 패턴을 따라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피로가 계속 쌓이다 보니 학교 수업시간은 물론이고 저녁때 독서실에 가서도 제대로 집중해서 공부를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내가 공부를 잘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다. 일단 나의 공부시간부터 바꿨다. 매일 밤 11시부터 오전 7시까지 충분히 자고 학교에 가서 공부를 시작했다.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을 구분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서 계속 공부를 했다. 저녁때도 밥만 간단히 먹고 독서실에 가서 밤 10시 30분까지 공부를 했다. 잠을 충분히 자고 공부를 하니 하루 종일 맑은 정신으로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다.
고민 끝에 공부를 하던 교재도 변경했다. 그동안은 학원에서 정해준 교재로만 열심히 했었는데 우연히 다른 친구가 풀고 있는 교재를 보니 구성도 좋고 내용도 나에게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 걸 알면서도 그 교재를 새로 사서 공부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전까지는 부모님과 학원에서 시키는 대로만 공부를 하다가 처음으로 나 스스로 공부방법을 정하고 자기 주도적인 학습을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자기 주도적인 학습을 시작하고 그 효과는 오래가지 않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변함없던 성적이 점점 오르기 시작했고 반에서 5등을 하더니 3등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그리고 졸업을 할 때는 내신성적이 좋아서 학업우수상까지 받게 되었다. 수능시험도 운이 좋아서인지 난이도가 낮게 출제되었고 내가 모의고사로 받았던 점수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대학 입학 원서를 넣는 순간이 다가왔다.
논술시험을 대비하여 학원을 다니긴 했지만 나는 학교에 다니는 동안 책을 많이 읽지 않아서 내가 논술에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같이 학원에 다니던 친구들과 비교를 해봐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면접을 보게 되면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점수를 잘 받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기대하시던 S.K.Y. 대학을 포기하고 바로 아래 단계에 있는 S대학에 특차로 원서를 접수했다. 그리고 며칠 후 신문을 통해 나의 합격소식을 알게 되었다. S대학 건축공학과 특차 접수자의 수가 미달이라서 바로 합격하게 된 것이다.
물론 부모님은 지금도 그때 S.K.Y. 대학에 원서를 넣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신다. 그렇지만 당시 나는 재수를 할 수 없어 반드시 한 번에 대학에 합격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고 합격을 확인하자마자 내가 원하던 아르바이트를 시작해서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에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세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스스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소중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