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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Sep 04. 2023

냄비 하나로 요리하기

푸드 미니멀라이프


냄비 하나로 요리를 한다. 그동안 일 년에 한두 번 전을 부쳐 먹을 때만 프라이팬을 꺼냈다. 평소에는 스테인리스 냄비 하나로 모든 요리를 해결한다. 나만의 살림을 꾸린다면 단출하게 냄비 하나만 구비할 생각이다. 채반이 있는 냄비 하나만 있으면 된다.


내가 하는 요리의 특징은 물과 불의 힘만 빌린다는 것. 기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요리법은 크게 세 가지. 끓이기, 찌기, 삶기. 내 몫은 불 조절과 시간 재기. 쌀이나 채소를 깨끗이 손질하여 냄비에 툭 올리기만 하면 완성된다. 냄비로 할 수 있는 요리법 5가지를 소개한다.




매일 먹는 냄비 밥


밥이 가장 많이 하는 요리다. 밥도 냄비로 지어 먹는다. 기본 현미밥부터 각종 채소를 넣고 지은 채소밥을 주로 해 먹는다. 고구마밥, 감자밥, 옥수수밥, 무말랭이밥, 콩나물밥, 다시마밥, 새송이버섯당근밥, 무밥, 당근밥, 표고버섯밥, 시래기밥, 파프리카밥, 양파밥, 완두콩밥... 넣기 나름이다. 자연식물식 초반에는 다양한 채소밥을 지어 먹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제철 채소 한두 가지로만 밥을 한다. 김치를 넣어서 밥을 지으면 기름 없는 김치볶음밥이 된다. 채소밥은 냉장고 파먹기 요리로도 좋다.



감자, 고구마 쪄 먹기


두 번째로 많이 하는 요리. 가장 많이 먹는 건 주식으로도 간식으로도 즐기는 고구마. 여름에는 감자, 옥수수, 단호박을 즐겨 먹는다. 옥수수도 채반에 올려 찐다. 감자는 물에 넣어 삶기도 한다. 가끔 특식으로 고구마나 감자를 에어프라이어로 구워 먹을 때가 있지만 되도록 냄비로 쪄 먹고 있다.



나물 반찬, 채소 찜


가끔은 나물 반찬도 만든다. 나물 요리의 핵심은 물에 데치지 않기. 채소가 가진 수분을 활용하는 '저수분 요리법'을 고수한다. 고사리처럼 독성을 제거해야 하는 나물이 아니라면 되도록 찜기에 올려 가볍게 익힌다. 시금치, 가지, 취나물 등. 나물의 간은 그대로 먹거나 소금 또는 간장으로 무친다. 혹은 간을 하지 않고 간장, 된장, 고추장을 넣어 간단한 나물 비빔밥으로 먹기도 한다. 김밥 재료를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 당근 같은 채소를 기름 대신 물로 볶지 않고 찐다.


저수분 요리가 빛을 발휘하는 건 채소 찜이다. 겨울이 되면 무를 굵직하게 썰어 찜기에 넣는다. 10~15분 정도 기다리면 달큼한 무를 맛볼 수 있다. 애호박도 큼직하게 잘라 약불에 3분 쪄 먹으면 나물로 먹는 것과는 또 다른 맛이다.



가끔은 국, 조림


국을 즐겨 먹지는 않으나 추운 겨울이 되면 뜨끈한 국물 요리가 당기곤 한다. 국을 끓일 때는 따로 채수를 준비하지 않는다. 다시마와 채소로만 맛을 내고, 넣은 채소와 다시마를 그대로 먹는다. 시금치, 배추 같은 채소는 다시마 없이도 풍부한 맛이 우러나온다. 추울 때만 맛볼 수 있는 시금치 된장국, 봄동 된장국의 맛을 알아버렸다.


이따금씩 콩물을 만들어 먹곤 한다. 시원하게 먹지는 않고 미지근하게 먹거나 따뜻하게 끓여서 고구마나 감자랑 같이 먹곤 한다. 삶은 콩에 물을 조금 넣고 갈아서 되직하게 보관하면, 조금씩 꺼내어 물만 넣고 콩 수프를 끓여 먹기에도 좋다. 그렇게 만든 콩물로 떡국을 만들어 먹거나, 된장국에 비지 대신 넣어도 별미가 된다.


가끔은 조림을 해 먹기도 한다. 무나 양배추, 버섯 같은 재료를 잘라 담은 냄비에 물과 간장을 넣어 약불에서 뭉근하게 조린다.



특별한 날엔 떡볶이, 국수


어쩌다 먹고 싶은 요리가 생각나면 내 방식대로 만들어 먹는다. 역시 냄비 하나에 조미료도 하나로 단순하게 만든다. 떡볶이는 양배추나 양파를 얹고 물과 양념(간장, 고추장)을 넣어 끓인 다음 현미 떡을 추가하는 방식이다. 깊은 맛을 더하려면 다시마를 쓴다. 콩과 현미 국수를 삶으면 콩국수, 콩물에 현미밥을 넣으면 리조또, 파스타도 만들 수 있다. 냄비와 저수분 요리법만 있으면 잡채도 손쉽게 가능하다. 냄비 하나로도 얼마든지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먹을 수 있다.



흉내만 낸 라따뚜이





요리의 기본은 불. 신선한 재료를 '익힌다'에만 집중한다. 영양과 맛, 식감을 해치지 않는 수준으로 적당히 요리하는 게 입에도 몸에도 잘 맞다. 복잡한 요리 과정은 재료 본연의 맛과 영양을 빼앗아간다. 요리 과정을 최소화하면 미각도 더욱 살아난다. 단순한 음식에는 깊은 맛이 있다. 그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먼저 요리부터 단순해져야 한다.


내가 하는 것이라곤 불을 켜고 5분, 10분, 20분만 기다리는 것. 불과 시간이 알아서 요리를 뚝딱 완성해 준다.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 주문을 외울 필요가 없다. 불 앞에 오랜 시간 서 있지 않아도, 열심히 휘젓지 않아도, 맛있고 건강한 요리가 뚝딱 완성된다. 마법처럼. 이미 맛과 영양이 충분한 음식에 조금의 불만 빌려다 쓰는 것. 매일 집밥을 먹어도 힘에 부치지 않은 건 이토록 쉬운 요리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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