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식물식을 지속하는 이유
기후미식은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면서 즐길 수 있는 음식,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염두에 둔 음식을 준비하고 접대하는 행동을 뜻한다. 지구의 모든 생명체, 현재와 미래의 모든 인류에 대한 책임감 있는 음식 선택과 소비를 의미한다.
- 이의철, 《기후미식》, 위즈덤하우스, 2022
'기후미식(Klimagoumet)'이라는 용어를 국내에 처음 소개한 생활습관의학 전문의 이의철 박사가 집필한 책에 이렇게 쓰여 있다. 저자가 기후미식이라는 말에 매료되었던 것처럼 이 책을 읽고 내 마음에서도 느낌표가 떠올랐다. '비건' '채식주의자', 그리고 직접 이름 붙인 '푸드 미니멀리스트'도 내가 음식을 선택하는 이유를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것 같았다. '기후미식가라면 나의 음식 사랑도 홀대하지 않는 이름이 될 수 있겠어.' 이 표현이 썩 마음에 들었다.
어묵이 들어간 떡볶이를 사랑했던 내가, 빨간 양념치킨을 좋아했던 내가, 아침으로 요거트와 시리얼을 즐겨 먹었던 내가 건강을 회복했음에도 이전의 식습관으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가 바로 '기후미식' 이 네 글자에 있다. 나는 ‘기후미식가’가 되기로 했다.
기후 위기는 시작되었다. 우리는 이미 기후변화 속에 살고 있다.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다. 미세먼지라는 이름에 가려진 대기오염, 계속되는 산불과 극심한 가뭄. 때 이른 폭염. 여름철 열대성 폭우가 쏟아지는 현상, 전국을 강타하는 태풍과 홍수 피해까지. 더 이상 자연재해로 치부할 수 없다. 전 세계를 전염병의 공포로 몰아간 코로나 19의 배경에도 기후변화가 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상 기후로 인한 피해는 모두 우리가 자초한 일이자 앞당기고 있는 일이다.
기후 위기는 현대인의 식품 소비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전체 온실가스 17.4%가 동물성 식품 소비로 인해 발생한다. 이 수치는 모든 운송 수단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웃도는 수준이다. 식품 산업에서 육류 소비는 탄소 배출의 주범으로 꼽힌다. 공장식 축산은 가축이 내뿜는 메탄가스뿐만 아니라 가축을 키우고 가축 사료를 재배하기 위해 경작지를 늘리는 과정에서 자연 서식지를 파괴하면서 더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축산업의 부산물인 식용유 소비도 지구 온도 상승에 기여하는 일이다. 라면, 빵, 각종 가공식품에 들어가는 팜유 생산은 원주민의 서식지를 빼앗고 열대 우림을 파괴하는 과정에서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시킨다.
해산물 소비도 기후 위기를 가속화시킨다. 세계 곳곳에서 대량으로 이뤄지는 저인망어업(Trawling)은 이산화탄소인 해양 블루카본을 방출시키고 무분별한 어획으로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 바다는 지구의 거대한 산소 저장고이며 지구 표면의 뜨거운 열기를 흡수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바다 생태계가 파괴될수록 지구는 더욱 뜨거워진다.
산업 혁명 이래 지구 평년 온도는 1.1도 상승했다. 기후 전문가들은 우리가 지금과 같은 소비를 멈추지 않으면 향후 20년 안에 임계점인 1.5도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기온이 1.5도 상승하면 전 세계 대도시 44곳 가운데 40퍼센트 이상이 매년 위험한 고온 현상에 시달리게 된다. 극심한 폭염은 온열 질환으로 인한 많은 사상자와 사망자를 발생시킨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구 온도 상승으로 해수면이 높아지면 많은 도시가 잠기게 된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 서울사무소는 2030년 해수면이 상승하고 태풍의 영향을 받아 우리 국토의 5% 이상이 물에 잠길 것으로 예측했다. 지구 온도가 올라가면 지금보다 더 강력한 태풍이 더 자주 찾아오고, 폭우로 인한 홍수 피해로 많은 이재민이 발생하며, 태풍과 홍수뿐만 아니라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농작물의 수확량이 줄어들어 가장 큰 위협인 식량 위기를 초래한다.
전 세계적인 식량 위기, 에너지 위기, 전염병을 동반하는 기후 위기는 수많은 '기후 난민'을 낳는다. 기후 위기로 인해 앞으로 찾아 올 경제 위기는 유가가 상승하고 곡물 가격이 폭등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기후 위기라는 대재앙 앞에서 어느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우리가 무분별하게 소비한 음식으로 인해 가까운 미래에 식량 위기를 겪게 될 위험에 처해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지구의 온도 상승을 늦출 수 있다. 기후 위기에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는 가장 먼저 식품의 대량 생산과 지나친 음식 소비를 멈추는 일이다. '오늘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은 개인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실천이다. 기름, 설탕, 가공식품과 육류, 해산물, 달걀, 유제품 등 동물성 식품의 소비를 줄이는 것. 자연식물식은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강력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더불어 수입 농산물이 아닌 산지에서 생산된 제철 음식을 소비하면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를 막고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
죽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는 몸이 되고 나서야 나는 건강한 식습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지속가능한 식생활을 찾기 시작했고 그렇게 자연식물식을 만나게 되었다. 자연식물식은 나를 건강한 생활로 이끌었다. 인위적인 음식들을 걷어 내고 자연스러운 음식을 통해 몸과 마음을 치유하자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건강에 대한 불안감, 자기중심적인 이유로 떠밀려서 했던 선택은 결국 나와 지구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 되었다.
나와 동식물, 자연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이 '연결감'이라는 보다 큰 가치를 바라보게 되면서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진정으로 나에게 이로운 일은 모두에게 이롭다고 믿는다. 나에게 좋은 일은 타인에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에게도 좋은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가슴으로 깊이 느낀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우리'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