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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Oct 14. 2023

전자레인지 없이 살기


최근 들어 전자레인지를 사용하는 일이 부쩍 줄었다. 밥은 매일 바로바로 해 먹고 있다. 이따금씩 밥을 이틀 분을 지어서 냉장고에 보관한 다음 꺼내어 데워 먹곤 했는데 요즘은 그냥 바로 해 먹는 게 더 편하다. 갓 지은 밥이 맛있기도 하고.


평소에도 밥을 데울 때와 고구마를 찔 때 말고는 전자레인지를 사용하는 일은 드물었다. 가공식품도 먹지 않으니 데워야 하는 음식이라곤 밥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밥도 바로 해 먹으니 전자레인지가 필요 없을 성싶다. 남은 것은 단 하나, 바로 고구마.


내가 전자레인지 없이 산다면 포슬포슬한 밤고구마를 포기해야 한다. 고구마는 전자레인지로 익혔을 때 가장 퍽퍽한 식감을 자랑한다. 밤고구마를 워낙 좋아하는 터라 고구마를 전자레인지로 자주 돌려 먹곤 했다. 물론 냄비로 오래 찌는 시간에 비해 한두 개씩 쪄서 먹기에 편리한 면도 있었다.


고구마는 자주 먹는 주식이자 간식이다 보니 전자레인지에 대한 작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입맛이 변한 것인지 수분이 다 빼앗긴 고구마보다 냄비에 쪄 먹는 고구마가 더 맛있게 느껴진다. 여전히 밤고구마는 좋아하지만 냄비로 쪄 먹어도 충분하니 이제는 정말 전자레인지에서 손을 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준비가 된 것 같다.


전자레인지로 음식을 가열하면 영양 성분이 파괴된다는 이야기에는 갑론을박이 따라붙는 듯하다. 사실 전자레인지는 음식의 수분만 가열하기 때문에 영양소에는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고, 오히려 조리 시간이 짧아 다른 조리법보다 영양 손실이 적다고 한다.


하지만 전력을 소모하고 전자파(마이크로파)로 진동을 일으켜 음식을 가열하는 것이니 그런 면에서는 자연스럽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부차적으로 안정성에 있어서 위험 요소도 존재하며 소음 문제도 발생한다. 이런 점들을 고려했을 때 내 입장에서는 맛 하나만 깔끔하게 포기하면 될 일이다.


예전처럼 간편조리식품과 냉동식품을 즐겨 먹던 때라면 전자레인지가 필수품이었겠지만, 2년 전부터 먹는 음식이 자연식으로 바뀌다 보니 전자레인지도 꼭 필요한 가전은 아니게 되었다. 독립하면 전자레인지를 따로 장만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그 전에 일찍 졸업하기로 했다.


이제 전자레인지의 문은 열지 않기로 하자. 포슬포슬한 밤고구마를 기꺼이 포기하리라. 냄비로 쪄 먹는 고구마도 충분히 맛있으니까. '띵-' 하고 울리는, 다 돌아갔다는 신호의 익숙한 알람 소리와도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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