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 없는 생일을 세 번 보냈다. 몇 년 새 입맛이 변하여 좋아하던 케이크도 그리 당기는 음식이 아니게 된 터였다. 그래도 올해는 오랜만에 케이크를 먹어볼까 싶었다. '고구마를 으깨어 케이크를 만들어볼까? 내 입맛엔 충분히 맛있을 텐데. 부족하면 단호박을 안에 넣는 거지. 괜찮겠는데?' 그렇게 모양만 케이크 흉내를 내어 보려고 했으나 그마저도 귀찮아서 건너뛰고 말았다. 그냥 생일이 오기 며칠 전부터 먹고 있던 미역국을 먹었다. 생일을 챙기려고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미역국을 먹었으니 됐지 뭐. 생일에 케이크가 꼭 필요한가?
사실 생일에 큰 감흥이 없다. 어느덧 늘어난 초의 개수가 달갑지 않은 나이가 되어서만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우리 가족은 생일을 잘 챙기지 않았다. 표현에 무심한 가족들 사이에서 자란 탓인지 생일은 특별한 날이 아니라고 여겼던 것 같다. '나는 그냥 생일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가 듣고 싶었는데'라고 생각한 때도 있었던 걸 보면, 특별히 행복한 생일을 보낸 기억도 손에 꼽을 만큼 드문드문하다. 가족과 친구들이 이 사실을 알면 슬퍼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내게 생일이란 특별한 날이 아니어서 메신저 프로필에 생일이 되면 자동으로 표시가 되는 설정도 사용하지 않는다. 생일 그게 뭐 대수라고.
내 생일엔 무감각한 편이었어도 친구들의 생일은 챙기려고 했다. 가까운 친구들의 생일은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친구들의 생일은 꼬박꼬박 챙기면서 가족들의 생일은 건너뛰는 게 일쑤였으니, 내 사랑은 밖으로만 나돌았던 게 아닐까. 사랑도 받아봐야 줄 수 있다던 그 말이 사실인 걸까. 스스로 주는 기쁨이 큰 사람이라 여겼지만 실은 그 사랑이 돌고 돌아 내게로 오길 바랐던 것은 아닌지, 정작 받는 사랑만 원했지 주는 사랑은 몰랐던 것은 아닌지, 지난날을 돌아보게 된다.
올해에는 새로운 일을 저질렀다. 하나는 생일 선물을 주고받던 친구들과 선물을 생략하기로 한 것이고, 하나는 내 생일에는 좋은 일을 하기로 한 것이다. 이제는 케이크도 선물도 없는 생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내가 태어난 날이라고 무언가를 받는 게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속마음을 확인한 터였다.
그래서 별 의미도 없는 생일을 기념하여 평소에 못했던 일을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긴 머리를 잘라 오랜 소원이었던 모발 기부를 했다. 어떻게 보면 '좋은 일'이라는 셀프 선물을 한 셈, 더욱 의미 있는 생일을 보냈다. 행복이란 꼭 무언가를 받아야만 느낄 수 있는 게 아님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받아들이게 된 순간이었다.
어떤 물질과 형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런 변화는 어느 것도 특별하지도 사소하지도 않으며 하루하루는 소중하다는 마음에 한 발짝 다가선 움직임이 아닐까. 생일에 케이크도 선물도 하물며 축하 인사도 받지 못한다 한들 부족함 없이 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왠지 그런 느낌이 든다.
12시가 지나 생일이 끝나버린 늦은 밤, 낡은 제과점에서 만든 오래된 버터케이크를 받아들고 얼굴을 찌푸렸던 아이는 이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걸까. 진정으로 주는 사랑이 무엇인지 조금은 배운 걸까. 과연 어떤 말과 음식과 물건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사랑을 나눌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나누고자 하는 것도 과연 진짜 사랑일까? 그런 생각을 한다. 어쩌면 사랑이란 어떤 것에도 담을 수 없으며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느끼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없이 살기 65. 생일 케이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