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없이 살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결 Oct 28. 2023

콤플렉스 없이 살기


콤플렉스 없는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나는 지금 콤플렉스에서 자유로운가? 남 앞에서 말할 수 있는 콤플렉스는 콤플렉스가 아니란 말이 있다. 일정 부분 동의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에서 밝히는 콤플렉스는 더 이상 콤플렉스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청소년기에는 쌍꺼풀, 그보다는 큰 눈이 갖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일찍이 속쌍꺼풀이 남들과 다른 나의 매력임을 발견하고는 절대로 흔히 하는 수술을 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그리고 지금껏 어떤 시술도 받지 않고 나의 모습으로 잘 살아왔다. 큰 눈에 대한 짧은 선망은 사라졌고 나는 내 눈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얼굴에 손을 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라면 따로 있었다. 얼굴에 난 점이었다. 어려서부터 점이 많았다. 점은 레이저 시술로 쉽게 제거할 수 있기에 콤플렉스가 아니라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거울을 보면서 얼굴에서 점 외에 다른 곳을 눈여겨보아서인지 점을 꼭 빼야 할지 필요성을 크게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다. '올 겨울엔 점을 꼭 빼야지'라는 생각도 해가 지나며 점점 흐려졌다.


그러다 이런 말을 들었다. "얼굴에 수박씨 뱉어 놨어?" 같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동료가 말을 트고 친해졌다고 여긴 모양인지 장난을 걸어왔다. 외모로 놀림을 받아 본 경험이 없었던 터라 장난기 가득한 말은 꽤나 충격이었다. 또 한 번은 친척으로부터 "점을 안 빼고 뭐 했냐"라는 타박도 들었다. 내 얼굴에 있는 점을 안 뺐다고 나태한 사람 취급을 받다니. 지금 생각하면 나는 왜 그런 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었는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그 말들에 상처받은 것보다 저런 말을 다른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에 더 놀랐던 듯하다. 그래서 그런 말들에 일일이 반응해 줄 필요가 없음을 일찍이 알았던 것 같다. 넘치는 관심에도 불구하고 나는 점을 빼지 않았다.


점에 대한 콤플렉스도 예민한 피부에 대한 수많은 고민도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지금은 얼굴에 그 어떤 콤플렉스도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몇 년 전 극심한 스트레스로 생겨 버린 새치 머리가 콤플렉스일까? 정 스트레스가 되면 염색을 하면 해결되는 문제다. 그렇지만 나는 염색을 하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 언젠가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생기는 변화라고 받아들이니 이른 나이에 생긴 새치머리도 콤플렉스가 되지는 못했다. 이제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는 남아 있지 않다.


콤플렉스는 우리말로는 열등감, 욕구 불만, 강박 관념으로 순화할 수 있다고 한다. 콤플렉스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결핍 혹은 자신이 싫어하는 자기 모습이 아닐까. 전자는 없으나 후자는 있다. 성격적인 콤플렉스, 바로 나태와 게으름이다. 나는 종종 때로는 자주 내면의 나태와 싸우곤 한다.


습관과 루틴이 일상을 지탱해 주지만 가끔은 내 안에 자리 잡고 있던 나태가 나를 저 바닥으로 한없이 끌어내릴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변하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질책하고 만다. 나의 본모습이 아니라 학습된 게으름이라는 걸 알면서도 익숙한 진창에 빠질 때가 많다. 내가 나를 부정하기 때문에 생기는 다툼은 요즘도 나를 괴롭히고 있다.


이런 모습도 진짜 나, 부정하고 싶은 나, 바꿔야 할 나로 구분 짓는 게 아니라 무수한 나의 모습 중 하나의 단면이라 받아들이면 어떨까. 게으른 나의 모습도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나와 싸우지 않겠다고 하는 순간 이 또한 아무것도 아닌 게 될까.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못하는 게 될까. 그렇다면 게으른 나를 인정하고 그대로 두자. 받아들임의 마법을 발휘해 볼 때다. 그토록 가리고 감추고 싶었던 외모도 나의 모습으로 받아들이자 더 이상 나를 구속하지 못했던 것처럼. 나 자신과의 싸움을 멈추는 것이 나를 속박하는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일 테니.





없이 살기 73. 콤플렉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