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없이 살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결 Nov 02. 2023

무제한 요금제 없이 살기


2년간 무제한 요금제를 사용했다. 통신 요금을 전액 할인받을 수 있는 혜택이 있어서 이왕 사용하는 김에 무제한 요금제를 선택했던 것이었다. 지난해 여름, 혜택이 종료되는 시점부로 알뜰폰 요금제로 변경했다. 지금은 월 4,900원 요금을 내고 있다.


사실 나는 데이터, 전화, 문자 이용량이 적은 편이다. 밖에서 사용하는 건 거의 메신저와 지도 앱뿐이라 데이터도 많이 필요하지 않다. 보통 2~3만 원대의 요금제를 이용했는데, 데이터는 1GB, 전화는 100분 정도면 충분하고 다 쓰지 못해 남을 때도 많았다.


무제한 요금에서 기존에 쓰던 요금으로 변경하려고 보니 과연 이게 합리적인가 의문이 들었다. 가족 결합 할인 때문에 같은 통신사를 장기간 이용해 왔는데, 가족 결합 할인에 선택 약정 할인을 적용해도 알뜰폰 요금제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저렴하다는 사실이 조금 의아했다.


그러니까 장기 고객이어도 특별한 혜택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은 영화도 잘 보지 않고 편의점을 이용하거나 각종 브랜드에서 쇼핑하는 일도 없으니 VIP 멤버십 혜택도 무용지물이 되었다. 알뜰폰도 통화 품질에는 차이가 없다고 하니 오랫동안 이용한 통신사를 과감히 포기하기로 했다.


스마트폰은 한 번 구입하면 고장 날 때까지 기본적으로 5년은 사용하는 터라 기기 변경은 하지 않았다. 쓰던 번호 그대로 통신사와 요금제만 변경하는 번호 이동을 했다. 셀프 개통이 처음이라 생소했지만 어렵지 않았다. 유심을 당일 배송받아서 몇 가지 절차만 밟으면 개통까지 하루 만에 바로 처리된다. 알뜰폰은 통화 품질이 떨어질 거라는 편견, 3대 통신사가 아닌 통신사를 이용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에서 벗어나자 왜 이제 바꾸었을까 싶었다.


새로운 것을 알아보고 바꾸는 일이 귀찮아서 현실에 그대로 안주하는 게으름만 버리면 자잘하게 돈이 새는 구멍을 막을 수 있다. 알뜰폰 요금제는 프로모션이 많아서 가입비도 요금제도 저렴하다. 찾아보면 가입비와 요금제까지 무료인 프로모션도 많다. 절약하려고 하면 얼마든지 절약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달에 얼마 되지 않는 돈도 모이면 꽤 큰돈이다. 나의 이용패턴을 확인하고 그에 맞는 상품을 고르는 일은 여러모로 낭비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중요하다.


무제한 요금제를 이용하면서 어디서든 항상 데이터를 켜두고 있었다. 흘러넘치는 데이터를 펑펑 사용했다. 집에 오면 항상 데이터를 끄고 절제하던 습관이 무제한이라는 이름 앞에 무장 해제가 됐다. '안 쓰면 손해'라는 생각이 은연중에 깔려 있었던 것 같다. 무제한 요금제를 이용해 본 건 제한 없는 소비에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에 대해 배우게 된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무료로 쓸 수 있다고 해서 대가가 없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내 돈이 나가지 않는다고 해서 낭비가 아닌 건 아니다. 소모되는 한정된 에너지는 어떤 방식으로든 대가를 치러야 한다. 공짜라고 함부로 써도 되는 건 아니다. 내가 와이파이 대신 끌어다 쓴 데이터는 공짜가 아니었다. 세상에 공짜란 없으며, 그 어느 것도 함부로 써도 되는 것은 없다.


이왕 하는 김에 제대로 혜택을 받겠다는 심리, 본전을 뽑겠다는 심리도 버렸다. 할인을 받기 위해 더 소비하는 일도 더 이상 하고 싶지가 않다. 내게 필요한 만큼만, 딱 그만큼만 쓰면서 살아가고 싶다. 흘러넘치는 것에 만족이란 없다. '무제한'이라는 한도는 내 생활에서 필요 없는 것이다.





없이 살기 75. 무제한 요금제
매거진의 이전글 스트레스 없이 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