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다. 내 오랜 취미는 게임이었다. 게임은 현실의 도피처였다. 방구석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게임만 했다. 혼자 플레이를 할 때도 많았지만 게임에서 친구들을 사귀면서 외롭지는 않았다. 돌이켜 보니 온라인 친구들은 내게는 고마운 시절 인연이었다. 긴 시간 스쳐간 수많은 인연들에게 감사하다.
새로운 친구가 생겼다. 어쩌면 더 깊고 은밀한 관계다.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는 바로 책이다. 매일 저녁 책을 읽는다. 기억하고 싶은 문장은 노트에 필사하면서 읽고 있다. 아침에 짧게 독서를 하기도 하고 낮에 낭독을 하기도 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필사한 내용을 독서 노트로 정리하고 리뷰를 써서 블로그에 올린다. 정확히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100편이 넘는 리뷰를 썼다.
책은 나를 밖으로 꺼내 주었다. 한 달 동안 외출을 안 하는 게 일상이었던 내가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집 밖을 나갈 이유가 하나 생겼다. 꾸준히 도서관을 드나들었다. 매일 나가지는 않더라도 반납일을 지키기 위해, 꼭 읽고 싶은 책을 빌리기 위해 매주 도서관에 갔다. 도서관 산책으로 조금씩 바깥공기를 마셨다.
책을 읽기 시작하며 게임과도 자연스레 멀어졌다. 책만큼 재밌는 게 없었다. 게임은 일시적인 재미라면 독서는 지속적인 재미였다. 이 재미를 죽기 전에 알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평생 책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한 취미가 지금까지 지속되었다는 사실이 스스로도 놀라울 지경이다. 관심 있는 분야의 책만 골라서 읽어 왔을 뿐인데 자기 계발, 환경, 영양학, 철학, 인문학, 문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접하게 되었다. 책을 매개로 좁은 방 안에서 더 넓은 세계와 긴밀히 접촉할 수 있었다. 내 문제에만 갇혀 있던 시선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책과 함께한 시간은 치유의 시간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오로지 나에게만 주어진 고요가 좋았다. 고요의 시간만큼은 어느 것에도 방해받지 않았다. 책을 읽을 때 어느 때보다 안정적인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안정을 찾았고 책에 빠져 들었다. 하루 종일 책만 읽기도 했다. 세상 공부와 나 자신에 대한 공부에 전념했다.
책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방구석에서 죽어가고 있었을지 모른다. 저 먼 바닥에서 진창을 구르고 있었을지 모른다. 미래를 꿈꾸기는커녕 오늘도 살지 못하고 과거에서만 살았을지 모른다. 하염없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저 숨만 쉬고 있었을지 모른다. 책이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그렇게 책을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달라지지 않았다고 하면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책이 있어서 방구석에서 죽지 않고 살았다면? 일단 살아야 뭐라도 하지 않겠는가? 일단 살아야 빛을 보지 않겠는가? 책이란 내게는 생명줄과도 같았다.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유일한 끈이었다. 그 끈을 놓지 않은 덕분에 나는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내게 시급한 일은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나를 돌보는 일이었다. 내가 손수 만든 집밥과 책이라는 양식으로 나의 몸과 마음을 보살폈다. 건강한 음식과 건강한 정신이 내가 더 이상 헤매지 않도록, 오롯이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도록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나는 새로운 나를 향한 발돋움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