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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Nov 28. 2023

눈치 없이 살기

마음 미니멀리즘


외딴곳에서 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면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저마다의 역할로 타인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 글은 눈치를 많이 보는 예민한 사람과 타인의 시선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에서야 자각하게 된 사실은 내가 눈치를 많이 보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까 말 한마디도 조심하는 편이다. 때로는 내가 한 말을 상대방이 오해했을까 봐 혼자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의식하며 행동할 때가 많다. 이건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이고 싶은 인정욕구와도 맞물리는 부분이 있다.


타고난 기질 같기도 하다. 나는 모범적인 어린이였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아이, 하지 말라는 건 안 하는 아이. 착한 아이가 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게 된 건 무서울 게 없었던 중학생 때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착한 아이가 되려고 애썼다. 어른들에게는 반항을 해도 친구들에게는 좋은 친구이고 싶었다. 친구들의 부탁은 거절하지 못했다. 싫은 소리도 못했다. 친구들에게 항상 맞춰 주는 쪽이었다. 친구들과 싸움을 해본 적도 없다.


연애를 할 때도 상대방의 눈치를 많이 봤던 것 같다. 상대방이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할까 봐 스킨십을 거절하지 못한 적도 있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그만큼 거절하는 것에 서툴렀다. 분쟁과 갈등, 싸움을 싫어하고 평화를 지향했던 나는 불만을 토로해서 관계를 개선하려 하기보다는 관계를 아예 끊어버리는 쪽이 차라리 쉬웠다. 웬만한 일은 포용하고 넘어가지만 상대가 일정 선을 넘어버리면 관계를 포기하고 마는, 그러니까 참고 참다가 매몰차게 안녕을 고하는 것이다.


요즘은 가까운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지만 대신 독자들의 눈치를 본다. 글을 쓰며 '사람들이 이 글을 좋아할까? 싫어할까?' 눈치를 보는 것이다. 내가 쓰고 싶은 글과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 사이에서 고민하기도 한다. 글을 쓰는 사람뿐만 아니라 창작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부분일 것이다. 결국은 내 글이 읽혀야 하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시시각각 대중들의 평가를 받는 일이 직업인 사람들이 대단해 보일 때가 있다.


그래도 이전보다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진 면도 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외모와 옷차림에도 많이 신경을 쓰는 편이었다. 최근 들어 대충 자른 머리를 질끈 묶고 맨 얼굴로 다니며 수더분한 모습에 익숙해지다 보니 마음도 자연스레 편해졌다. 이제는 매일 같은 옷을 입고 다녀도 아무렇지 않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보다 내가 편한 게 우선이 됐다. 생각해 보면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 아니고서야 다른 사람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기억할 때 떠올리는 건 그 사람의 머리와 옷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했던 말과 표정, 행동이다.




과연 눈치 없이 살면 편할까? 눈치 안 보고 사는 사람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남들이 뭐라고 하든 뚝심 있게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이다. 두 번째는 상대방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무례한 말을 함부로 내뱉는, 진짜 눈치 없는 사람이다. 전자는 부러워도 후자는 부럽지 않다. 배려 없고 무례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이 가장 속 편해 보일 때도 있다. 하고 싶은 말은 다하고 사니 최소한 속에 쌓여 있는 것은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고 상처 주고 싶지는 않다. 뾰족한 말은 가시가 되어 나를 찌른다. 말이란 돌고 도는 법이라 무심코 내뱉은 말들이 모두 내게 돌아온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가끔은 속 시원히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싶다가도 그런 마음이 쏙 들어간다. 똑같은 사람은 되지 말자고, 내가 상처받더라도 상처 주는 사람은 되지 말자고 되뇐다.


눈치 보며 사는 게, 예민한 사람으로 사는 게 꼭 나쁘지만은 않다. 내 마음이 편한 게 제일이지만, 나 편하자고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남이 불편하면 나도 불편한 사람이다. 이런 나를 애써 바꿔야 할까? 이런 사람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옳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나도 사회의 다양성의 한 부분으로 인정해 줘야 하지 않을까?


누구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배려심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다.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는 없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만큼은 내 노력이 전부는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애써 모진 사람이 될 필요는 없지만 때로는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도.


이따금 타인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는 것 같다 싶을 때면 다음 두 가지를 생각한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이 없다는 것. 그리고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것. 사람은 입체적이다. 한 단면만 보고 사람을 판단할 수 없다. 내가 신경 쓰고 있는 나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기도 하고, 단점으로 여기는 나의 모습을 장점으로 봐주기도 한다. 그러니까 어느 것도 특별하지도 사소하지도 않다는 얘기다. 예민한 나에게, 눈치를 많이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너무 마음 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다. 그리고 남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보다 나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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