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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Nov 25. 2023

호오 없이 살기

마음 미니멀리즘


호오란 좋고 싫음이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호오라는 판단을 내려놓으면 과연 어떻게 될까? 이 글은 전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이다. 취향을 버린다는 것도 일종의 '내맡기기' 실험이다.


《될 일은 된다》는 저자 마이클 A. 싱어의 40년에 걸친 내맡기기 실험을 담은 책이다. 내맡기기란 취향부터 호오, 관념, 분별 등 개인적 판단을 내려놓고 삶에 모든 것을 내맡기는 마음가짐을 말한다.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에 대해 좋고 나쁨을 판단하지 않고 그 일이 생긴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믿고 삶의 흐름에 온몸을 맡기는 것이다. 내맡기기를 보고 될 대로 산다, 흘러가는 대로 산다, 막 산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진정으로 삶을 믿고 모든 걸 삶에 맡겼을 때 삶은 스스로 선택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선물을 안겨준다는 게 마이클 A. 싱어의 메시지다.


나는 내맡기기에 긍정적이다. 《될 일은 된다》를 감명 깊게 읽었기 때문도 저자가 내맡기기로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도 아니다. 나는 아직 삶에 모든 것을 내맡겨 본 적도 없다. 다만 삶이 내게 필요한 것을 가져다주며 내가 선택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내가 글을 쓰게 된 것도 그렇다. 내가 지난날 배운 것을 돌려줄 차례였다. 그 경험을 글로 옮길 공간이 필요했다. 그러다 글쓰기 플랫폼인 브런치스토리를 접하게 되어 이곳의 문을 두드렸다. 감사하게도 글을 쓸 자격이 단번에 주어졌다. 길이 열렸다. 나의 글을 부지런히 써 내려갔다. 그러자 한 달 만에 구독자 200명이 생겼고, 내 글이 매번 브런치스토리 메인에 노출되는 행운이 따랐다.


이 모든 것은 어떤 목표나 기대도 없이 대가도 바라지 않고 시작한 일이 가져온 결과다. 책을 출간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니어도 좋았다. 구독자는 30~40명만 있어도 충분할 것 같았다. 그 이상 생각해 본 것도 특별한 목표도 없었다. 그저 내 글을 쓸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스러웠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기대와 바람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몰입했다. 흐름에 맡기고 매 순간 주어진 일에 몰두하자 삶은 더 많은 것을 안겨주었다.


삶이 내게 필요한 걸 때 맞춰 가져다준다는 것을 특별히 느낄 때는 책을 읽을 때다. 수많은 책을 읽으며 나는 내가 만나는 모든 책이 내게 온다고 믿게 되었다. 책과의 만남은 우연이자 인연이다. 도서관 서고에서 만난 책이 그맘때 내게 필요했던 지혜를 들려주고, 오늘 읽었던 책의 작가가 내게 필요했던 위로를 전해준다. 매번 책은 내가 원하지 않았던 혹은 내가 바랐던 것 그 이상의 것을 선물해 준다. 그래서 나는 이 우연을 믿는다. 내가 책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책이 내게 오는 것이라고.


책만이 아니다. 음식도 때마침 내게 필요할 때 찾아온다. 먹고 싶다고 생각했던 음식을 내 돈으로 사 먹지 않아도 어디선가 나타나 내 손에 쥐어질 때가 많다. 먹을 게 떨어져서 장을 볼 때가 되면 어디선가 먹을 게 생긴다. 음식만이 아니다. 검은색 가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때, 밝은 색의 운동화가 필요했을 때 선물로 받게 된 적이 있다. 이런 일을 수도 없이 많이 겪었다. 내가 부족한 걸 바득바득 채우고 원하는 걸 가지려고 애쓸 때보다 편한 마음으로 기다리면 삶이 알아서 내게 필요한 것들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때로는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선택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까지 내게 일어난 모든 일들에는 이유가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 이유를 애써 찾을 필요도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인생에서 찾아오는 불행은 불행만이 아니며 시련도 시련만은 아니라는 걸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모두 삶에서 배운 것들이다.


시련에도 이유가 있다고 믿으며 삶에 모든 걸 내맡기는 태도는 수동적이고 운명에 순응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열린 마음이다. 개인적인 욕망과 두려움에 휘둘리지 않고 삶의 흐름을 진심으로 믿는 자에게만 삶은 주려던 모든 것을 내어 주는지도 모른다.


나의 판단과 걱정을 내려놓고 지금의 상황을 수용했을 때 생각지도 못했던 행운이 찾아온다. 때로는 내 판단과 걱정이 불필요하다고 여겨질 만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어쩌면 두려움이 일을 만들고, 삶에 저항하려는 분별심이 일을 그르치는 게 아닐까?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나면 좋고 나쁨부터 분별하기 바쁘다. 마음속에서 편 가르기가 일어난다. 좋은 것만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려고 하는 마음. 그렇게 나를 지키고자 하는 마음. 그런데 과연 그 분별심이 나를 지켜주는 걸까? 나를 더 연약하고 자기 방어적이며 편협하고 이기적으로 만드는 건 아닐까? 나의 판단은 과연 옳을까? 나는 내 판단에 확신할 수 있는가? 나는 이 물음들에조차 확신을 가지고 답하지 못한다. 그러는 내가 내 삶을 어찌 판단하고 이끌 수 있을까?


나의 선택도 믿을 수 없을 때, 두려움과 걱정이 앞설 때, 저항하는 마음을 내려놓고 그저 삶에 내맡기는 것. 삶이 나를 이끌 것이라 믿는 것. 내게 오는 손길을 거부하지 않고 맞잡는 것, 한번 해볼만 하지 않을까? 이 세상에 온 것 또한 내 의지가 아니었듯, 세상이 나를 이곳에 부른 데는 이유가 있으니,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을 삶이 그려갈 수 있도록 나는 그저 한 폭의 도화지가 되어 보는 것도 내게 주어진 인생이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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