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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Dec 20. 2023

100과 99 사이

만족의 최소치


100과 99는 어떻게 다를까? 내가 지금 연재하고 있는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다. 5월부터 브런치스토리에서 <없이 살기>를 연재해 왔다. 그냥 100편까지 해보자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다. 중간에 그만둬도 상관없었다. 실제로 내가 계속할 줄도 몰랐으니까. 하나둘 쓰다 보니 어느덧 50편, 절반에 당도했다. 그 시점부터 연말까지 100편으로 시리즈를 마무리 짓겠다는 막연한 계획이 생겼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 90편의 글을 쓴 상황. 이 시리즈의 골조를 이루는 핵심적인 이야기를 담은 최종 편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이것만 쓰고 나면 끝이다. 조금만 더 가면 고지가 눈앞이다.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그런데 글이 쓰는 마음과 손이 자꾸만 멈춘다. '왜? 100편을 쓰면 뭐가 다른가? 100이 아니라 99 또는 101은 안 되나? 왜 꼭 100편이어야 하지?' 의문이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왜 '100'이라는 숫자에 집착하고 있는가. 다음 챕터로 넘어가고 싶었다. 100편이면 충분해 보였다. 아쉬움이 들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글로 풀어낼 수 있으리라. 그런데 꼭 마침표를 찍어야 하나? 못다 한 이야기를 계속하면 되지 않나? 반대로 지금 멈출 수도 있지 않나? 처음부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라면, 100이라는 숫자에는 '끝'이라는 의미 이상의 특별한 의미가 없다면, 지금 여기서 한두 편 덜 쓰거나 더 쓴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까? 100과 99와 101의 차이는 뭘까?


최종 편은 시리즈의 완결이자 핵심 내용이라는 점에서 남다른 것 같다. 그동안 영글지 않은 생각으로 쓴 글에 대한 아쉬움이 몇 차례 남았고 그것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조금 더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 아무리 지금 만족한다 한들 나중에 가서도 만족할 수 있을까? 아쉬움은 언제나 남는다. 여기서 최선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된다.


대체 최선이 뭘까? 열심히 하는 것? 잘하는 것? 목표까지 당도하는 것? 나는 최선이 아니라 최고를 향해 가고 있었던 건 아닐까?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치를 끌어다 쓰려고 한 건 아닐까? 그래서 자꾸만 방전되는 느낌이 드는 게 아닐까? 마무리를 지어야 한다는 생각도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은 마음도 결국 잘하려는 마음이 앞선 것이다. 이대로 끝내기 아쉬워서, 지금까지 한 것들이 아까워서, 완벽과 강박 사이를 걷고 있었는지 모른다.


어떻게 보면 <없이 살기>는 내 시그니처 콘텐츠가 된 셈이다. 이 시리즈를 완결 짓더라도 나는 일상의 변화라는 사소한 도전들을 계속할 것이다. '과일 없이 살기'도 실험해 보고 싶고 마음 미니멀리즘도 좀 더 다루고 싶다. 남은 10여 편의 글로 담아내기엔 부족하다는 게 지금의 판단이라면 계획을 변경할 수도 있다. 100이라는 숫자에 맞추려면 몇 가지는 버려야만 한다. 꾹꾹 눌러 담으려는 마음, 훗날의 아쉬움을 최대한 줄이려는 마음, 미완에 대한 아쉬움을 비워내기가 쉽지 않다.


며칠 전 브런치스토리에서 봤던 '60%의 만족'으로 그림을 그린다던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중학교 때 예술학교에 진학하여 미술을 전공하고 싶었던 그는 부모의 반대로 꿈을 접었고, 27년이 지난 어느 날 길을 걷다가 한 화실의 홍보 글을 보고 이끌림에 펜을 다시 잡았다. 그렇게 다시금 가슴 깊숙이 품고 있던 꿈을 화폭에 그리기 시작했다. 작가는 100%가 아닌 60%의 만족이 들 때 그림을 완성한다고 했다.


절반에서 조금만 더 힘을 보탠 정도의 만족으로 자신의 행복을 이어가는 마음. 그 마음에서 나의 만족의 기준점을 다시금 헤아려 본다. 나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내가 얼마큼 하면 만족을 느낄 수 있는지, 나의 행복은 어느 선에서 충족되기 시작하는지 그 최소치를 아는 게 중요하다. 글쓰기에서 나의 만족의 기준점은 '오늘도 글을 썼다'였다. 글감을 잡고 글을 쓰는 것, 그게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이자 만족이었다.


매일 오늘 내가 할 수 있을 만큼만 했고, 지금 여기까지 왔다.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매일 한 편씩 써 내려간 글에는 순간순간의 숨결이 담겨 있다. 그리고 나만의 것이 쌓였다. 조금은 엉성한 것들 사이에서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것들을 몇 가지 찾을 수 있다. 나는 그 정도에 만족할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만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100편이 되든 99편이 되든 101편이 되든 중요할까? 오늘의 걸음을 걷다 보면 '여기까지'라는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럼 그때 가서 찍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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