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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결 Nov 05. 2023

슬픔은 슬픔으로 말해야 한다


부모가 교도소에 수감된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봤다. 책 《나답게 꿋꿋하게 살아가는 법》에 실린 여섯 명의 아이들의 이야기다. 어디에도 말하지 못할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 딛고 일어서서 비슷한 아픔을 가진 이들에게 따뜻한 응원을 보낸다. 꿋꿋하게 '나'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서 삶의 용기를 읽었다.


자신의 상처를 기꺼이 드러내 보인 아이들은 오늘과 미래를 이야기한다. '무엇이 감사할 수 있는 거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온 나나(가명)와 "내게 없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누구도 내 삶에 만족할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 애니는 주어진 행복을 찾아왔다. 자신의 상처를 용감하게 보듬은 아이들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전하는 존재로 성장했다.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 부모를 용서하는 마음, 그리고 여전히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 자신과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희망을 잃지 않는다는 게 무엇인지를 배웠다. 때로는 아이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운다. 수용자 자녀들이 부모의 그늘에 가려지지 않고 자신을 잃지 않고 살기를 바라본다.


누가 아이들에게 돌을 던지는가. 사회는 너무도 쉽게 수용자 자녀들에게 낙인을 찍는다. 수용자 자녀들에게 현실적인 어려움은 부모의 보살핌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이들과 아이들의 삶이 그대로 방치된다. 우리 사회의 사각지대다. 그 누구도 아이들의 삶을 망가뜨릴 수 없다. 수용자 자녀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게 뒷받침되는 제도와 시스템이 마련되기를, 무엇보다 따뜻한 시선을 보낼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기원한다.


우리 사회가 슬픔에 대해 침묵하는 사회로 고착화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슬픈 일이 생겼을 때 충분한 애도가 이뤄지지 않는 분위기, 사건과 그 발생 이후의 여러 상황에서 수반되는 감정과 트라우마에 직면하지 않고 회피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슬픔에 대해서는 쉬쉬하고 침묵한다. 그것이 미덕이라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슬픔은 슬픔으로 말을 해야 치유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홀로 상처를 끌어안고 살아간다. 슬픔을 겪은 일에 대해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고 대화와 소통을 통해 건강하게 해소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나답게 꿋꿋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서로의 손을 맞잡은 것처럼 우리에게는 연대가 필요하다.


슬픔은 슬픔으로 말하면 더 이상 슬픔이 아니게 된다. 슬픔을 슬픔이라 말하지 못할 때 씻지 못하는 아픔이 된다. 치유되지 못한 응어리가 쌓여 삶을 짓누른다. 우리 사회가 슬픔을 건강하게 극복하는 건강한 사회가 되기를, 누군가가 아픔을 아픔이라 이야기하지 못해서 눈물짓지 않기를, 그늘에도 햇살이 비칠 수 있도록 부디 슬픔을 슬픔이라 말할 수 있기를, 상처를 감추는 시린 미소가 아닌 말간 얼굴로 마주할 수 있기를, 슬픔으로 웃음을 되찾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여러분의 삶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가치 있는 삶이니까요"라는 애니의 말처럼 우리는 아픔을 딛고 나아가야 한다. 인생에서 항상 좋은 일이 있을 수도 항상 행복할 수도 없다. 슬픔이 있기에 행복이 있고 행복이 있기에 슬픔이 있다는 것. 그것이 곧 삶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자 오늘을 사는 일이다.



내 삶의 일부분에 작은 빈틈이 생겼을 뿐이란 걸.
이 빈틈은 앞으로 내가 살아가면서 점점 채워나가면 될 부분이다.
- 소심이(15세)

《나답게 꿋꿋하게 살아가는 법》 중에서



자신의 힘듦을 표현하는 건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엄마와 아빠가 모두 교도소에 수감되어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한 빈이(가명)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크업 아티스트를 꿈꾸는 대학생으로 어엿하게 자랐다. 꿈을 잃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마음을 공감해 주고 위로해 주고 보듬어주고 감싸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상처를 지나치지 않고 먼저 손 내밀겠다는 그 주저 없는 마음씨가 가슴을 진하게 울린다.


맑고 따뜻한 손길이 주저하던 내 마음에도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래, 나도 주저하지 말자. 나의 그늘을 드러내어 그것이 곧 치부도 아픔도 삶의 그늘도 될 수 없음을 드러내 보이자.' 먼저 세상에 손 내밀기로 했다. 그렇게 나아가기로 했다.





새로운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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