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없어'
'돈이 없어'
'먹을 게 없어'
'입을 게 없어'
우리가 쉽게 하는 생각과 말이다. 하지만 이 생각과 말을 하는 사람 중엔 정말로 시간과 돈과 음식과 옷이 없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우리는 도대체 왜 있는 것을 없다고 여길까? 결국 '없음'이란 어떤 실재에 대한 인식보다는 감각의 영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의 경험에서 비롯된 생각이 아닐까. 내가 이것저것 없이도, 그리고 많은 것을 가지지 않아도 괜찮은 건 정말 소중한 것을 잃어봤기 때문이고, 모든 없음의 정도가 그것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게 일어난 일이자 변하지 않는 과거이다. 또한 미래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누구나 태어나 한 번쯤은 소중한 것을 잃는다. 그 존재가 부와 명예든 사랑하는 사람이든 소중한 꿈이든 투철한 신념이든. 따라서 인생이란 때로는 잃음의 연속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태초부터 가지고 태어난 이는 없으니. 그것을 잊지 않으면 이 없음이란 감각도 그리 낯선 것만은 아니다. 이 감각은 본래 가지고 있던, 우리 몸에 새겨져 있던 것과 다름없다. 그것을 잊고 살아가고 잃었다고 착각할 뿐이다. 그래서 계속 가지려고 애쓰는 것이다. 허나 이 땅에 가지고 태어난 자는 없고, 이 세상의 것을 가지고 떠날 수 있는 자도 없다.
그러니 있음에도 없음에도 그리 연연할 필요 없다. 더 가지고 더 비우려 애쓰기보다 잃은 것과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면 된다. 우리는 태어나 소유가 아닌 존재하기 위해 이곳에 있다. 존재하는 하나의 우주로 살자.
누군가는 먹을 것이 풍족한 땅에서 살면서 당장 먹을 게 없어서 '오늘 뭐 먹을지?' 걱정해야 하는 이들과 같은 고민을 매일 하고 살아간다. 정말 가진 옷이 몇 벌 없어서 '무슨 옷을 입어야 하지?' 걱정해야 하는 사람처럼 옷장 앞에 서서 한참을 서성인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진 자는 이미 가지고 있으면서 없는 것만을 찾고 없는 척을 하기 바쁘다.
억울할 것 없다.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란 늘 가지지 못한 것에 속해 있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 중에는 없는 것이니까. 우리는 가지지 못한 것만 바라보고 사는 인간이니까. 자고로 인간의 욕심이란 그런 것이니까.
없음에 대한 끝없는 갈망은 인간관계에서도 드러난다. 누구나 줄 수 있는 사랑을 가지고 있으면서 받기만을 원한다. 우리는 사랑을 나누는 사람이 되기를 꿈꾸기는커녕 늘 사랑을 갈구하기 바쁘다. 받지 못한 사랑에만 아파하고 상처받고, 사랑의 대상을 잃고 나서야 비로소 주지 못한 사랑을 깨닫고 후회한다.
우리는 왜 항상 없는 것만을 말하고 보는가. '있음'을 말하고 바라볼 수는 없는가. 이 또한 '없음'을 말하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생각한다. 침묵으로 존재하는 우주가 되어야 한다고. 없음으로 돌아가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