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소중함과 부모의 성장
네 번째 장 자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수도 있겠습니다.
오랜 시간 다양한 연령층의 학생들과 교감을 하며 성장과 발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에게 닥친 출산과 육아는 전문적인 지식과는 별개의 낯선 세상이었습니다. 할 줄 모르니 책을 붙들고 해결해보려 했던 지난 시간을 떠올리며 글을 쓰게 됩니다.
최고의 어머니를 위한 자녀교육서 에밀을 쓴 루소도 자신의 자녀는 직접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낯선 또 하나의 도전입니다. 부모였던 적이 없으니 낯선 것이고 자신을 닮은 한 인격체를 길러낸다는 것 또한 익숙하지 않은 일입니다. 때로는 불편한 자신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자식을 기르며 자신을 알아 갑니다. 자신이 사과나무이니 사과가 열리길 바라야 하는데 엉뚱한 과실을 기대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불가능한 일을 깨닫기 시작하면서부터 부모도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시작부터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심은 사과 씨가 싹이 나서 자라기까지의 과정을 온전히 돌보아야 하는 것이 부모입니다. 병충해를 막아주고 비바람과 자연재해로부터 보호막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싹이 트고 묘목이 되어 한 해 한 해 자라날 때마다 요구사항과 챙겨야 할 것들은 달라집니다. 바람을 견디지 못하는 어린 묘목의 바람을 막아주던 부모는 그 묘목이 커서 쑥쑥 자라도록 자리를 비켜주어 해를 가리지 않아야 합니다. 부모의 그늘이 너무 커도 아이는 자라지 못합니다.
묘목이 자라는 동안에 가지가 부러지고 잔가지를 쳐내는 아픔을 마주합니다. 그래도 열매를 맺는 튼튼한 나무가 되게 하려면 해마다 여리고 예쁜 잔가지를 잘라주고 나무가 흔들리지 않게 버팀목을 세워주어야 합니다. 그래도 병충해가 공격해 오기도 하고 여러 그루 심었던 나무에 버텨내지 못하는 나무도 보게 됩니다. 이런 과정들이 가슴 아프고 힘들지만 견디고 받아들여야 하는 과정입니다.
사과꽃이 하얗게 펴서 눈이 호강하고 향기가 사방으로 퍼져 저절로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는 날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반복되는 날들이 어느새 굵은 목대의 나무가 되고 꽃대가 떨어지고 나면 열매가 맺히는 감격의 순간이 옵니다.
내가 심었던 그 종자의 열매가 맺힐 것이며 나의 정성이 다해도 결과는 시원치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애써 지은 농사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자신이 뿌린 씨앗의 일부분이 발현된 것이므로 타인은 인지하지 못하는 어떤 것을 스스로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발현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부분뿐만 아니라 자신이 감추고 싶은 부분도 벌거벗은 듯이 나타나는 것이 자식이라는 존재입니다. 당황하거나 부인하는 대신 기꺼이 받아들이고 자신을 돌아보고 마주하는 계기가 됩니다.
땀 흘렸던 시간과 비바람을 막아내며 지키려 애썼던 함께했던 시간이 소중한 것입니다. 자신과 그 사과나무만이 기억하고 알고 있는 모든 순간들에 의미가 있습니다. 최상품종의 사과를 얻어내는 것이 목적은 아닙니다. 종자는 이미 정해져 있으니 남은 것은 서로 좋은 영향을 주며 더 나은 결과를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지요.
자식은 완성해야 할 색칠하기도 근사한 만들기도 아닙니다. 스스로 생각하고 성장하는 유기체이며 자신만의 영역이 필요한 존재입니다.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성인이 된 자식은 타인이며 자신에게 속해있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새로운 피조물이지만 독립된 이상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할 존재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부모님들의 지나친 기대와 관여 혹은 반대로 방임과 무관심이 문제가 됩니다.
여기서 이 양육이라는 과정에 동참하는 모두는 양육자나 양육의 대상 사이에 만들어지는 기나긴 시간의 연결고리에 주목해야 합니다. 초등학생만 돼도 스스로 생활은 가능합니다. 그렇다고 다 자란 것은 아닙니다. 육체적, 물질적 도움이 끝이 나도 자식은 생애주기를 통틀어 부모의 정서적 도움을 필요로 하고 성숙한 어른의 원형을 기대합니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부모는 자식의 삶에 이정표가 됩니다.
성숙한 부모의 역할은 자식의 미래이며 그러한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성인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어른이 아이 같은 '어른아이'로 존재하고 아이는 그러한 어른아이에게 양육되어 '애어른'이 되는 비정상적인 상황이 연출되어서는 안 됩니다.
부모는 나이에 맞게 성숙해져 가야 하고 아이는 나이에 맞게 커나가야 합니다. 각각의 나이에 맞는 발달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기회를 놓쳤어도 충분히 다시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성인인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의 어느 부분이 미성숙한 지를 알아내야 합니다. 스스로를 인지하는 일은 남아있는 생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일이며 이 과정은 학업성취도나 사회적 지위와는 별개입니다. 후천적인 경험에 의한 환경과 자발적인 노력으로 얼마든지 본인이 원하는 형태로의 삶이 가능합니다.
성숙한 부모의 자식을 대하는 태도는 어른으로서의 표본이 됩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넘치는 사랑을 절제할 줄 알고 옳고 그름에 단호하며 일관된 의견을 갖게 하는 일이 가치관 형성에 중요합니다. 상황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는 부류의 부모는 신뢰를 얻지 못하고 큰소리나 엄한 체벌이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온화하며 조용히 냉정을 지키며 일관성이 있는 부모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되고 신뢰하게 됩니다. 어려운 난관에 부딪혔을 때 마음을 열고 다가서고 의논할 수 있는 부모가 되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 밖에 아이가 원하는 일, 바라는 일은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고 실수하며 성장하는 것이 바람직한 길입니다. 부모의 과도한 바람이나 기대대신 참고 견디는 사랑을 알게 해주어야 합니다. 부모의 불안이 투영되지 않는 건강한 사랑을 나눠야 합니다. 대신 걸어줄 수 없는 길이니 힘든 길을 걷는 동안에도 의지가 되고 안정감을 채워줄 수 있는 부모의 역할이 요구됩니다. 더군다나 자갈밭을 갈아 아스팔트를 깔아준 들 그 길은 내 아이의 길은 아닙니다.
좋은 부모란 내면의 평화를 유지하며 좋은 기운과 긍정감을 나눠갖는 것과 더불어 자녀들과 따뜻하고 행복했던 기억들을 공유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