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및 주변인을 포함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색깔로 표현해 보겠습니다. 이름을 가진 각각의 색들이 있습니다. 유채색을 개개인이라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빛이 있어야 비로소 발광하는 존재. 스스로 빛나는 별이 되어 자신을 비추고 온전한 색이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흰색과 검정은 무채색이며 색의 범위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이 유채색들은 물과 함께하는 수채화와 있고 기름으로 조절하는 유화가 있습니다. 염료가 왁스와 섞인 것은 크레파스라 부르고 그 왁스의 양이 아주 작으면 파스텔이 됩니다. 이 이야기는 왜 하는 것일까요?
인간관계를 이야기하려다 보니 생각나는 부분입니다. 자신이 어떤 종류의 물감이나 색체인지에 따라 섞일 수도 섞이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그저 쉽게 묻어나는 사람인지 그래도 좋은 건 지를 스스로 판단해야 합니다. 물과 기름은 섞일 수 없으며 분리된다는 느낌을 불편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존재를 점검해 보는 겁니다. 물은 물대로 기름은 기름대로 그 의미가 있는 건데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음으로 불편한 감정을 갖는 것은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은 마음과 정신의 에너지는 창조와 생산을 위한 자양분입니다. 쓸데없는 곳에 낭비를 하는 순간 필요한 곳에서는 지쳐서 쓰러지게 됩니다. 자신의 존재, 정체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관계에 임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슨색이며 어떤 매개체와 유연하게 반응하고 잘 섞이며 무리 없는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이 질문이 인간관계의 초점이며 반복해서 확인하고 인식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모든 색을 대책 없이 섞으면 검정에 가까운 탁한 무채색이 됩니다. 예쁘지도 않고 고급스럽지도 않지요. 순정의 검정은 고급스러움의 대표입니다. 하지만 마구 섞여 나온 엉망이 된 어두운 색은 이도저도 아닙니다.
인간관계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관계는 서로 관련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니 자신이 어떤지를 아는 것이 인간관계의 시작입니다. 나는 어떤 부류의 사람이며 어떤 색깔이고 누구와 잘 어울리며 잘 맞는지가 중요한 포인틉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스스로의 정체성이 불분명한 사람은 스스로가 무채색이 되어 빛을 잃어 갈 때까지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고유의 이름을 가지고 태어나 빛이 비치면 자신만의 색을 발합니다. 예쁘고 고운 색이지요. 아기 때를 떠올려 보세요. 밝기의 문제는 상관없습니다. 채도의 문제가 더 중요하니까요. 밝음과 어두움은 타고났어도 맑고 순수한 기질이 더 중요합니다.
자신의 순도 높은 컬러가 타인과 관계를 갖게 되면서부터 섞이게 됩니다. 스스로 살 수 없도록 태어나 홀로 살아가기를 익히는 것이 과정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섞이며 나의 색깔을 지켜나가야 할까요? 물감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지만 우리는 사유하는 인간이니 스스로를 지속적으로 관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능동적으로 관계를 조절해가야 합니다. 매번 옳은 길만 갈 수는 없습니다. 잘못됨을 빠른 시간 안에 인지함이 중요합니다.
누군가의 마음을 바라보고 이해하고 훈련하는 일이 관계의 시작입니다. 끌려가는 관계는 누구와도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어렵습니다. 능동적이고 자주적인 관계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부모와 형제간에도 예외는 없습니다. 부부간에 자녀와의 사이에도 존중으로 그 사이를 유지해야 합니다. 사랑과 정이 전제가 된 사이지만 선을 지키는 일은 중요합니다. 너무 사랑해서 누군가의 색을 내가 바꿀 수는 없으며 너무 좋아해서 노랑을 무채색으로 망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옛말에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유상종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비슷한 색깔끼리는 곁에 있어도 잠시 섞여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반대의 색을 보색이라고 하지요. 이 색들은 섞이는 순간 탁하고 어두운 색으로 바뀌게 됩니다. 나와 결이 다른 사람들과 섞이려 하다 보면 문제가 생겨납니다. 짙은 색이 덮쳐 버리거나 혹은 옅은 색이 나의 순도를 흐트러트리게 됩니다. 빛이 아무리 비춰도 자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겁니다. 나의 색을 지키려면 자신의 맑고 순순한 순도를 유지하려면 내가 우선 어떤 종류의 무슨 색인지 정확히 아는 것과 경계설정이 중요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나는 물과 섞일 수 있는 수용성인지 기름과 섞이는 지용성인지 왁스와 만나 크레파스가 될 건지 부드러운 파스텔이 될 건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자신이 그려질 종이도 캔버스도 정해지고 삶의 필드가 바뀌는 거지요. 물고기가 물에 살아야 하는지 뭍에 살아야 하는지 산에 살아야 하는지 같은 겁니다.
경계를 지킨다는 것은 파렛트에서 물감이 섞이지 않도록 하는 것과 같은 이야기입니다. 어릴 때 미술시간을 떠올려보세요. 비슷한 색을 옆에 짜놓지 않으면 팔레트전체가 색이 뒤범벅되던 경험말입니다. 친구의 반듯하고 가지런한 예쁜 색깔들이 유지되던 팔레트를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처음 물감상자에 들어있던 순서대로 비슷한 색들을 옆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생활을 하니 어렵다고요? 맞습니다. 사회는 자신이 스스로 가지런함을 유지하기에 너무도 무질서합니다. 수시로 나의 색깔에 다른 색이 넘나들고 먼지가 날아와 앉습니다. 나의 칸에 넘나드는 타인을 조심해야 합니다. 여기서 타인이란 내가 아닌 모두를 이야기합니다. 선을 넘었다고도 하고 바운더리를 침범했다고도 하지요.
자신이 가진 성정을 그대로 인정하고 일정거리에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요령입니다. 때로는 불편한 관계가 될 수도 있지만 의사표현은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불편한 관계 속에서도 시간이 지나면 진실은 드러나고 관계는 바른 방향으로 형성됩니다. 하지만 무리한 관계설정과 지나친 양보는 무리를 불러옵니다. 해야 할 바를 다하는 것이 우선이고 스스로 용인할 수 있는 자발적인 배려면 충분합니다.
모두를 경쟁상대로 보고 이기려는 사람은 피곤합니다. 오래가기 힘든 관계가 됩니다. 타인은 공생의 관계이지 경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내가 경쟁할 대상은 어제의 '나'입니다. 인간관계는 날씨 같은 겁니다. 예측가능하지만 꼭 들어맞지는 않고 때론 천재지변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스스로 무엇을 잘못해서 틀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감당하지 못할 불가항력의 상황이 벌어진 거지요. 재난은 대비훈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타인에 의해 몰아치는 분노와 화는 냉정하게 그 상황에서 자신을 분리시켜야 합니다. 타인의 감정을 넘나들며 부산을 떨고 영역을 침범해 오는 사람은 물리적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배려를 악용하거나 선의를 곡해하는 인격은 서서히 멀어지는 것이 현명합니다. 그럼에도 무례한 사람과 권리를 넘어선 형태의 행위는 단호한 표정과 냉정한 침묵으로 시간을 두는 것이 시작입니다. 때로는 언성을 높이며 서로의 잘잘못을 가리는 대신 침묵이라는 시간이 관계를 수월하게 해결해 주기도 합니다. 안하무인을 만나면 일벌백계의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습니다. 타이밍이라고 하지요. 제 때에 꼭 필요한 방법으로 해결해야 조직과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공고히 할 수 있습니다.
조직과 공동체의 범위는 나를 제외한 복수의 사람이 관계될 때 형성되며 두 사람 이상이 되면 관계의 미학은 여지없이 필요합니다. 오늘의 내가 타인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나는 나로서 태양빛을 받고 빛나는 고유의 색이어야 합니다. 인내와 신뢰가 바탕이 된 인격체로써 타인의 고통을 분담하고 조직 안에서 선한 영향력을 가진 자신을 만들어 가는 일. 어려운 일이지만 업무능력이나 성과만큼 중요한 일이며 온기와 향기로 아름다운 색을 지닌 사람이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삶을 익히고 배우는 과정은 인간과의 관계에서 시작되며 교육을 통해 증진되고 사회생활을 통해 폭을 넓히게 됩니다. 그러다 사회생활이 마무리가 되면 자신과의 관계를 마주하며 반성과 성찰의 홀로 있음에 들어갑니다. 성숙해지는 과정이고 어른이 된다고도 표현합니다. 이 과정은 나이나 학습이 해결해 주지는 않습니다. 자신과의 부단한 싸움이며 문제인식과 실천의 문제입니다. 이 이야기는 마지막 6장에서 더 자세히 다뤄보겠습니다.
내가 가진 나의 색깔이 옆의 누군가로부터 침범당할 때 의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넘어온 불필요한 색들을 제거하고 원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자신이 타인에 의한 것이 아님을 원치 않은 색깔을 띤 자신이 타인에 의한 것이 아님을 인식하고 스스로 색깔을 지켜내야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고 미래를 꿈꾸고 자신만의 색깔을 공고히 하는 이 지난한 과정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흔들림 없이 스스로를 지켜내고 원하는 자신을 만들어 가는 지름길입니다.
소중한 시간 내서 독자가 되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매주 수요일 12;00에 연재됩니다.
다음 주는 마지막 6장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나이 듦과 물러남,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