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듦과 물러남, 받아들임
나이가 들면 변화가 옵니다. 당연한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이 당연함을 받아들이는 일은 어렵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해보려 합니다. 인생이라는 길을 지속적인 변화와 성장을 위한 기대와 흥분으로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려왔을 것입니다. 풍파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무사히 완주했다는 생각이 드는 나이 듦은 숨 고르기를 하는 시간이 주어진 것입니다. 필요한 시간이고 다행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보편적인 인식은 부정적이고 기꺼워하지 않음이 다반사입니다. 왜 그럴까요?
첫 번째는 익숙하지 않음입니다. 성장을 하고 발전을 하고 생산을 하는 일에 적응이 되었던 자신이 이제 그 생산벨트에서 내려오는 시기입니다. 빠른 속도로 적응되어 있던 일상이 스스로 운영해야 하는 느린 삶으로 전환이 됩니다. 열심히 살아왔으니 자신을 돌 볼 시간이 주어진 것이지요. 그런데 수입이 줄거나 없어지고 시간이 많아지는데 오는 낯섦이 마음을 불안하게 합니다. 익숙하지 않은 삶의 속도와 시간은 공짜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큽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에게 주어진 무상의 시간은 큰 자산입니다. 누군가에게 종속되었던 자신이 온전히 자유가 되어 누리는 최고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스스로 결정하고 '나'라는 사람이 주체가 되어 하루를 온전히 쓸 수 있는 최상의 시간이 온 겁니다. 그동안의 삶이 생계를 위한 시간이었다면 이제부터는 스스로 계획하고 운용하며 원하던 것들을 이루고 만들어가는 시간입니다. 내적, 외적으로 말입니다.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계획하고 이루어가는 시간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내적으로는 독립된 자아가 되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은 상호의존과 협력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워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전의 삶과 패턴이 달라지므로 순조로울 수만은 없습니다. 하나씩 천천히 적응해 가면 됩니다.
시간관리가 우선입니다. 타인과 함께하던 시간에서 자신과 함께하는 시간으로 이동이 필요합니다. 둘이서 혹은 셋이서 하던 일을 혼자서 하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처음에는 어색하던 일들이 점점 익숙해집니다. 온전히 나이 듦의 시간으로 접어드는 것입니다. 익숙해지면 오히려 아름다운 시간이 됩니다. 나만의 시간을 온전히 나의 의지로 계획하고 운용하는 일이 처음에는 어색합니다. 왜냐하면 타인을 위한, 타인이 원하는 삶이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요구가 돈으로 환산되는 경제활동을 벗어나면서 자유가 됩니다. 이 자유를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돈보다 소중한 자산이고 열심히 살아온 지난날에 대한 무형의 보상입니다. 이 시간은 너무 많은 부의 증식에 대한 노력보다는 자신을 풍요롭게 하는데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고 그렇게 해도 크게 어긋남이 없습니다.
두 번째는 물러남을 받아들이고 익숙해지는 일입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는 무거운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것이 오히려 맞는 말입니다. 고군분투하던 현역의 역할을 벗어버리고 온전히 내가 되는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타인이 불러주던 호칭으로부터 벗어나 온전한 자신으로 돌아가는 시기입니다. 가벼워진 마음과 몸으로 자신을 위한 시간계획을 세우고 그 즐거움을 누려보는 시간입니다. 잊힘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스스로 고독을 마주하며 지난 시간의 자신을 돌아보고 현재의 자신을 마주합니다. 부족함과 호기심을 채우고 자신의 필요를 보충해 주는 일들을 찾아서 적극적으로 해나갑니다.
누군가와 같이하던 시간들을 온전히 자신의 시간으로 만드는 일은 중요합니다. 충분한 사유의 시간이 되고 창작을 하기에도 넉넉한 시간입니다. 무엇이 되기 위한 목적보다는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며 건강한 몸과 마음을 챙기는 시간입니다. 자신이 즐거워하는 일을 계획하고 그 시간을 온전히 보내는 일은 자신의 내면에 가까워지는 길이며 창작의 길과도 맞닿아있습니다.
나이가 들어감에도 소란과 수선에서 떠나지 못함은 온전히 맑은 정신과 판단을 유보하게 됩니다. 스스로도 인식하게 되는 원치 않는 삶에 끌려가는 형국입니다. 급여나 사회적 지위가 속박하던 시간들을 벗어난 상태에서 스스로를 바른 방향으로 이끌지 못할 이유는 없습니다.
나이가 들어 어른이 된다는 건, 어릴 때 사춘기를 지나며 성인이 되는 것만큼의 불편한 과정을 지납니다. 요동치는 감정과 신체적 변화 가운데 적응하며 자신을 독려하고 찾아가는 길입니다. 삶은 사랑과 용서를 배우고 인내와 용기가 교차하는 인생이라는 긴 연극입니다. 누구나 삶이라는 무대에 있는 배우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가꾸어야 하는 시기입니다. 주어진 역할을 끝내고 내가 원하는 역할로 선택하세요. 지목되고 주어진 일들로부터 벗어나는 겁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시간을 충만하게 만들고 다시 다른 형태의 독립적인 사람으로 태어나는 시기입니다. 타인에게는 너그러워지고 놓아줌과 내려놓음을 배우고 원하는 일을 찾아 나서는 시기입니다. 사회로부터 친구로부터 자식으로부터 독립해서 자신과 가까워지는 시기입니다.
좋아하는 향기를 가까이하고 먹고 싶은 음식을 소화하고 고요한 시간을 누릴 수 있고 척추를 곳곳이 세울 수 있는 근육이 있어 원하는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시간들. 검약한 생활이 몸에 익어 충분한 만족을 느끼며 너그럽고 행복한 미소를 지닐 수 있다면 참 좋은 삶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신과 대화를 시작하고 마음속 깊숙이 숨어있는 아이를 꺼내어 달래 주세요. 좋은 기억을 들려주고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며 이 세상이 아름다웠노라고 되새겨 보는 시간입니다. 불평과 불만을 하기에 시간은 너무도 유한하고 아깝습니다. 오래 살다 가더라도 사회에서 나와 자연인이 되는 순간 죽음을 진지하게 마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세상과 작별할 거라 생각하면 많은 부정적인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속상한 일들과 잊지 못할 일들을 떠나보내고 즐거웠던 기억들과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모아 보세요. 생각보다 많아서 기분이 좋아질지도 모릅니다.
지난 시간들을 살아오며 힘겹다는 투정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지나고 보니 희석되는 감정들을 보며 이럴 줄 알았으면 '행복하기'를 미리 선택할 걸 그랬다 싶습니다. 내가 스스로 행복하기로 충만하기로 아름답기로 선택하고 결정하면 됩니다. 그렇게 내가 주도적으로 내 삶을 이끌어가는 겁니다. 마음먹고 실천하는 이 과정이 너무 어려워 인생을 어찌하지 못해 방황과 배회를 하며 자신을 괴롭힙니다. 이제 방법을 알았으니 되뇌며 실천하면 됩니다. 나는 내가 선택한다. 내 감정도 내가 선택한다. 내 삶도 내가 선택한다. 그렇게 살아간다라고 말입니다.
특별한 비법은 아니지만 누군가 꼭 필요한 사람이 이 글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글이 마음에 와닿는 그날이 와서 남아있는 시간들을 낭비 없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간들로 채워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12번째 이야기를 끝으로 브런치 작가에 지원했던 글을 마칩니다. 목차를 써낸 것이 덜컥 되는 바람에 3월부터 매주 수요일 부지런히 약속을 지키려 노력했습니다. 첫 원고이고 시도였으니 부족함을 꺼내자면 한없는 글입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계속해서 읽어주신 독자님이 계셔서 완주를 했습니다. 구독해 주시고 시간 내어 읽어주시고 댓글로 마음까지 나누어 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너무 늦지 않은 시간 안에 새 글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