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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하늘HaruHaneul Apr 24. 2024

결혼에 관하여

누구와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두 번째 장의 두 번째 이야깁니다.


누구와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결혼이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이렇게 어렵고 조심스러운 어휘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결혼은 생애주기의 순서에 있는 절차로 때가 되면 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물 흐르듯 진행되던 인간사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깊은 생각이 전제가 되지 않아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자연의 섭리에 따라 진행되던 일이 이제는 공동체의 중요안건이 되고 사회가 모두 고민해야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결혼이 선택이라면?


해 본 사람의 의견이니 출발점이 다를 수는 있겠습니다. 결혼을 숙제처럼 했습니다. 주체적이고 자발적이었지만 다른 길은 생각해보지 못한 오류도 있었습니다. 지금 같으면 일을 하느라 더 늦어져 그 결과를 알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결혼의 기준에는 많이 부족했지만 몰라서 시작했고 모른 채로 살아왔습니다.


바쁜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해 가던 그 시간에 결혼생활은 익숙하지 못함이 두 배가 되는 버거운 생활이었고 견뎌낸 그 시간이 뿌듯한 지금입니다. 순조롭진 않았지만 아기가 생겨났고 자신의 아이가 생겨난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기쁜 일이었습니다. 원했지만 상상하지 못한 다른 세상을 마주하는 일이었고 녹록지 않은 도전이었습니다.


지금 언급한 뿌듯함과 기쁨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얻어낸 성장의 기록입니다.


그 시간 다른 일을 같은 강도로 견뎌냈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요? 가지 않은 길을 상상해 봅니다.


한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홀로는 불가능합니다. 주변인과 환경이 상호작용을 통해 일어나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길고 길었던 그 시간, 자신의 영역을 지키고 가정을 꾸리는 일은 꽤나 강도 높은 도전의 순간이고 마무리라는 이름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먼 도전의 한 종목입니다.


흰 면사포와 단란함이 그려낸 한 장의 사진과는 맞바꿀 수 없는 무게입니다.


그렇다면 홀로 걷는 그 길은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원가정으로부터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독립을 해서 한인격체로 성장을 하고 스스로의 세계를 이뤄가는 일도 형태가 다른 도전이라 생각합니다.


스스로 자급자족의 생활을 하고 주어진 모든 시간을 스스로 운용하고 둘이 나눠 들어야 할 인생의 무게를 혹은 덜어줄 삶의 굴곡을 혼자서 온전히 이어 나가야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일은 자신의 선택의 문제이지 권유로 지나갈 수 있는 터널도 아니고 부러워 뛰어들 수 있는 푸른 물도 아닙니다. 어려움의 경중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니 닥친 사람에게는 모두 다 힘든 도전일 것입니다.


수많은 상상과 가정을 연습 삼아 현실을 어깨에 메고 산을 오르는 지난한 과정인 것이죠.


결혼이라는 공동체는 모두에게 살아있는 성장의 발판이 되고 아이와 함께 그려가는 거대한 그림이기도 합니다. 물에 젖고 찢어지는 그 그림을 다시 이어 붙이고 마르면 예쁜 색으로 덧칠을 하며 약속된 밑그림을 사이좋게 칠해가는 과정입니다.


양보하지 않으면 금방 무너지고 마는 이인삼각이며 동시에 절묘한 균형을 이겨내야 하는 시소 같은 삶이라는 생각입니다. 주체적인 두 사람이 균형을 이루고 합일된 상태에서 서로에게 기회를 주는 일. 균형은 팽팽한 긴장을 포함합니다. 시소에서 느껴지는 절묘한 긴장감을 협력하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만족을 주는 것이지요.


무엇이 옳다 그르다 혹은 이 길이 맞다 아니다를 논하려는 게 아니라 이미 한쪽을 선택한 사람의 의견으로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길에 접어든 느낌으로 한 방향으로 부단히 애쓰며 살아왔습니다. 겉보기가 평균율에 이르면 다행인 삶이라 여기면서 말이죠. 속이 시끄러운 건 모두가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며 그렇게 인생의 절반을 넘어 후반도 한참 지나 돌아볼 여유가 생겼습니다. 이 글은 지난날의 나에게 쓰는 글이기도 하며 필요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에 쓰는 글이기도 합니다.


그 길에서 부족함으로 다져진 삶의 지혜들이 엮여 늘그막에 성숙해져가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삶의 모퉁이마다 생각하지 못한 일들을 마주하며 그 시간을 잘 지낸 자신을 다독인 덕분에 내려놓는 법도 터득하게 됐습니다.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였다를 반복하던 시간들. 조율하고 맞추며 한 팀이 되어가는 느낌도 알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어려웠지만 가치 있는 삶이었고 도전해 볼만한 선택이었습니다.


불협화음이 듣기 좋은 멜로디가 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은 연습과 반복의 연속입니다. 저절로 아름다운 멜로디가 연주될 수는 없습니다. 지루한 연습과 반복의 과정은 인내를 불러오고 견뎌내면 무대에 오르는 기회도 찾아옵니다.


반문이 들립니다. 그런 성장과 인내와 행복은 혼자서는 안 되나요? 안될 이유는 없습니다.


결혼을 해서 가족이 있다는 것이지 그 모든 길은 ‘따로 또 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히려 더 힘들 수도 있습니다. 나의 성장과 발전은 스스로의 문제이며 외로움은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은 존재 자체로써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지 누군가 있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강 건너에서 보니 이곳은 뭉쳐있고 환한 불빛이 비추는 듯 따뜻해 보입니다. 하지만 각자가 해내야 할 인생의 숙제는 같습니다. 그래서 선택의 문제라는 표현을 한 겁니다. 무엇이 낫다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상태에서 나를 키워갈 것인지를 선택하는 문제입니다. 홀로라도 둘이라도 셋이라도 내 숙제는 내가 풀어야 합니다.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삶의 주체가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이 하고 싶은 말입니다. 그 말은 주어진 환경 말고 스스로 하는 선택에 대한 책임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고 운용한다면 결혼이라는 제도와 자신의 성장은 각각의 문제가 되는 겁니다. 어떤 선택을 해도 성장과 발전은 자신의 몫이니까요. 주도적인 삶을 꾸려나가는 일은 어떤 구성과 제도의 문제안에서도 선택할 수 있는 자신의 고유 영역입니다.


세상이 점점 메말라 가는듯하고 아름다운 그림에 텅 빈 채로 헤매는 아름다운 청춘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요즘입니다.


스스로 우뚝 서 독립된 인간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게 성장하고 성숙한 삶이지만 온전히 독립된 두 사람이 만나 내는 시너지가 더 크다는 생각도 지울 수는 없습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숭고함을 겪어보고 견뎌낼 수 있는 최소단위의 공동체가 가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든 인류와 사회와 자연과 다 사랑을 이룰 수는 있지만 책임을 전제한 지난한 과정은 둘이 힘을 모아 일구는 가정이라는 생각입니다. 서로 조율하고 맞추며 성장하여 한 팀을 이루고 팀전을 치르며 팀원이 늘어나는 것이죠.


한 팀이 되어 그려내는 아름다운 그림. 과정조차 아름다운 건 아니지만 배움에는 늘 위기가 따르니 그 또한 삶의 한 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온전히 스스로를 지탱하며 자신의 영역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서 각자의 울타리에 문을 내고 공유하며 존중하는 삶이라면 오르락내리락하는 시소의 즐거움을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혼자서는 즐거울 수 없는 빈 시소를 바라보며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공중을 떠오르며 다시 내려앉기를 반복하며 느끼는 그 함성과 웃음, 같이 탈 수 있는 사람을 만나 삶의 난제를 같이 해결해 나가는 일을 결혼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독자가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글은 매주 수요일 12:00에 발행됩니다.

2장의 두 번째 글이 끝났습니다.


다음 주엔 3장이 시작됩니다.

투자와 재산증식에 관한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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