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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아픈 사랑도 사랑일까?

유언/산도르 마라이

by 하루하늘HaruHaneul

헝가리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수학하고 파리와 이태리, 스위스와 뉴욕을 거쳐 샌디에이고에서 생을 마감한 모국어를 사랑한 작가 산도르 마라이. 헝가리어로 카프카를 전하고 헝가리어로 글을 쓰고 고국을 그리워하다 태평양에 잠들었다.


진실에 대한 질문과 인간의 유약한 분별과 존재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와 함께 흔들리는 영혼과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해 답한다. 사랑이라는 키워드로 시작하는 이야기에 얽힌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운명. 어렵고 답답한 상황을 잔잔한 대화체의 이야기로 풀어내며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인다.


삶은 투쟁이고 오욕이라며 의무를 다했으니 구원을 향해 죽음을 받아들이겠다는 주인공 에스터, '나'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한다. 자신의 언니와 결혼한 사랑했던 남자가 20년 만에 나타나 하루 만에 벌어진 일들이다.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마음먹고 찾아올 때는 이유가 있는 법. 시작부터 불안하다.


따사로운 구월의 토요일에 받은 전보로 분주해진 이 여인의 마음과 다음 날 하루 사이 그녀가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하게 되는 순간. 인간이 살면서 절대 엮이지 말아야 할 사람의 현란한 말에 운명처럼 끌려들어 가 그녀에게 남아있는 모든 것을 빼앗기는 넋을 놓은 한 여자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앞으로 하느님이 나를 어떻게 하실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라요스가 마지막으로 나를 찾아와 모든 것을 빼앗아 간 날을 이야기하려 한다.




라요스, 그는 과장되고 유치하며 거만하고 허풍스럽고 거짓말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다. 결혼을 그와 하지 않은 것이 잘된 일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나'가 유일하게 사랑했던 남자, 라요스는 그녀에게 사랑한다 말하고 언니, 빌마와 결혼을 했다.


시간이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받은 '나'는 생의 비바람을 알고 따뜻한 울타리를 이해하기까지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마주하고 삶을 정리하며 마지막을 준비 중이다. 그녀 옆에는 현명한 누누와 나이를 먹어도 어린아이 같은 오빠 라치, 그녀에게 구혼했던 선량한 두 남자 앙드레와 티보르가 좋은 친구로 남아 있다.


누누는 말수가 적고 냉정하며 무정하고 차가워 보이지만 '나'에게 길을 밝혀주는 온화하고 희미한 불빛 같은 존재이며 그녀의 곁을 지키는 단단한 버팀목이다. 모든 것을 잃은 두 사람이 겨우살이와 나무처럼 의지하고 산다.


이 가족의 삶에 라요스를 불러들인 그와 비슷한 성격의 오빠, 라치. 부족한 현실 감각과 신기루를 쫓는 성향, 걸핏하면 남을 속이려 드는 무절제한 충동, 영혼까지 비슷한 애교스러운 외모를 가졌던 두 사람. 자신이 예뻐하는 여동생(에스터)을 향한 지나친 질투와 애착으로 두 사람을 떼어놓고 흡족해하는 못난 오빠다. 결국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고 본인과 비슷한 친구와 결을 같이하다 자신의 미래마저 주저앉힌 경우다.


방탕한 건 아니지만 화려한 생활을 쫓고 새로운 삶의 방식을 쫓는 한량. 사치스럽고 고상한 무위를 즐기는 두 사람(라요스와 리치는 절친이다). 자신에 대한 성찰 없이 타인의 삶을 재단하고 부족함을 파고들어 눈빛 하나로 이 사람 저 사람 내동댕이치고 추켜주고, 하늘 높이 들어 올리는가 하면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부류의 경박한 인간이다.


이런 유형의 인간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작가의 글을 통해 변하지 않는 인간의 불완전하고 어리석은 본성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럴듯한 외모로 쌓아 올린 별 볼일 없는 유명세와 실체 없이 부풀려진 삶에 현혹되어 강풍에 종이처럼 나부끼고 떼 지어 다니며 그들을 열망하는 사람들. 라요스 같은 사람들의 미사여구 가득한 사탕발림에 귀 기울이고 눈이 머는 상황은 나아지기는커녕 더 심화된 듯하다.


공증인 앙드레는 라요스가 친구 라치 아버지의 모든 재산을 곶감처럼 빼먹을 때 저당 잡힌 집을 지켜 그 지붕과 울타리 속에서 누누와 에스터가 생계를 이어가도록 도와주었다. 라요스가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법률과 관습, 오성이 규정하는 논리적 사고가 가능한 사람이며 그가 부리는 온갖 술수에 미동이 없는 사람이고 투박하고 무거운 성품에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하는 수수께끼 같은 저항력과 성직자 같은 거리감과 비평하는 듯한 침묵을 지닌 사람, 투박한 선량함과 어리숙함을 지녔음에도 라요스가 불안해하는 유일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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