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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보살과 민바람 Jul 05. 2023

피해와 피해의식

고통의 의미

어떤 비슷한 종류의 일이 반복되는 건, 자기 안에 고인 무의식을 정화하고 넘어서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 있다.


나에게는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 오랫동안 그래왔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쭉 빈틈없이 새로운 피해들이 이어진다. 하루라도 한숨을 돌리면 다른 일이 생기는 식이다. 해결되지 않은 채로 겹쳐진다.


어제는 도대체 왜 그런 건지 답답해서 매주 만나는 심리상담 선생님께 내가 겪은 일들을 쭉 말씀드리고 여쭈었다. 이게 피해의식인지, 피해인지.

피해라고 했다. 물론 피해를 많이 입어 피해의식도 있는 편이라 생각하지만, 내가 겪은 일들을 내가 과민하게 받아들여 스스로 피해자가 되는 건 아니었다.


언제나 문제는 내가 부당함과 불쾌함을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방법으로 표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너무 좋았던 관계의 일관성에 휘둘리거나, 상대의 친절에 넘어가거나, 그래서 내 불쾌함을 그 순간 깨닫지 못하거나, 알고 있지만 언변이 부족하고 생각이 느려서 말로는 이길 수 없다거나.


그래서 뒤늦게 구구절절 이야기하거나 글로 써 전달하면 제대로 먹히는 일이 별로 없다. 몇 번 그런 일이 반복되면 누군가에게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된다. 문제의 본질에서 비껴나 내 성격만이 문제인 것처럼 되고 만다. 그들의 기대치를 배반했기 때문이다. 피해를 입은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처럼 취급하는 건 흔한 일이다.


상담사 선생님은 내가 이상한 사람으로 비치지 않으려면, 문제를 제기할 때 '보편성'과 '횟수'를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뒤늦게 생각은 넘치고, 나의 말은 내 생각을 다 담지 못하고, 사람들은 긴 글을 폭력으로 느끼므로 나는 흔히 과민한 사람으로 결론지어지는 것 같다. 


너에게는 왜 그런 일이 자주 생기느냐고, 남자사람친구가 말했다. 자신은 그렇게 피해를 입은 일은 없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처음으로 정말 그런가 생각이 들었다. 나만 유독 자잘한 피해들이 많은 걸까. 하지만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자신만 힘든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을 했고,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보여왔을까 봐 다시 걱정이 됐다. 나는 정말이지 언제나 누구에게나 힘든 사람으로 비치고 싶지 않지만, 내 일상과 마음이 그러하다면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객관적으로는 추측할 수 있는 답이 있다. 여자, 특히 비혼 여성인 것, ADHD가 있는 것, 가족 문제가 있는 것, 그래서 가스라이팅에 취약한 것. 이런 모든 요소들이 계속 원인의 일부가 된다.


이반지하는 고통에 의미가 없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왜 이런 일들이 나에게 생기는가, 라고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과정이 내 안에 고인 부정적인 무의식을 해소하고 내 삶의 한계를 뛰어넘게 하려는, 계속되는 어떤 작용인 것 같다는 느낌이 요즘은 든다. 불교에서는 카르마라고 하는 것.


그렇게 생각하는  그래도 나를 나아가게 한다. 적어도 제자리에서 숨을 고르게 한다. 때로는 남에게 닥친 큰 불행과 비교하면서, 그의 불행에 마음아파하는 것과 별개로, 애써 저렴한 위안을 얻는다. 


적당한 방법을 머릿속으로 연습하고 적당한 때를 기다리며 화를 곱씹는 일. 올해 들어서 계속 그런 나날이 반복되는 것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그 모든 걸 뛰어넘지 못해도 나는 하루를 살고 있을 것이다. 삶에 대해 같은 생각을 반복하고 반복하다 어느 날 조금은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언제나 그랬듯 그 와중의 소소한 다행과 행복에 집중하려 애쓰면서.


피해와 싸우고 있다. 이게 운명이라는 걸 받아들이면서도 내 길을 찾고 있다. 그래서 나는 피해자만은 아니다. 나는 개척하고 있다. 제자리에서 숨을 고르는 것. 버텨보는 것. 그것도 개척자의 일이다. 그렇게 믿는 것은 진짜다. 그런 믿음이 피해의식에서도 피해에서도 점차 벗어나게 해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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