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피해와 불행이 반복되는가 하는 의문에 답을 찾던 중 <불행 중독>이라는 책을 만났습니다. 이 책의 전제는 이렇습니다. '중요한 사회적 변화나 억압이 없는 상태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이유는 내적 불행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인 피버 부부(마사 하이네만 피퍼,윌리엄 J. 피퍼)가 오랜 상담 경력을 통해 내담자들의 사례를 정리한 내용입니다.
책을 요약해 봅니다.
내적 불행의 시작
역설적이게도 내적 불행은 즐거움과 행복을 추구하는 긍정적이고 선천적인 소망에서 시작됩니다. 어린 시절 체벌당하거나, 인정받지 못하거나, 무시당하거나, 지나친 기대를 받으며 자라면 스스로를 위로하고자 익숙한 불행을 만들어 내어 왜곡된 행복을 추구하게 됩니다.
자세히 말하면, 아이들은 부모를 자신을 돌봐주는 완벽한 존재, 자기에게 가장 좋은 것만 주고자 하는 사람들이라 믿고, 자신이 위로받지 못할 때도 부모가 이상적인 사랑을 제공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비록 화가 나고 슬프더라도 여전히 부모가 하는 것은 뭐든 옳고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모가 잘못된 양육을 하는 경우 아이들은 자신이 느끼는 불행이 사랑과 동등하다고 여기고, 불행과 행복을 혼동하여 스스로 그 불행을 다시 만들어내면서 행복해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생각이 여러 차례 반복되면서 아이들은 오히려 이 불행에 안정감을 느끼고, 그것이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자기 가치감으로 굳어집니다. 자신도 모르게 불행할 때 행복을 느끼는 성인으로 자라납니다. 행복에 대해 잘못 학습한 이들은 좋은 기분을 느끼려고, 실의에 빠진 자신을 위로하려고, 또는 즐거움에 대한 거부 반응으로 불쾌한 감정에 의지합니다.
이러한 감정에는 자신의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내적 불행에 처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도덕적으로 약하거나 의지가 없는 사람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느끼는 혼란을 알아챌 방법이 없고, 자라나면서 스스로 이 사실을 발견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내적 불행은 의도적인 선택이 아닙니다.
내적 불행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내적 불행은 1) 자존감 상실 2) 고통스러운 경험 추구 3) 의도적 실패 4) 음주, 성공욕, 성욕 등의 욕구 조절 불가, 이렇게 네 가지 방식을 통해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책에 따르면 자주 불안하고 스스로 무능하다는 느낌이 들어 고통스러운 경우, 어릴 때 지나친 기대를 받고 자랐을 가능성이 큽니다. 완벽주의는 내적 불행의 한 방법입니다. 자신이 완벽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마치 도덕적으로 옳은 것처럼 포장돼 나타나므로 정복하기가 특히 어렵습니다. (의도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자신의 노력이 충분한 경우가 언제인지 친구, 연인, 동료에게 물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대놓고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지 않을 때도 부담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부모가 심하게 우울하거나 여러 이유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아이들은 부모에게 정서적 버팀목이 되거나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고 합니다. 자신의 나이를 넘어서는 행동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 일방적인 사랑이 요구되는 관계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친구나 연인을 돕는 데 완전히 헌신하며 '구원자' 역할을 하지만 그 관계에서 상대에게 받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은 의식하지 않습니다. 구원자 역할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희생할 때의 고통과 진정한 사랑에서 비롯되는 행복을 혼동하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이 같은 관계 속에서 자신이 옳은 행동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끊임없이 아이 주변을 맴돌며 방향을 지시하는 부모에게 양육된 경우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학습하는 것을 어려워하게 되며 자신의 노력은 언제나 충분치 않다고 느끼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의사결정에 어려움을 겪는 어른으로 자라거나 정반대로 타인의 조언은 무엇도 수용하지 못하는 어른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어려서 체벌을 많이 받은 아이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서 타인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을 배우지 못합니다.
엄격한 기준에 맞추어 자란 성인들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자존감 회복을 위해 자신과 타인을 거칠게 대하게 됩니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종종 자신과 타인의 화를 돋우는 행동을 저지른다면 그것을 통해 스스로를 사랑받는 존재,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끼려 하는 것입니다. 사소한 문제로 상대방에게 자극적인 말을 해서 다툼이나 부정적 감정을 일으키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사랑에 빠지는 즐거움은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리지만 시간이 흘러 고통이 다시 고개를 들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관계를 비난합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연인관계가 한 사람의 고통스러운 감정에 대한 중독을 완전히 치료해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특히 내적 불행은 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는 소망 뒤에 숨어 있다가 갈등을 줄이려고 최선을 다하는 순간에 오히려 훨씬 더 심각한 갈등을 일으킵니다. 내적 불행은 관계 속에서 갈등과 거리감을 만들어내도록 항상 유혹하기 때문에 짜증이 치솟는 순간마다 현명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어떤 말로 나의 불쾌함을 표현할지 주의를 기울여 단어를 선택하고 지혜롭게 전달하거나, 문제 해결에 시간을 더 두거나 그냥 넘어가 준다면 두 사람의 친밀감과 즐거움은 유지될 것입니다.
(상대방을 짜증나게 만들 일을 저지르려는 욕구가 들 때마다 자문하기
-내가 이런 행동을 하려는 이유가 뭐지? 혹시 관계가 원만하게 유지되어 왔으니 내적 불행이 갈등을 일으키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까?
-상대방이 화를 내면 우리 관계가 훼손될 텐데 굳이 지금 이 사람이 싫어하는 행동을 할 이유가 있을까?
- 꼭 불평을 해야 한다면 갈등의 위험을 줄이고 긍정적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다른 경우에 할 수 있지 않을까?
- 우리가 크게 싸우지 않고 이 문제를 해결하거나 최소화할 방법은 없을까?)
고통을 얻는 한 방법으로 자신의 몸을 혹사하는 성인도 많습니다. 건강에 좋지 못한 음식을 먹거나 너무 많이 먹는 등의 경우입니다. 먹는 행위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얻을 수 없는 위안처럼 느껴져 더욱 멈추기가 힘듭니다. 위험한 스포츠를 하거나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는 등 '극한'의 삶을 사는 경우도 잘못된 행복에 중독된 경우일 수 있습니다. 의사가 아무리 조언해도 사람들은 식이요법과 운동을 좋아하지 않으며,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이나 정적인 상태를 갈망하는데, 저자는 이 현상의 실체도 내적 불행이라고 말합니다.
직장에서는 자신의 장점보다 약점을 드러내는 직장을 선택하는 경우, 옳은 직장을 선택하더라도 자꾸만 엉뚱한 일을 택하여 붙잡고 있는 경우, 일이 삶을 온통 지배하도록 놔두는 경우, 일을 제대로 완수하거나 제시간에 마치지 못하는 경우, 자신의 노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지 못하거나 주어진 보상도 챙기지 못하는 경우, 위험한 작업 환경에서 고통받으며 오랫동안 일하는 경우, 동료나 상사의 성격적 문제를 개인적으로 받아들여서 비참해하는 경우, 도움받는 것을 고통스러워 하는 경우 등이 있습니다. 내적 불행이 그 모습을 숨긴 채 일, 동료, 상사가 문제라고 확신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때로는 너무 쉬운 일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는 확신 때문에 성공의 가능성이 보이면 혐오 반응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자기가 가진 재능이 필요한 직업을 밀어내게 하고, 자신에게 없는 능력을 요하는 일을 선택하게 유도하는 것도 내적 불행입니다. 내적 불행은 실수를 저지르게 만들어서 스스로를 훌륭하다고 생각지 못하게 하고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을 저해할 때도 있습니다.
내적 불행을 치유하기 가장 힘든 경우는 바로 고통스러운 감정에 중독된 경우입니다. 이 감정은 자신이 선택한 게 아니라 누군가 부과했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자신이 그 감정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잘 믿지 못합니다.
내적 불행에서 벗어나기
감정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나쁜 기분이 아닌 좋은 기분을 선택하는 힘 역시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고 책은 말합니다. 자신이 느끼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올바른 관점에서 조절할 수 있게 되면 자신이 특정 상황에서 위안을 느끼려고 그 감정에 의지한다는 사실도 자각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 느낌들은 점점 설득력을 잃어서 결과적으로 이전처럼 나를 압도하지 않게 됩니다.
고통스러운 감정을 각각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게 되면 회복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때 고통스러운 기분으로 힘들 수 있지만, 다른 자아가 제 기능을 하여 고통스러운 기분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이전처럼 우울, 불안, 짜증이 압도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경미한 두통과 같이 곧 지나갈 일, 무시해 버려도 되는 성가신 일이 되고, 언젠가는 그런 고통의 감정이 거의 나타나지도 않게 됩니다.
책은 고통스러운 기분에 빠질 가능성이 큰 상황이 언제인지 알아낸 뒤 그 상황에 대비하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불안으로 인한 고통이 찾아올 때 그 일이 반드시 일어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의식하고, 자신이 특정 상황에서 위안을 느끼려고 그 감정에 의지한다는 사실을 자각합니다. 긍정적인 기분이 언제 부정적으로 바뀌는지 지켜보면 일정한 패턴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으로 불행에 빠지는 것을 다 막지는 못하더라도 감정을 조절할 수 있게 됩니다.
고통스러운 기분에서 자신을 놓아주려면 우선 불필요한 불행과 적절한 불행을 구별해야 합니다. 경험한 것에 비해 지나치게 고통스럽다면 불필요한 불행을 만들어내고 있지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자신이 경험하는 불필요한 불행이 눈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불안, 우울, 산만함, 자기 비판의 '배경 잡음' 같은 형태로 존재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 뒤에 깔린 불편한 느낌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춘다면, 불필요한 불행이 존재하는지 아닌지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부정적 경험을 했을 때 자기비판, 죄책감, 우울, 불안 등 고통스러운 감정에 뒤덮이며 과잉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면 무슨 일이 잘못됐을 때 특별히 경계를 해야 합니다. 불필요한 불행을 예견하고, 일이 잘못될 때 불필요한 불행으로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 익숙하기는 해도 적절한 방법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이 불행이 자신을 덮치지 않게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견이 가능해지는 단계는 결심이 약해질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갑작스러운 감정에 매번 주의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면 고통을 예견하는 일이 번거롭고 능력 밖의 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현실적인 기대를 해야 합니다. 자신이 지금 어린 시절부터 아주 오랫동안 의지해 온 것을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계속 시도한다면 언젠가는 벗어버릴 수 있습니다.
'내적 불행'이라는 개념은 인생을 통틀어 반복되는 불행감을 두루 설명해 줍니다. 읽으면서 지금까지 인정하지 못했던 내면의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게 됐습니다. 분명히 즐거움, 기쁨, 만족감, 행복보다는 우울, 불안, 외로움, 슬픔, 죄책감 등이 저에게 익숙한 감정이기 때문에, 일이 잘못되면 익숙한 감정에 의지해 '위안'을 얻는 습관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돌이켜 보니 긍정적인 감정에만 푹 빠져도 좋을 때에 오히려 반사적으로 불안이 올라와 부정적인 감정을 소환하는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도 많았습니다(행복 혐오 반응).
일이나 관계, 소통이 잘못되었을 때 느낄 만한 '자연스러운' 부정적 감정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더해져 감정을 증폭시키는 것은 스스로 억눌러온 과거의 감정(비슷한 경험에서 파생되어 넓어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요즘 하던 중이었습니다. 마침 이 책에서 같은 부분을 '불필요한 불행'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어서 반가웠습니다.
이 책에서는 쓰이지 않은 용어이지만, 어린 시절의 불행을 행복과 혼동하여 은연 중에 '자학'적인 선택을 하고 '피학적 욕구'를 충족하는 식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이해가 됩니다. 저는 청소년기부터 높은 곳을 좋아했고, 추운 날 밖에 서서 칼바람을 맞으며 만족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대학 때에도 패러글라이딩 동아리에 들어가 활동하며 무서움을 전혀 못 느꼈고 움직이는 차 위에 올라타 있는 등 위험한 모험을 즐겼습니다.
이것을 ADHD의 자극 추구 성향과 나누어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마음에는 분명 스스로를 체벌하려는 충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쉽게 잘할 수 있는 일보다 재능이 없는 분야의 일을 무리하게 하면서 오랫동안 벗어나지 못한 것, 늘 급여에 비해 훨씬 과한 업무를 하면서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상사의 과한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 것에도 '참아주는 역할'을 편안하게 느끼고 있었던 무의식이 작용했다고 느낍니다. 고통스럽게 만들지 않은 결과물은 어쩐지 떳떳하지 못하게 느끼고, 반드시 힘든 과정을 거쳐서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완전히 납득하지 못한 부분도 있습니다. '실수'와 의도했다고 볼 수 없는 실패들까지 정말로 내적 불행의 작용일까. 개인적으로 여기에는 그런 부분도,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의식의 힘은 방대하고 강력합니다. 물론 ADHD를 가지고 있어서 저지르는 실수가 많지만, 어떤 실수는 부정적 무의식의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다음 책 소개에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구도 힘들고 싶어서 힘들어하지는 않습니다. 이 책은 내적 불행으로 느끼는 고통스러운 감정은 은밀하게 의도된 것이지만, 내적 불행 자체는 의도적인 선택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내적 불행은 스스로 상황을 판단하고 감정을 선택할 수 없던 어린 시절에 몸에 익힌 행복의 방식입니다. 내적 불행을 안고 사는 성인은 나름대로 행복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온 것입니다.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내적 불행이 무엇인지 규명하고 회복하기에 결코 늦지 않았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저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소유했던 선천적인 기쁨과 낙관주의가 내적 불행 때문에 사라지는 일은 절대로 없다는 점을 강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