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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보살과 민바람 Jul 18. 2023

자폐와 ADHD를 가진 과학자의 인생 TIP: 의사결정

 카밀라 팡,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자폐스펙트럼장애를 가졌다는 것은 내가 세상을 다르게, 편견 없이 본다는 뜻이었다. 불안과 ADHD는 내가 '스카이 콩콩'을 타듯 지루함과 강력한 집중 상태를 넘나들면서 빠르게 정로를 처리하며, 내가 처한 각각의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온갖 결과를 머릿속으로 그려보게 해 주었다. 나의 신경다양성은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와 관련된 질문을 수없이 만들어냈지만 동시에 그 질문들에 답할 능력도 주었다. (13쪽)

- 들어가는 말 '내가 이 행성에 온 이유'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사과하지 말 것>. 제목을 본 순간 통하는 부분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우아한 또라이로 살겠습니다>에 이런 문장을 썼습니다. "어느새 나는 내 말과 행동을 미안해하는 것이 아니라 내 존재 자체를 미안해하고 있었다" 나의 존재가 잘못이라 느끼는 것. 꼭 소수자성을 가지지 않은 사람도 공감할 만한 점이지만 같은 워딩에 대해 많이 생각해 왔던 터라 반가움이 컸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저자는 여덟살 때 자폐스펙트럼장애를, 스물여성 살에 ADHD를 진단받은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에세이는 아닙니다. 이 책에는 '삶, 사랑, 관계에 닿기 위한 자폐인 과학자의 인간 탐구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저자인 카밀라 팡은 생물화학 박사 과정을 마치고 생물화학, 물리학, 화학, 통계학, 역학, 광학, 컴퓨터과학, 정보과학 드 광범위한 과학기술을 활용하는 생물정보학 분야에서 과학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과학책인 것도 아닙니다. 카밀라 팡은 어릴 적부터 이해할 수 없는 사람 사이의 문제들을 과학적인 개념과의 공통점을 찾아내 이해하려 노력하곤 했습니다. 이 책은 삶에서 겪는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는 데 필요한 영감을 주기 위해 과학적 개념을 활용합니다.


사실 이 책에서 과학적인 설명 부분을 제가 충분히 이해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머릿속에 이과 세포가 희박한 저도 챕터마다 저자가 말하려는 게 뭔지 알 수 있었고, 매번 '아!'하는 깨우침과 은은한 감동을 얻었습니다. 심리학을 아무리 읽어도 스스로 넘어서기 어렵던 부분을 뛰어넘는 기분이 든 것은 과학 현상으로 설명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자연 현상에는 옳고 그름이 없으니까요. 세상을 이루는 미세한 요소들이 어떤 가치 판단도 없이 자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 방식. 그걸 살펴보면서 마음에 움켜쥔 군힘을 빼고 마음 현상도 중립적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치 "이렇게 하면 되지. 그 뭐 별 거라구."하는 말이 어떤 완력도 없이 마음에 슥 스며든 느낌입니다. 저는 '어라?'하면서 그 상황을 지켜보고요.


책에서 소개하는 인생 꿀팁은 11가지입니다.


1. 상자 밖에서 생각하는 법

2. 자신의 기묘한 부분을 끌어안는 법

3. 완벽함에 집착하지 않는 법

4. 두려움 다루는 법

5. 조화를 이루는 법

6. 대중에 휩쓸리지 않는 법

7. 목표를 이루는 법

8. 공감하는 법

9.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법

10. 실수에서 배우는 법

11. 인간처럼 행동하는 법


장 제목마다 관심이 갔는데, 과연 장마다 얻은 것이 있어 이 책은 여러 번에 나누어 장마다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차례의 순서를 지켜 오늘은 '상자 밖에서 생각하는 법'입니다.


저는 '결정장애'가 좀 있습니다. 이 말이 장애를 희화화하는 차별적인 말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지금 제가 말하는 맥락은 실제로 장애 수준으로 불편을 주는 경우입니다. 저는 인생의 중요한 결정들을 충동적이고 파괴적인 방식으로 했고, 또는 다른 사람의 의견에 쉽게 기댄 뒤 후회했습니다. 반대로 모임에 나갈지 말지 하는 작은 결정들에는 지나치게 고민하며 에너지를 소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수시로 생각과 감정이 바뀌고 후회도 많기 때문에 계속 번복하면서 민폐를 끼치기도 합니다(지금은 이런 상황을 줄이기 위해 되도록 몇 회 연속으로 묶이지 않은 1회적인 행사나 소비 활동만 합니다).


이 책의 첫 장에서는 의사결정의 방법으로 '상자 속에서 생각하기 방식' 대신 '나무처럼 생각하기 방식'을 제안합니다.


우리는 모두 모순과 불가측성, 무작위성을 헤쳐나가는데, 이들은 삶을 현실로 만드는 요소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종종 둘 이상의 선택지 중에서 선택해야 하며, 이때 고려해야 할 증거들이 정돈되어 파일로 쌓여있지도 않다. 깔끔한 상자 모서리는 든든하지만 환상일 뿐이다. 현실의 그 무엇도 그렇게 딱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상자는 고정되어 있고 휘어지지도 않지만, 우리의 삶은 역동적이며 계속 변한다. (31쪽)



제가 선택을 생각하는 방식은 양자택일적이었고, 순간의 감정에 휘둘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3의 선택지나 대안이 될 수 있는 경우들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극단적인 방향으로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결정 후의 상황들을 통제할 수 없는 막연한 것으로 느꼈기 때문에 더욱 선택이 망설여지고 어려웠습니다. 전형적으로 '상자 방식'의 의사결정을 해왔던 것 같습니다.


'나무 방식'은 복잡한 현실을 수용합니다. '상자가 형태 때문에 매우 일시적인 연관성으로 한계가 분명한 반면, 나무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 기억에서 저 기억으로, 이 결정에서 저 결정으로 가지를 뻗을' 수 있고, '서로 다른 주장과 맥락을 넘나들' 수 있어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하면서도 '삶의 전체 줄거리를 파악'할 수 있는 도구가 됩니다. '얽히고 설킨 것들이 사라지길 바라며 현실을 매끄럽게 다듬'기를 바라는 대신, 무질서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반영해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는 리스크를 피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카밀라 팡은 불안장애, 강박으로 인한 멜트다운을 피하기 위해 모든 상황을 가정해 나무를 그렸다


이와 반대로 상자 속에서 생각하는 방식은 대개 감정의 조합이나 배짱으로 의사를 결정한다. 감정이나 배짱은 둘 다 신뢰할 수 없다. 내 말을 믿어도 좋다. 감정에 휘둘려 즉흥적인 의사 결정을 내릴 때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다면 ADHD를 직접 겪어보는 것이 최고다. 좋은 시간 되시길.

좋은 의사 결정은 보통 확실성을 가정하는 데서 나오지 않으며 혼돈, 다른 말로는 증거라는 것에서 나온다. 당신은 결론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바닥에서 시작해 결론을 향해 위로 쌓아 올려야한다. 그렇게 하려면 당신은 나무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38쪽)


제가 이해한 대로 적어보면, 나무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 상황의 여러 요소, 결정 이후에 예측되는 결과들을 자잘하게 나누어 생각할 것

- 지금까지 쌓아온 데이터를 분류해서 생각하고 근거로 활용할 것

-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것들에서 정말 중요한 것만 분리할 것 (주요 결정 기준: 나에게 지금이나 앞으로 어떤 기분을 느끼게 할 것인가)

- 가장 좋아보이는 나뭇가지 하나를 따라가되, 목표를 이루기 전에 다른 가지들을 잘라버리지 말 것

- 오류가 생기면 뒤로 돌아가서 다른 가지로 넘어가는 방법을 탐색할 것


나무처럼 생각하기는 우리 주변의 복잡성을 반영하며 동시에 우리가 회복하도록 돕기 때문에 중요하다. 상자가 밟히고 부서져서 영원히 사라진 후에도 의사결정나무는 수백 년을 버틴 굳건한 참나무처럼 그 어떤 날씨에도 맞설 수 있다. (47쪽)



저는 지금도 답이 없는 고민을 몇 가지 하고 있습니다. 몇 년째 계속된 고민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고민이 그렇게 계속된 건 아무리 생각해도 양립할 수 없는 두 선택지를 놓고 하는 고민이었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상자 속에 갇혀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상황이 그렇기도 했지만, '나무 방식'으로 생각하면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정적 요소와 상황적 요소, 스스로 통제가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나누면서 여러 가지를 그려보면 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현실이 실제로는 언제나 이도저도 아닌, 제3이나 4의 방향으로 흘러갈 때가 많았던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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