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만의 것이 있으니, 잊지 말고요

- 나를 나답게 하는 한마디(브런치 X EBS 나도작가다 공모전 당선작)

by 묘보살과 민바람



말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화장실에 창문이 있는 집에 살게 되면서 습관이 하나 생겼다. 샤워하러 들어갈 때 불을 켜지 않는 것이다. 대신 수건걸이에 걸쳐둔 작은 수면등을 눌러 켠다. 싸구려 건전지를 넣은 탓인지 반밖에는 힘을 내지 못하는 빛이다.


그 빛은 때때로 뻑뻑한 눈을 깜빡이는 것처럼 한 번씩 어둑해지고 또 되돌아간다. 그런 어설픔이 슬그머니 마음을 내려놓게 한다. 어둠과 희끄무레한 밝음이 뒤섞인 공기 속에서 밖을 내다본다. 형광등빛에 익숙해져 있던 눈이 서서히 창밖의 밝기와 조도를 맞춘다. 이제 밤하늘은 검지 않다. 깊고 아득하게 푸르다. 때로는 어딘가 아쉽게 붉기도 하고, 보랏빛이 감돌기도 한다. 떠가는 구름도 나무도 낮과는 다른 무게의 빛깔을 낸다. 어딘지 날것의 냄새가 난다.


나는 그것이 원래의 색은 아닐까 생각한다. 낱낱이 들추어내려 하는 햇빛 아래서는 낼 수 없는 색. 옷과 함께 사회적인 얼굴과 생각들을 홀가분히 벗어놓고 혼자서 가만히 들여다보는 나의 빛깔.


말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자랐다. 단순히 말해 말을 하는 것이 힘들었다. 입을 열어서 혀를 놀리고 소리를 밀어보내는 일이 나에게는 혼자서 큰 수레를 밀기라도 하는 것처럼 힘에 부쳤다. 자기 전에는 눈을 감고 말이 없는 세상을 상상했다. 내 공상 속에서 사람들은 영혼에서 나오는 빛으로 소통했고 오해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런데 남들은 어떻게 저렇게 잘도 말을 하며 사는 거지? 심지어 누가 시키지도 않은 말을 나서서 하며 즐거워하다니. 이상하고 난처했다. 세상이 나만 빼고 그렇게 돌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니, 이거 어떡하지. 그런 생각을 하며 묘하게 외로웠다.


쓰고 있는 나는 솔직하고 용감하다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 사람인 것 같아.” 그 말을 들었을 때 놀란 건 그런 이유였다. 가끔씩 이야기를 시작하면 주머니 없는 가방에서 물건을 꺼내듯 이것저것 한껏 끌어내 이야기하는 나에게, 헤어진 애인이 했던 말이다. 그는 나름대로 들어주려 애쓰다가도 지루함을 어쩔 수 없었던지 내가 혼자서 주절거린다고 했다. 원망스럽기도 했지만 미안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더 컸다. 나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남에게 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담고 산다는 것, 그래서 가끔 편한 상대가 있으면 내게만 중요한 이야기들을 주절주절 늘어놓는다는 것을 말이다.


언제나 조용하고 차분한 사람, 얌전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들어온 나는 뭘까. 사실 그것은 나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 또 자신의 기대에 민감한 내가 적당히 문제없이 지내기 위해 만들어낸 모습이었다. 속에 담은 이야기는 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해야 하는 말을 하며 사는 거라고 여겼던 것 같다.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해낼 강단이 없고, 듣는 사람들이 자연스레 귀 기울이게 할 만한 언변도 없으니 말에 대해서는 지레 포기해 버린 거다.


그때 나는 내가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이유를 처음으로 정면에서 보았다. 나는 표현하면서 살고 싶은 거구나. 소심함이라면 어디서 지지 않을 나지만 크고 작은 부당한 일들을 내가 바꾸지 못하는 데에 조용히 분노하곤 한다. 이상주의적이게도 세상이 내 맘 같지 않은 것에 끝없이 슬픔을 느낀다. 평온하게 웃는 사람들의 반대편에 치열하게 힘든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 인생에 사람들이 바라는 것처럼 행복만 가득할 수는 없다는 그런 당연한 진리에 어린애처럼 암담해하기도 한다.


남보다 예민하다는 것은 상당히 거추장스러운 일이다. 사소해 보이는 일에 정성을 쏟고, 남에게는 별것 아닌 일에 시무룩해지거나 마음 한 구석이 뾰족해지고. 맘을 편하게 먹어 봐, 너무 잘하려고 하니까 그래, 그런 식의 말을 자주 듣다 보면 내가 틀린 것이고 못난 것이라는 생각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습관처럼 감정을 주워 담고 억누르는 나는 아직도 세상에 없는 세상의 모습을 공상하던 어릴 적 모습 그대로 조금도 어른이 되지 않은 기분에 든다.


그렇지 뭐. 그게 어쩔 수 없는 나다. 혼자만 볼 글을 쓰면서 자유로움을 느끼던 나. 그래도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솔직하고 용감하다. 다른 일을 할 때는 걸림돌이고 치부였던 예민함도 글을 쓸 때는 재료가 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언젠가 단 한 사람이라도 읽어주는 글을 쓴다면 그것만 해도 나의 글은, 나는 쓸모가 있는 거라는 생각을 곱씹었다. 어딘가에 꼭 나와 같은 사람이 있지 않을까. 자의식이 가득한 글이라도 그 사람에게는 둘도 없는 위안과 용기가 될 수도 있겠지. 보이지 않는 연대를 하는 거라는 거창한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런 기대가 자신에 대한 의심으로 모든 의욕을 잃을 때마다 하루 더 나아가게 해 주었다.


본인만의 것이 있으니, 잊지 말고요


전주의 한국어학당에서 일하고 있을 때, 서울 한 대학에 문예창작 과정을 들으러 다녔다. 국문과를 나왔지만 문예창작 수업은 많지 않았고, 졸업 후 문예창작 대학원에 가지 않은 것이 못내 아쉬웠다. 더는 미룰 수 없다,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글을 쓰는 사람들 속에서 글을 쓰는 얘기만 듣고, 쓰는 데에 집중해 보자. 그런 생각으로 일주일에 두 번씩 서울에 올라다녔다.


한국어강의가 끝나면 곧바로 버스를 타고 가서 저녁 수업을 들었고, 또 바로 기차를 타고 집에 도착하면 새벽 3시였다. 버스와 기차 안에서는 노트북을 펴고 과제와 내 강의 준비를 했다. 시간이 빠듯하고 피곤했지만 어느 때보다도 살아있는 느낌이 차 올랐다. 그래, 역시 이거구나. 내 마음이 시키는 일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절실히 느꼈다. 하지만 금전적으로도 녹록한 일은 아니라 1년 과정 중 반밖에 하지 못하고 10년이 다 되어가는 현재까지 장기휴학 중이다.


그 시간 동안 내 실력이 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그때 들은 한마디가 지금까지 내가 시를 놓지 않는 힘이 되고 있다. '본인만이 쓸 수 있는 것이 분명히 있으니, 잊지 말고요.' 시 쓰기를 과제로 내고 조언해 주시던 교수님이 메일에 적어주신 말씀이었다. 내 시에서 나만의 색깔이 보인다는, 어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읽는 순간 그 말이 가슴 속에 무겁고 뜨겁게 가라앉았다. 그거면 되는 거 아닐까. 나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 나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개성이 존재한다면, 계속 쓸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고 지지해주지 않더라도, 이 넓은 지구에 내 빛깔을 알아주는 사람이 한 명은 분명히 있으니까.


나만의 색이 있다는 말은, 누구보다 앞서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말 같다. 내 모습 그대로 편안히 있으면 된다는, 남과 같지 않다는 것이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일이라는 따뜻한 인정이다. 그리고 이어서 적혀 있던 또 한마디, '살다가 힘든 일이 생기면 연락하세요.' 잠시 스쳐지나가는 학생일 뿐인 나에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시인의 맑은 마음이 나를 깊게 울렸다. 저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누군가를 깊게 울리는 한 마디를 남길 수 있을까. 마음에 남을 잘 담아내지 못하는 나도 시를 통해서는 가능할까.


아무것도 요구받지 않고
나도 더 바랄 것 없이


어릴 때부터 글을 쓰고 싶었다는 말처럼 촌스러운 말도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앞서 밝혔듯 나는 세련되게 말하는 데에 영 재능이 없다. 왜 오랫동안 해 온 일을 그만두었는지 얘기할 일이 있을 때마다 불안에 떨며 거듭 다짐한다. 이 말만은 하지 말자. 이 말만은…. 그리고 마침내 운을 뗀다. “그게 실은 제가 어렸을 때부터…” ‘아, 씨.’ 속으로 내 머리통을 세차게 때린다. 그 뒤의 전개도 늘 같다. 저질러놓은 이야기를 마지못해 이어가는데, 겸연쩍게 다른 데를 보는가 하면 친구랑 싸운 얘기를 하는 소녀처럼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딴청을 곁들인다.


나에게는 조심스럽고 거대한 그 일이 잠시 마음이 동해서 해 보는 말처럼 들리는 것이 싫기도 하고, 한편 너무 진지한 분위기가 되어버릴까 봐 두렵기도 한 탓이다. 그냥 한번 물어봤는데 갑자기 심각한 얼굴로 인생 얘기를 다 들고 나온다면 얼마나 부담스럽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일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편에 싣기로 한다.) 다시 혼자가 되면 내가 했던 말을 돌이켜본다. 참 빤하고 멋없다. 허탈한 동시에 마음이 놓인다. 왜 마음이 놓이는가 하면, 그렇게 틀에 박힌 채로밖에 말이 나오지 않는 일을 내가 하려고 하니까. 그만큼 어쩔 수 없이 하고 싶은 일을 이번에는 제대로 선택했다는 뜻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는 불을 끄고 샤워를 한다. 그리고 나는 글을 쓴다. 발가벗은 나로 존재하는 순간에 백 퍼센트로 살아있다고 느낀다. 내가 같이 어두워질 때만 들여다볼 수 있는 세상의 색을 보고 있으면, 꼭 내가 그 숨겨진 이야기를 몰래 읽어내고 있는 유일한 사람인 것만 같다. 그리고 세상이 나의 숨겨놓은 빛깔을 읽어주는 것만 같다. 공허하지 않고 슬프지 않다. 아무것도 요구받지 않고 나도 더 이상 바랄 것 없이, 모든 것을 가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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