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의 비행, 진짜 비행, 지금의 비행

방랑자의 몸부림치는 영혼

by 묘보살과 민바람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좀머 씨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좋아했다. 주인공 '나'가 너무 나 같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날 수 있다고 믿는 아이. 높은 나무에 기어올라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아이. 몇 년 전, 이 책의 첫 장을 다시 읽어보다가 깜짝 놀랐다.


내가 최근에 겪고 있는 혼란스러움이나 집중력 부족도 따지고 보면 전나무에서 떨어질 때 생긴 후유증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나는 어떠한 주제에 계속 매달린다거나, 어떠한 분명한 생각을 간단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느끼고 있으며, 무슨 이야기를 해야만 할 때는 이야기의 실마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를 쓰며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된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엉망진창이 되어서 마지막에 가서는 내가 무슨 이야기를 시작했는지도 모를 정도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좀머 씨 이야기>, 11쪽)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 <좀머씨 이야기> 속 주인공은 자신이 날 수 있다고 믿는다.


헉, 이거 완전히 ADHD 얘기잖아. 내 일기장에 있던 글이라 해도 믿겠다. 나는 그래서 이 책이 좋았나? 자극적이고 위험한 것을 추구하는 성향에 주의력 부족 증상까지 가진 이 아이가 남 같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날아다니는 꿈을 꾸준히 꿨다. 몸짓으로 각도와 속도를 미세하게 조절하며 건물을 헤치고 바람을 맞는 감각. 이게 현실이 아니란 게 믿기지 않았다. 사실은, 날 수 있다고 믿었다. 인간은 날 수 없지만, 알고 보면 나만은 날 수 있는 게 아닐까. 어떤 조건과 상황에서는 그 능력이 발현되는 게 아닐까.


하늘을 보고 있는 시간이 좋아진 건 초등학교 5-6학년 때였을 것이다. 막힘 없는 공간감이 좋았다. 바뀌어 가는 구름의 모양을 지켜보는 것도 좋았다. 그 구름 너머에 다른 세계 같은 건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막연히 뭔가 있기를 바랐다. 멍하니 보고 있으면 설렜다. 설렜다는 말로 담아낼 수 없는 아련함과 벅차오름이 있었다. 하늘은 내가 속하고 싶은 세계였다. 무엇도 나를 막는 것이 없는 공간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억 속에 여섯 살 때부터 남아있는 부모님의 심한 다툼은 내가 자라며 내내 계속되었다. 집안은 늘 시끄럽거나 침울했다. 남과 다른 성적 지향을 깨달은 시기도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소수 종교를 믿고 있는 아버지는 모든 이야기를 음과 양, 자연의 섭리에 대한 이야기로 이끌어갔고, 가족 중 유일하게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나를 신뢰했다. 아버지에게서 느끼는 애정은 달콤했지만 그만큼 자신을 부정당하는 공기 같은 통증에 길들여졌다. 나답게 살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싹텄고 ‘자유’라는 낱말을 자주 떠올리게 되었다.

더 넓은 하늘을 볼 수 있는 게 좋아 옥상을 찾아다녔다. 건물은 높을수록 좋았다. 5층짜리 우리 학교 옥상에 누워서 하늘을 보고, 방과 후에는 친구네 21층짜리 아파트에 가서 성큼 가까워진 하늘을 보았다. 숨을 크게 쉬면서 하늘을 몸속으로 빨아들일 때는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중학교 때 살던 4층 아파트는 옥상 문이 잠겨 있었다. 천장에 붙어 있어 위로 열리는 그 문을 열려고 무진 애를 썼다. 벽에 붙은 사다리에 매달려서 머리로 문을 밀어 올렸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목이 휠 정도로 문을 들이받는 일을 날마다 했었다. 그 문은 나에게 어떤 상징이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현실을 떠나 새로운 세계로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돌아다니고 싶다는 욕구를 인지하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다. 바람에 심하게 이끌렸다. 겨울에는 칼바람이 살갗을 훑고 지나는 느낌이 좋아서 골목 어귀에 한참 서 있었다. 학교에서는 늘 공상을 했다. 조용히 앉아 있었지만 선생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틈나는 대로 창밖을 쳐다보았다. 특히 바람이 세게 부는 날이면 바람 소리가 밖으로 나오라고 불러대는 것 같아서 가야 할 곳이 있는 사람처럼 조급했다. 아, 빨리 나가야 하는데. 이렇게 적으면 오글거릴지 모르지만, 당시 나는 그런 바람 소리가, 비가 오기 전이나 비 온 뒤 젖은 바람의 느낌이 내가 가야 할 곳에서 전해오는 부름 같은 것이라고 믿었다. 진짜 그랬다. 그건 하늘을 볼 때 느끼는 벅차오름과 비슷하면서 사무치게 가슴 시린 느낌도 있었다.


어떤 날 밤은 일부러 스쿨버스를 타지 않았다. 시 외곽에 있는 학교에서 우리 집까지는 걸을 만한 인도가 없었는데 그래서 더 좋았다. 1시간 넘게 논두렁을 지나고 도로를 걸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려 걸어오기도 했다. 공허에 등 떠밀려 공허 위를 걸어 공허로 가는 기분. 그러면서도 내 힘으로 움직이는 느낌은 숨통을 틔워주었다.


용돈이 없어 몰래 시작한 전단지 아르바이트는 방랑 욕구를 어느 정도 달래 주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꼭대기층으로 올라가서 집집마다 전단지를 붙이며 최대한 빠르게 달려 내려왔다. 꼭대기층 계단에서는 자주 전단지로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렸다. 아무것도 적지 않았지만 나와 비슷한 사람이 내 메시지를 알아보고 나를 찾아오는 상상을 했다. 아래로 몸을 던지는 내 모습도 자주 그렸다.


고등학교 3학년의 어느 날, 번지점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찾아보니 성남의 율동공원에 번지점프를 하는 곳이 있었다. 같이 가기로 한 친구는 아파트 14층에서 가방을 던지고 미션 임파서블처럼 극적으로 집에서 빠져나와 동행했다. 태어나 처음으로 시외버스를 타고 서너 시간이 걸려 공원에 도착했다. 번지점프대에 오른 나는 조금의 두려움도 없었다. 자신을 어디론가 내던지고 싶다고 충동질해온 마음이 뒤에서 떠미는 것 같았다. 개구리처럼 퍼얼쩍 뛰라고 해서 개구리처럼 퍼얼쩍 뛰었다. 떨어지는 순간은 아찔했다. 로프의 반동으로 위로 튀어올랐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는 동안은 그저 어지러웠다. 그리고 끝이었다. 싱거웠다.


나는 죽고 싶은 게 아니라 날고 싶은 거였다. 뛰자마자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게 아니라, 종이비행기처럼 얼마 날아가지 못하고 고꾸라지는 게 아니라 바람을 타고 미끄러져 날아가기를 바랐다. 곧 행글라이딩이라는 활공 스포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내 힘으로 기체를 움직여 빠른 속도로 하늘을 날아가는 것. 행글라이딩은 내가 원하던 바로 그것이었다. 행글라이딩 클럽 홈페이지의 흰 구름 배경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른이 되면, 돈을 벌 수 있게만 되면 행글라이딩을 배우고 내 행글라이더를 사야지.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니는 삶을 살아야지.


새내기 대학생이 된 봄, 신입생을 모집하기 위해 늘어선 동아리 천막 사이에서 나는 행글라이더를 발견했다. 활공 스포츠 동아리였다. 꿈을 이룰 방법이 이렇게 금방, 이렇게 쉽게 눈앞에 찾아오다니!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뚜벅뚜벅 걸어가 명단에 이름부터 썼다.


교육을 맡은 띠동갑 선배는 행글라이딩이 패러글라이딩보다 어려우니 패러글라이딩을 잘하면 행글라이딩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나는 창고 같은 동아리방에서 선배에게 이론을 배우고 기초 훈련을 받았다. 낮은 언덕에서 지상 훈련을 하는 기간도 길었다. 나는 운동 신경이 형편없었다. 선 자리에서 몸을 기울이고 팔을 뒤로 들어올려 셀(패러글라이더의 캐노피에서 바람이 들어가 부풀어오르는 칸)에 바람을 넣기만 하면 바로 떠오를 수 있는데, 그걸 못 해서 무거운 기체를 질질 끌고 바람의 저항을 온몸으로 견디며 앞으로만 내달렸다. 마치 직진만 하면 어떻게든 될 것처럼 뇌를 빼고 질주하는 나에게 선배는 ‘야생마’라는 별명을 붙였다. 한 번쯤은 “무식하게 달리기만 하지 말고!”라며 퉁을 줄 법도 한데 웃으면서 설명해 주던 모습밖에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다들 참 다정했고 나는 운이 좋았다.


매일 나오라길래 매일 나갔지만, 매일 연습이 있는 건 아니었다. 어디로 갈 것처럼 하더니 모두가 동방에서 뒹굴거리다 하루가 갈 때도 많았다. 뭐야, 또 속았네. 나는 빨리 훈련과 비행을 해서 실력을 쌓고 싶어 자주 김이 샜지만 또 매번 얌전히 기다렸다. 반쯤 포기한 마음으로 선배들에게 만화책을 빌려다 주거나 동방에서 키우던 토끼랑 놀았다. 이렇다 보니 신입생은 계속 들어왔지만 다들 금방 떨어져 나갔고 결국 새내기는 1년 내내 나 하나뿐, 대부분 예비역 선배들이었다.

자.. 이제 가볼까!! 비행을 하러 간다고 선배가 내뱉는 그 한마디를 기다렸다. 선배가 모는 차를 타는 데 성공하면 속으로 외쳤다. 드으디어! 항상 어디로 얼마나 가는 줄도 모르고 실려 다녔다. 그러다 다리 밑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차박만 하고 돌아오곤 했다. 아, 또 낚였네. 날씨와 풍량에 따라 비행 계획이 틀어지는 일이 많았던 듯한데 그땐 아무도 설명을 해 주지 않았고 나도 묻지 않았다. 이렇게 느리게 가는 동아리였던지라, 동아리가 없어질 때까지 3년 동안 내가 패러글라이더로 한 실제 비행은 일곱 번이었고 행글라이더는 결국 한 번도 타지 못했다.


영문도 모르고 계획도 없이 전국을 돌아다니는 일이 때로는 답답했지만 꽤 즐거웠다. 태안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딱딱하고 갈라진 갯벌을 걸을 때는 태곳적 지구를 걷는 기분이 들었고, 무안 바닷가에서 새벽에 깨어 바라본 검은 수평선 위 불빛은 지금까지 본 어떤 밤바다 풍경보다 아름답게 남아있다. 첫 비행부터 핸들을 놓고 무전기를 잡는 애는 처음 본다며 선배들의 놀림과 놀람을 함께 받았던 전주 경각산의 착륙장, 구름보다 훨씬 높은 곳에서 날고 있는 선배들의 행글라이더를 지켜보며 지역의 경계를 넘는 장거리 비행을 꿈꿨던 영월의 비행장도 기억한다. 혼자 힘으로 방랑을 하기 어려웠던 스무 살의 나는 그저 따라다니는 것만으로 선배들의 애정과 관심을 한 몸에 받으며 방랑 욕구를 충족해 나갈 수 있었다.


처음 패러글라이더를 타고 내 힘으로 하늘을 날았을 때, 미칠 듯한 설렘이나 쾌감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때의 기분은, 말하자면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을 누릴 때의 안정감에 가까웠다. 이륙장에 서서 내가 뛰어들 허공을 볼 때, 긴장은 없었다. 지금 하면 되는 거구나. 진짜로 지금이야. 산을 넘는 바람이 불고 있어서 몇 발자국 달리면서 캐노피를 세우니 바로 셀에 바람이 들어차는 게 느껴졌다. 순식간에 발이 땅에서 떨어졌고 나는 하네스에 엉덩이를 붙여 앉고 핸들을 잡았다. 캐노피와 나를 한 덩어리로 감싸는 부력이 느껴졌다. 오른쪽 위에 묶어놓은 무전기에서 소리가 나 자연스레 오른쪽 핸들을 놓고 무전기를 잡고 대답했다. 그 뒤부터는 선배가 무전기에서 지시해 주는 대로 직진하거나 몸을 기울여 선회했다.


시끄러운 세상은 저 아래에, 저 아주 아래에 있는 흐릿한 평면이었다. 명확하게 보이는 것은 파란 허공. 시야에 나를 막는 것들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 귀로 들이닥치는 다툼도 통제도 없었다. 나는 그냥 나아가면 되었다. 그게 좋았다. 바람은 계속 불고 있었다. 아니, 내가 바람을 지나가고 있었다. 초보라 고도를 높이는 기술이 없었던 나에게 첫 비행은 아주 짧게 느껴졌다. 선배의 안내에 따라 조심스레 전깃줄을 넘으면서 몇 차례 선회해 고도를 낮추고, 핸들을 당겼다가 놓으면서 캐노피에 들어가는 바람을 조절하고, 땅이 아주 가까워졌을 때 다리를 내렸다. 착륙. 선배들이 다가오며 박수를 쳐 주었다.

성과를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곧바로 다음 목표로 시선을 옮기는 나는 감동과 뿌듯함을 듬뿍 느껴볼 요량도 없이 그 순간을 방랑 여정의 하나로 마음속에 담았다. 이제 시작이구나,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돌아보니 그 일은 내 방랑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처음으로 꿈을 이룬 순간이었고 내 힘으로 자유를 누렸다고 실감한 첫 순간이었다. 어려서부터 틈날 때마다 바라보던 하늘을 스스로 노력해 날아본 스무 살의 그 경험은, 꿈은 원하고 노력하면 이룰 수 있는 것이라는 믿음의 근거가 되어주었다.


패러글라이딩 동아리를 한다고 하면 당시에는 다들 신기해했다. 동아리가 사라질 때까지 최선을 다했던 그 시절의 내가 그 후로 나의 오랜 자랑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특별해지고 싶었던 건 아니다. 다만 나다워지고 싶었다.


하늘을 난다는 것. 바람 소리에 응한다는 것. 현실에서 벗어난다는 것. 장애물이 없는 곳으로 간다는 것. 새로운 세계로 뛰어든다는 것. 자유로워진다는 것. 떨어지지 않고 앞으로 날아간다는 것. 내 힘으로 빠르게 이동한다는 것. 경계를 넘는다는 것. 그것이 전혀 두렵지 않았던 건 20대 초반의 패기와 객기 때문도 컸고, ADHD 특유의 충동성과 모험심도 영향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또 하나 내 안에서 더듬어 느끼는 건, 위험해진다는 실감이 나지 않을 만큼 현실에서 느끼는 한계가 당시 내게 일상적인 위협이었다는 점이다. 내가 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을지 모른다는, 강요와 통제 속에 살아갈지 모른다는 불안을 해소하고 싶었고, 사소한 결정들도 부모님의 판단에 좌우되었기에 자기다움을 찾고자 하는 본능이 다른 쪽으로 강해졌던 것 같다.


20년이 흐른 지금 직장인이 되면 행글라이딩을 하며 살겠다는 꿈을 아직 실현하지 못했다. 20대에는 자리를 잡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았고 생각만큼 잘해 내지 못하는 자신을 질책하기에 바빴다. 그 뒤로는 예전에 하나도 걱정되지 않던 것들이 걱정되었다. 비행을 하다 다쳐서 일을 못하면 먹고 살 수 없다거나 주변에 폐가 된다거나 하는 것들. 그렇다고 비행의 꿈을 완전히 접은 건 아니다. 내 행글라이더를 갖는 것까진 어렵겠지만, 우선 돈을 모아 텐덤 비행(능숙한 조종사와 체험자가 함께 하는 비행)을 해 보는 걸 현실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30대가 되고서도 날아다니는 꿈을 자주 꾸었는데, 신기하게도 직장을 그만두고 글을 쓰기 시작한 뒤 4년 동안은 그런 꿈을 거의 꾸지 않았다. 그렇게도 바라던 나다운 삶을 일상 속에서 실현하게 되었기 때문일까. 글에 나 자신을 떳떳이 드러내고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과 이어지며 살아가는 삶. 비행에 대해 그렇게까지 목이 타지 않게 된 것도, 내가 하늘 위에서 잠깐 누리고 사라지는 공간의 자유보다 삶 자체에 녹아들어 있는 정신의 자유를 더 갈망한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어젯밤, 아주 오랜만에 날아다니는 꿈을 꾸었다.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기차에 문제가 있어 기차에서 뛰어내렸는데, 땅으로 처박히는 것이 아니라 언덕을 오르는 바람을 타고 날기 시작했다. 말을 잊을 만큼 아름다운 풍경들 사이를 오래도록 날다가 내리고 싶은 곳에 사뿐히 내렸다. 왠지 이 꿈은 목마름으로 해석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았다. 그보다는 내가 나아가는 방향을 보여주는 것만 같아 한동안 눈을 감고 여운을 음미하게 되는 아침이었다. 그 숲이, 개울이, 다정한 그림 같았지. 바람이 참 부드러웠지.





성인 ADHD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 <우아한 또라이로 살겠습니다>를 추천합니다.

> 첫 화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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