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서울 어느 대학교 앞 카페. 대학 입학 후 다시 만난 절친 A의 말에 나는 당황했다. 우리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같은 곳을 다녔다. 성적은 서로 비슷했지만 나는 집에서 멀지 않은 국립대로 진학했고, A는 '인서울'의 의지를 불태우며 서울에 있는 사립대에 들어갔다.
'대학로'라고 하면 동네 친구들은 우리 지역 거점 대학 앞의 복작복작한 상점가를 생각했다. 고유명사가 아니라 '대학교 앞에 있는 큰 길'이란 뜻으로만 쓰던 말이라 나는 서울에 그런 길이 따로 있는 줄도 몰랐다.
A는 나를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그의 질서 잃은 미간 근육을 보며 생각했다. 혹시 이게 말로만 듣던 '촌티 낸다'는 것인가? 그러고 보면 대학 입학 후 다시 만난 A는 말투도 태도도 전과 달랐다. 주류 세계에 편입했다는 자부심과 '신문물'을 접하며 차오른 고양감도 엿보였다.
벌써 20년 전 얘기지만 당시에도 지역 대학을 '떠나지 못한 자들을 위한 자리'처럼 보는 분위기가 있었다. 겉멋 들었던 중학교 때, 친구들은 놀기는 꼭 예의 그 지역 '대학로'에 가서 놀면서도 "그래도 여기는 안 들어간다"라는 게 말버릇이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 서울에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생활비와 학비를 감당할 형편도 안 되면서 당연히 '인서울'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서울병이 시작된 건 대학 졸업 후였다. 서울 소재 대학원 시험에 떨어져 우리 대학원에 진학은 했는데, 내가 원한 신생 전공이 없었다. 학문 흐름과 정보, 기회에서 뒤처지는 것도 답답했다. 가끔 사람들과 상경해 학회에 참석하는 정도로는 갈증이 풀리지 않았다. 종종 혼자 서울에 올라가 허깨비처럼 홍대거리를 쏘다녔다. 지금은 돈을 주면서 가서 살라고 해도 싫은 마음인데(잠깐 스포하자면 후에 나는 시골병도 앓는다), 그땐 한 번씩 서울에 다녀오면 꽉 닫혀 있던 창문을 잠시라도 연 듯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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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역에서만 살아온 사람을 두고 시시하게 살았다고 여긴 적은 없다. 대학에 가고 가지 않는 것은 어디까지나 선택의 문제라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남이 아닌 내 상황이 되고 보면 양가감정이 들 때가 많았다.
석사과정 중 자립형 사립고 학생들의 논술 첨삭 일을 할 때는 이 우수한 학생들이 '겨우 지방대 대학원생'에게 가르침을 받는다고 여길 것 같아 위축이 됐다. 내가 맡은 학생이 "선생님은 어느 대학 나왔어요?"라고 물었을 땐 유명 대학이 아니라고 나를 무시할까 봐 성급하게 불쾌해졌다.
지인이 메일로 이렇게 물어온 적이 있다.
"스스로 거품이 껴있다고 느껴본 적 있으세요?"
진학과 관련해 고민하다가 내 경우가 어땠는지 물은 것이다. '거품이라... 내 인생이 거품이지.' 실력에 자신도 없으면서 교수님께 '박사과정은 서울대로 가겠다'고 선포한 기억을 떠올리면 손발가락이 곱아든다.
몇 년 전까지 외국 생활을 추구했던 것도 돌아보면 서울병과 연관이 있다. 주류에 속하지 못할 바에야 내 의지로 비주류가 됐다는 인상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학교 3학년 때 1년간 일본에 교환 유학을 다녀온 뒤로는 외국물을 먹었다는 은근한 자부심이 지방대 학생이라는 자격지심을 희석시켜 주었고, 나는 그 맛에 한층 외국생활에 매력을 느꼈다.
그런데 메일에 답장을 쓰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거품이 낀 건 내 마음일까, 사회 구조와 문화일까. 학교에서 같이 일했던 한 선배 선생님은 내게 "그래도 쌤은 국립대 나왔잖아요."라고 말하며 지방 사립대를 나온 다른 선생님을 폄하했다. 서울 출신인 자신이 모르는 대학이라는 게 이유였다. 그의 기준에 턱걸이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게 다행인가 싶었지만 전혀 기쁘지 않았다.
내 안의 열등감과 허영심은 학습된 서울중심주의이기도 했고, 간판이 아닌 '실속'을 원해도 그걸 우리 지역에서 얻을 수 없다는 한계에서 오는 것이기도 했다. 수도권 중심 사회 구조가 만든 문화, 그 문화를 재생산하는 사람들, 그에 따라 강화되는 사회 구조가 사슬처럼 이어져 수도권과 비수도권 사이를 가르고 있다.
학력과 소속을 서열화하지 않는 수평적 시선조차 이 연결고리 앞에선 쉽게 무력해진다. 정치권은 '지역인재 육성'을 구호처럼 외치지만 지방 소재 대학을 소위 '지잡대'로 낙인찍는 문화 속에서, 게다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소득, 자산 격차가 커지는 상황에서 '지역 인재'라는 칭호를 반기기 어려운 것도 당연하다.
서울공화국 대한민국 서울뿐인 나라로 나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광고. '광고 천재' 이제석이 만들었다(그는 '세계 광고 업계를 강타한 지방대 졸업생'으로도 불린다)
부산에서 산 지 8년쯤 됐다. 처음에는 타지에서 어떻게 오게 됐는지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행 갔을 때 부산에 반했고 운 좋게 부산에 일자리가 났다고 얘기하면 대부분 납득하지만, 이렇게 물어오는 경우도 있었다. "왜 서울로 안 가시고?" 서울 체질이 아니라서요, 라고 웃으며 답했는데 어쩐지 뒷맛이 썼다. '굳이 서울 아닌 지역에서 일을 구할 이유'를 묻는 그 질문에는 '응당 서울이 1순위'라는 전제가 있었다.
내가 이용하는 커뮤니티에서 연애 대상을 찾는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을 볼 때면 서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서울중심주의가 얼마나 깊은지도 느낀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도 글 속에 자신의 지역을 쓰지 않는다. 본문에 지역 언급이 없어 누군가 댓글로 지역을 물으면, 백이면 백 서울이라는 답이 달린다. 그 게시판을 이용하는 모두가 서울에 살고 있는 것처럼 여기는 사고방식인데, 신기하게도 이런 사고방식을 글을 올리는 서울 사람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지역이 써 있지 않은 글은 서울에 사는 사람이 쓴 것이구나 하고 넘길 수 있게 됐다. 반대로 서울이나 수도권 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글에 '지방러'임을 드러내고, '지방에 살아서...'라며 신세한탄을 섞어 글을 올린다. 죄다 서울과 수도권 거주라 사람을 만나기가 너무 어렵다는 글이 많다.
긴 시간을 지방소도시에서 살아온 나는 내가 사는 지역을 우물이라 느꼈었다.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접하기도, 공부하는 분야의 최신 경향을 따라가기도,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찾기도 어려운 그 작은 도시에 사는 동안 나도 모르게 다짐 비슷한 걸 했던 것 같다. 우물 안의 개구리로 남진 않을 거야. 방랑을 향한 열망은 그런 의지이기도 했다. 원하는 것을 누리지 못할 때 누구든 그렇지 않을까마는, 지역 가치에 대한 치우친 사회 인식이 내 안에 서울병으로 스며 있었던 것은 부끄럽게 생각한다.
지방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은 게 지배적인 현실이지만, 요즘 나는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지방 도시로 이주해 온 친구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광역시에서 읍 단위 시골로 가는 친구들도 있다. 주로 20-30대 친구들이다. 그들이 모여, 살고 싶은 도시에 공동체를 꾸리고, 자신들이 바라는 사회의 모습을 공동체에 반영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 덕분에 그 지역에 대한 나의 인식도 바뀌고 있다. 거기에 살아도 결이 맞는 사람들하고 이어져 있을 수 있겠구나, 살던 곳에 돌아가도 고립되지 않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
그래서 고인 물이 흐르는 물이 되도록 기반을 만드는 것이 정치인과 기업인들만의 일은 아니구나 싶다. 우리 머릿속 대한민국을 '서울'과 '비서울'로 양분하지 않는 의식. 그 의식을 말과 행동에 반영하는 일. 거기서부터 많은 것들이 달라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