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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보살과 민바람 Oct 09. 2024

당신이 누리는 부유함은 무엇인가요?

거스름돈을 버리는 아이들과 노숙인이 건넨 인사

 오백 원짜리 하나. 백 원짜리 네 개. 거스름돈 900원을 내밀자 초등학생 손님이 말한다.


- 아... 무거운데. 야, 너 가져.


 옆에 있던 아이가 얼굴을 찌푸린다.


- 됐어, 나도 무거워.


 몇 차례 서로 돈을 미루며 실갱이를 하더니 "이모 가지세요"하고 매대 위에 동전을 올려놓은 뒤 휭 가버린다. 지폐를 포함해 받은 거스름돈을 시식대에 말없이 올려놓고 가는 경우도 있다. 길에서 100원짜리를 발견하면 기뻐하던 내 어린 시절과 너무 다른 아이들 모습에 처음에는 정말 놀랐다. 그런데 지금은 '또 버렸네' 하며 계산대 한쪽에 돈을 모아둔다. 나한테 준 거니까 내 살림에 보태고 싶지만, 업장에서 생긴 돈이니 사장님께 드린다. 가끔 돈이 부족한 손님에게 보태드리는 데 쓰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손님이 무척 고마워해서 나도 기분이 좋다.


 우리 편의점은 시쳇말로 '잘 사는 아파트'의 상가에 있다. 사장님이 말씀하신 적이 있다. 이 아파트 부모 대부분이 의사 아니면 교수예요. 다들 명품으로 휘감고 오잖아. 몰랐어요? 명품에 관심이 없는 나는 일을 시작하고 몇 달 동안이나 그걸 눈치 채지 못했는데, 나중에는 눈썰미가 생겨서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아, 요즘은 발렌*아가가 좀 잘나가나 보네’ ‘저 가방은 이태리 장인이 아니라 중국에서 만든다고 뉴스에 나온 건데’ '지갑은 구*가 제일 많구먼' 


 초등학생 아이들도 명품 로고가 박힌 지갑을 들고 다니고 유아차에 누워있는 신생아 우주복에도 동물 대신 명품 로고가 잔무늬로 들어가 있다. 명절이 지나면 아이들이 펼친 지갑에는 5만 원짜리가 빼곡하고, 할머니가 생일 선물로 돈을 많이 주셨다며 자랑하는 아이의 말을 듣다가 내 한 달 급여와 같은 액수라 살짝 현타가 온 적도 있다.


 직장을 그만두고 글을 쓰며 편의점에서 일한 지 4년 반이 지났다. 주 2-3일, 하루 5-7시간만 일하다 보니 당연히 그 달의 벌이는 그 달의 생활비를 메꾸기만도 빠듯하다. 모아둔 돈은 지금 사는 집의 월세 보증금 천 만 원을 제외하면 천 만원이 전부다. 한국어교사를 하는 동안 해외에서 버는 돈은 너무 적어 대부분 생활비로 쓰면 남는 게 없었고, 조금 벌이가 좋았을 때 번 돈은 석사 2번과 박사 1번을 거치면서 학비로 들어갔다. '고학력'보다는 '고악력'이 필요한 편의점 일을 하면서 학비로 쓴 돈이 아까울 때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나의 강사 이력은 현재 강연을 하는 데 도움도 되고, 무엇보다 그때의 나는 현실에 끝까지 부딪쳐보지 않고서는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되도록 그때의 선택들을 뒤적거리지 않으려고 한다.


 이 점포에서 일을 시작하고 처음 1년간은 점포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살았다. 이 지역은 큰 도로를 경계선으로 해서 좀 사는 사람들의 동네와 아닌 동네로 나뉘는데, 나는 이 도로를 건너 출퇴근했었다. 거리는 가깝지만 어떻게 보면 좀 다른 세계로 건너갔다 오는 것과 같았다. 사람들은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 있어도 각자 다른 움벨트(Umwelt.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현실로서의 세계)에서 살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 동네에서 살고 일하는 동안 나는 한 번도 주눅 든 적이 없었다. 원체 경제 감각이 무디기도 하고, 그때 내 옆에는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며 살아가는 동거인이 있어서 내가 소외되는 존재라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도 이 oo시티는 좀 사는 동네로 알려져 있어서, 거주지를 말할 때 "oo동 살아요"라고 하지 않고 굳이 "oo시티 살아요"라고 한다는 밈이 있다. 그런데 나는 반대였다. 지리상 oo시티에 속하긴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뭔가 알겠다는 듯이 쳐다보는 눈빛이 부담스러워서 "oo시티... 아니아니 oo동이요"라고 바꿔말하곤 했다.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해본 일도 없다. 편의점 일에 대한 내 감정은 오히려 자부심에 가깝다. 어려서부터 몸쓰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존경다. 게다가 편의점은 내게 어느 곳보다도 마음에 들고 잘 맞는 일터이다.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내 몸을 써서 정직하게 돈을 버는 것으로써 어른 한 사람의 몫을 해내고 있다는 게 좋았다.


 그런데 여기서 일한 지 2년이 되어갈 즈음 사장님 사정으로 내 근무가 주말로 옮겨졌다. 그러면서 근무시간이 줄었고 주휴수당도 받지 못하게 됐다. 주 14시간의 최저시급 급여로는 생활이 불가능하지만 글 쓸 시간이 부족해서 다른 일을 구할 수는 없었다. 다른 편의점 일을 겸하려고 면접을 보기도 했는데, 무거운 물건이 많이 들어와 허리를 많이 써야 하는 시간대였다. 그나마 쓸 만한 지금의 허리로 만드는 데까지 꽤 돈과 노력을 들였던 터라, 생각 끝에 추가근무를 포기했다. 그리고 부지런히 글을 써서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하루 식비는 장보기 비용을 제외하고 만 원으로 정해서 맞추어 쓰려고 노력했다. 요즘 물가에서 현대인이 하루 식비 만 원으로 생활하는 게 가능한가? 지속은 모르겠지만 일단 가능은 하다. 집에 있을 때는 대부분 이따금 본가에서 보내주는 반찬이나 간단히 만든 요리로 집밥을 먹었다. 외식은 최대 하루 한 끼만. 커피를 사마시고 싶을 때도 간절하지 않으면 참았다. 김밥이나 저렴한 면 요리를 먹게 되면 그날은 커피나 군것질거리도 살 수 있었다. 전날 온종일 집에 있어서 돈 쓸 일이 없었으면 다음날은 좀더 썼다. 사람들과의 약속은 횟수를 제한하고 예산을 미리 짰다. 친구들에게는 사정을 얘기하고 매번 식당을 비싸지 않은 곳으로 정했다. 급하지 않은 생활용품과 책 구매는 다음달로 넘겼다.


 이렇게 생활한 지 서너 달이 지난 지금은 몸도 마음도 익숙해졌다. 생활에 제약이 많아서 답답할 때도 많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길이니 억울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부양할 사람도 없고 스스로 일할 능력도 있다. 이렇게 나만을 위한 시간을 듬뿍 누리는 나는 고급 한량에 가까울지도.


 뭐, 나라고 언제나 괜찮기만 했던 건 아니다. 고백하자면 급여가 줄고 한동안은 자꾸 마음이 같이 쪼그라들었다. 편의점에서 보는 명품 로고들에 처음으로 위화감을 느꼈다. 용돈을 많이 받아 신나게 이것저것 사는 아이들을 보면, 하나뿐인 고모가 그렇게 해줄 수 없어서 내 조카들이 친구들과 비교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지인 집에 초대받았을 때 사람들이 사온 안주거리에 비해 내가 사간 것이 초라해 부끄러웠고, 캠프 행사에 참여했을 때 '사귀어도 같이 뭘 할 여력이 없는데 뭐하러'라는 생각이 들어 적극적으로 친구를 사귈 수 없었다.


 계산대 앞에 선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가끔 초단위로 지나갔다. 정말로 그런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손님들을 대하는 목소리에도 힘이 빠졌다. 계산대 위의 거울에 비춰본 내 눈빛은 흐리멍덩했다.  아니, 돈이 뭐라고 내가 이렇게 쪼그라들지? 싶다가 돈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인데 내가 그만큼 경제 감각이 무뎠구나 실감했다. 이대로 혼자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먼 훗날을 내다보려고 눈에 힘을 주다가 시야에 안개만 자욱해서 막막해지기도 했다.


 그럴 때는 심연에 빠지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고개를 처들었다. 지금이 내 남은 시간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했다. 4년 반 동안, 직장이라 할 만한 곳은 편의점밖에 다니지 않았으면서도 믿을 수 없이 많은 것들을 누리면서 어찌어찌 잘 지내왔다는 걸 떠올렸다. 사실은 목숨부지만 해도 잘했다 싶을 상황이었는데, 소소하게나마 많은 것들을 해냈고 정신적으로도 크게 성장했다는 점을 생각했다. 나를 이해하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는 사실을 되새겼다. '부'의 의미를 넓히면 내가 결코 가난하지 않다는 것을, 오히려 평균의 사람들보다 행복과 경험적 가치를 누리지내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 누군가에게는 참 부러운 생활이라는 것을.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의 퇴근길이었다. 엘리베이터로 육교에 오른 뒤, 자전거를 내 몸에 기대 세워둔 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 지금 몇 시예요?  


 고개를 들어보니 행색이 무척 남루한 노숙인이 앞에 있었다. 일전에도 이 자리에서 몇 번 마주친 적 있는 이였다. 내가 기억하는 사람이 맞다면 저번에는 엘리베이터 앞에 앉아서 현금이 있냐고 물어왔다. 그때 나는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현금이 없네요, 답했었다. 진짜로 현금이 없었다. 아, 현금 없어요? 그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는데, 그 태도가 친근하면서 거쿨진 데가 있었다.


 나는 또 만났네, 생각하며 대답했다.    

 - 3시 37분이요.

 - 3시요?

 - 네. 37분이요.     


 그는 두꺼운 털조끼를 입고 있었다. 초가을이라고 하지만 폭염 경보가 내린 오후였다. 소매 있는 옷을 받쳐 입지 않고 있어서 까맣게 탄 팔이 어깨까지 드러나 있었다. 그는 아이스팩 같은 것을 한 손에서 다른  손으로 옮겨가며 목 뒤에다 문질렀다.   

  

 - 드라이브 좋아하시나 봐요.

 - 아, 출퇴근할 때 자전거 타요.     

 - 어디 다녀오세요?

 - 퇴근이에요.     


 그는 대화를 이어가고 싶은 듯했지만 대화에 능숙하지는 않았다. 다시 어딘가 빗나간 질문을 던졌고 나는 자전거에 오르며 웃는 얼굴로 짧게 답했다. 서둘러 피하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계속 사생활을 드러내며 대화할 만한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 아아.    

 그는 페달을 밀어 나아가는 나를 보며 별다른 말이 없이 서 있었다.       


 '왜 말을 건 걸까? 심심했을까? 아니면 대화를 이어가다가 돈이나 먹을 게 있는지 물어보려 했나?'

      

 두세 번 페달을 밟은 뒤 자전거 바구니에 담아놓은 베이글에 시선이 갔다. 오늘 편의점에서 근무하면서 산 거였다. 혹시 이걸 보고 말을 건 게 아닌가 싶었다. 지금이라도 갖다드릴까? 아침에 먹으려고 산 건데... 나도 돈이 너무 없잖아. 아니 그보다, 대뜸 먹을 걸 갖다주는 게 더 실례인 거 아니야?

    

 짧은 갈등이 스쳐갔다. 페달을 밟으며 뒤를 돌아다봤다. 그도 나를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그가 고개를 조금 숙여 인사를 했다. 나도 살짝 웃으며 똑같이 했다.     


 그 순간 나는 신선한 자극을 받았다. 내가 뒤돌아본다고 그가 고개 숙여 인사를 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또 잠깐 생각에 잠겼는데, 그 행동이 신선했던 게 나에게 편견이 있어서인지, 단지 그가 내가 보아온 노숙인이나 걸인들과 달라서인지 헷갈렸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는, 행색은 오염에 찌들어 있었지만 태도만은 찌들어 보이지 않았다. 내가 만나온 노숙인이나 걸인(물론 둘은 다르다)은 대부분 삶에 대한 환멸이랄까, 매너리즘 같은 것이 느껴졌다. 눈을 잘 마주치지 않고 무기력해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내가 짧은 시간 동안 그에게서 느낀 것은 활력과 당당함, 친근함이었다.


 물론 나는 그들의 상황과 선택이 그렇게 흘러갔을 뿐 그들이 다른 종류의 사람이 아님을 잘 안다. 내 가장 친한 친구도 2년 간 노숙생활을 했었다. 나에게 지금 묵을 곳이 있는 것도 상태일 뿐, 앞으로 어떤 일이 생겨 노숙생활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만일 내가 노숙생활을 한다면, 또는 사람들의 선의에만 기대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어떨까. 나는 열패감에 찌들지 않을 수 있을까?


 집까지 자전거 페달을 굴려 나가며 나는 내가 느낀 게 무엇인지 언어로 밝혀보려 애썼다. 어쩌면 그가 다른 노숙인보다 여유로울 수 있었던 데는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마침 매슬로우의 5단계 욕구 중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가 어느 정도는 채워진 상태였던 것일 수도, 그래서 애정·소속의 욕구와 존중의 욕구로 나아갈 수 있었던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심하게 배가 고프고 지쳤을 때 친절하기 어려운 건 누구라도 마찬가지이니까.


 그럼에도 분명한 것 하나. 사람의 품격을 정하는 게 돈은 아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는 하지만, 자리가 사람의 본질을 바꾸는 것도 아닐 거다. 편의점 단골손님 중 늘 고급진 명품 옷과 액세서리로 꾸미고 있는 손님이 있다. 아마도 피부과에서 지속적으로 관리를 받아 얻었을 매끈하고 탄력 있는 그의 피부를 볼 때 나는 부러움을 느낀다. 하지만 매번 아이들을 데리고 오면서도 단 한 번도 내게 눈 맞추거나 인사를 하지 않는 그가 고급스럽거나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는다. 내게 인사를 보내던 순간의 노숙인의 모습이, 계층 인식을 떠나 사람들을 이웃으로 여기고 자신이 가진 것들로 하루를 즐기는 태도가 나에게는 더 빛나 보였다.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품위라는 것은 결국 다 진심에서 풍겨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도 했다. 


 그런데 그 '진심'이란 무엇일까.


 사람은 자신이 욕망하는 것들을 선택적으로 인식한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손은 《물질과 기억》에서 '시각'과 '지각'이 비슷한 원리로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물체를 볼 수 있는 것은 물체에 부딪쳐 반사된 빛이 우리 망막에 맺혔기 때문이다. 빛이 공기는 통과하지만, 물체는 통과하지 않고 반사되기 때문에 우리가 사물을 인지할 수 있다. 그런 것처럼 어떤 것을 지각하는 일도 선택하는 일이다. '지각한다'는 것은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들은 그냥 통과해 버리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명품을 사회 계층의 지표로 의식하는 사람에게는 누군가 입은 옷의 명품 로고가 잘 보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의 눈에 그것은 그저 똑같은 옷일 뿐이다. 노숙인을 자신만의 욕구와 성품, 취향을 가진 사람으로 볼 수 있다면 노숙인이 건네는 말이 이웃끼리의 '스몰 토크'가 되지만, 노숙인을 말 그대로 '노숙하는 사람'의 영역에 묶어두고 바라본다면 그의 언행은 모두 그 인식의 틀에 맞춰 받아들여진다. 마찬가지로 그 노숙인이 중요하게 의식하는 것이 '돈'과 '계층'이었다면 나에게 보여준 여유로움은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기에 진심이란 것은 바로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고, 문제는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가이다.


 이 사회에 계층은 엄연히 존재한다. 그런 환경에 아예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지만, 부유함에 대해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당장 충분한 경제적 자유를 누릴 수 없더라도 내가 남들보다 누리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지키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지. 마치 그 노숙인과의 만남이 내게 그것을 묻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즐기는 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고 그것을 더 잘하기 위해 삶을 투자한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간다. 그런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정서적이고 지적인 풍요로움을 느낀다. 그 부유함은 아무리 누려도 누린 만큼 소진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풍족해진다. 때때로 마음의 여유를 잃어도 좌절하기보다 해결책을 고민하고 곧 여유를 되찾을 수 있는 건 그 부유함 덕분이다.


 편의점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관찰하고, 뭔가를 느끼고, 생각하고. 그렇게 얻은 것을 퇴근 후 글로 옮길 수 있는 이 생활을 나는 사랑한다. 내가 끝없이 고민하고 선택하며 걸어온 결과로 만들어진 오늘의 조건을 최대한 즐기는 태도. 계층을 떠나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동료로 대하는 태도. 거기에 집중하면서 나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것에 집중할 때에야 더 자유롭게, 더 멀리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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